역사/국사-조선

임진왜란 조선을 도운 일본군 항왜(降倭) 조선을 배신한 순왜(順倭) 설명

올드코난 2015. 6. 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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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전]어느시대 어느나라에서든지 위기상황이 되면, 우리 편에서 협력을 하려는 자들도 생기지만, 배신을 하는 자들 또한 생긴다. 임진왜란 중에는 조선을 도와 일본을 버린 황왜군이 있었고, 반면, 조선에 불만을 품고 일본에 투항한 순왜가 있었다. 이들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임진왜란 조선을 도운 일본군 항왜(降倭) 조선을 배신한 순왜(順倭) 설명


1.항왜

항왜(降倭)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을 이르는 말이다. 전쟁 당시 조선군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선에 남아 자손을 낳고 살았다. 그들중 일부는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 활약하거나 병자호란 때 활약하기도 했다. 조선군은 전쟁 초반에는 포로들을 그냥 살해했으나 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항왜 유치에 나섰다. 대표적인 항왜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여여문(呂汝文), 김충선, 김성인, 요질기(要叱其), 염지(念之), 사고여무(沙古汝武), 첨지(僉知), 평구로(平仇老), 산여문(山如文), 노고여문, 기오질기, 오카모도 에치고(岡本越後), 마고토키로(孫時老), 노부토키로(延時老)등이다.

항왜는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 이후부터 많아졌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투항하는 왜군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1594년부터 조선 조정이 항왜의 중요성을 깨닫고 항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선이 항왜를 받아들인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수의 일본군이 탈영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영에 목책을 설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만여 명의 일본군이 조선에 투항을 해왔다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항왜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순왜

항왜와는 반대로 조선인이면서 일본에 투항하거나 협력한 자는 친일파의 개념으로 순왜(順倭)라 불렀다. 순왜는 주로 조선에 반감을 품어 자발적으로 왜에 투항한 자들과 왜군에 포로로 잡혀 강요에 의해 부역한 자들을 통틀어 하는 말인데 이들 순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우선, 조선 조정에 불만이 있던 자들로 정유재란 때 일본과 결탁하여 난을 일으킨 경우가 있고, 두 번째는 왜군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조선의 상황 등 각종 정보 제공을 해준 경우, 그리고 왜군으로 직접 전투에 참전한 적극적인 순왜이다.

순왜의 대표적인 인물은 임진왜란 5년전인 1587년 정해왜변때 일본군의 길잡이로 활동한 사화동과 임진왜란 때, 피난와 있던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포박하여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준 국경인과 김수량 등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사천해전에서 왜군 선단에서 조총을 쏘는 소총수 중에 조선인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순왜는 모두 다 배신자가 아니다.

순왜는 항왜에 비해서는 그 수가 많이 적지만, 왜군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순왜 대부분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되는 것이 당시 계급사회에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조선 조정의 무능과 무책임, 여기에 임금(선조)의 도주와 명군의 횡포는 가뜩이나 왜군에 피해를 본 백성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특히, 병력을 모은다는 이유로 함경도로 간 선조의 두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은 민가를 약탈하고 주민을 살해하는 등의 행위로 백성들에게 분노를 사게 되고 이러한 행태에 불만을 품은 국경인, 김수량, 이언우, 함인수, 정석수, 전언국이 이들 임해군과 순화군을 일본군에 넘겨 주게 되는 것이다. (이후 국경인의 반란 세력은 회령의 봉토를 나누어 가지고 전횡을 일삼아 다시 백성들에게 외면을 받고 결국 이들 회령의 순왜는 몬두 잡혀 처형된다.)


이들 외에 경상북도 청도 출신 박계생은 고니시 유키나카의 부장이 되어 보좌하였고 이후 조선에 돌아 왔다는 기록이 없으니 분명한 순왜이고, 청도에서 일본군에 사로 잡힌 이문욱은 도망쳐 조선에 다시 돌아 왔는데, 이는 왜군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이 아니라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포로로 잡혔던 것인만큼 이는 순왜가 아니다.


4.마무리

순왜와 항왜는 누구를 배신했는가하는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소속된 국가와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군사력으로 조선보다 더 강했던 왜군이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대항한 황왜가 조선을 배신한 순왜 보다 더 많았다는 점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명분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명분이 없는 전쟁에 나선 병사는 반드시 사기를 잃게 된다.

이는 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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