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재임중 사임한 미국 제 37대 대통령 리차드 닉슨 (Richard Milhous Nixon)

올드코난 2017. 2.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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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밀허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 1913년 1월 9일~1994년 4월 22일)은 제36대 부통령과 37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사임했다. (공식적으로 탄핵된 것이 아니다.)


1. 초기 생애

1913년 1월 9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주의 위티어 대학 졸업 후 듀크 대학교 로스쿨에 3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전교(graduating class) 3등에 드는 최고 수준의 성적으로 1937년 6월 졸업했다 그 후 고향 캘리포니아 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 변호사 자격을 얻어 위티어 지역에 위치한 윈저트 앤 뷸리(Wingert and Bewley)라는 로펌에서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했고, 1940년 6월 21일에 취미로 연극 활동을 하던 중 만나 교제하던 고등학교 교사 텔마 팻 라이언(Thelma "Pat" Ryan)과 결혼했다. 1942년 1월 닉슨은 물가관리청(Office of Price Administration)으로 이직하게 되어 가족과 함께 워싱턴 DC로 이주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 해군으로 복무 전쟁이 끝난 후 정계로 진출한다.


2. 정치

1946년 연방 하원 의원 선거에 당선되고, 1950년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된다. 당시 매카시즘 시대에 사상 공세를 펼쳤고 반공주의 색출을 외쳤던 극우성향의 정치인이었다.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직에 지명되어 당선되었고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부통령 재직시절 니키타 흐루쇼프와 부엌 논쟁을 하면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60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지만 민주당 존 F. 케네디에 근소한 차로 패배한다. 이후 닉슨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도전하지만 현직 주지사였던 팻 브라운에게 패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된다.


3. 대통령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던 1968년 닉슨은 대선에 출마하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를 상대로 근소한 차로 승리하며 37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 재임 중 베트남 전쟁을 종결짓고 미국인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게하고 미국 환경보호국을 설립하였다. 또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우주 경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데 영향을 주었고 인종 차별 폐지에 힘썼다. 1972년 중국 방문으로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등 주요한 업적을 남긴다.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을 상대로 50개 주 중에 49개를 승리하는 압승을 거두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고 문제는 증거 조작과 은폐 시도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법으로 판결하고 1974년 의회가 탄핵 표결에 들어가자 닉슨은 사임을 발표한다 후임은 부통령 제럴드 R. 포드였다.


4. 퇴임후

제럴드 포드가 취임한 지 한 달 뒤 그를 특별 사면시키고 이로 인해 큰 비난을 받은 포드는 재선에 실패한다. 닉슨은 퇴임후 저술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81세 생일이 4일 후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유해는 고향 캘리포니아 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5.평가

그의 별명은 교활한 딕이었다. 말솜씨와 수완이 뛰어난 정치인이었는데, 닉슨은 거짓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데탕트라는 해빙의 시대를 열었고 여러 업적이 있었지만 워터게이크 사건으로 탄핵직전 사임한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도 닉슨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지만, 공통적인 것은 유능한 인물이었고, 가장 큰 문제는 정직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6. 뒷이야기

가난 때문에 하버드에 진학을 못했던 닉슨은 집안 배경으로 하버드에 들어간 존 F. 케네디를 싫어해 콤플렉스를 느꼈을 정도라고. 포커를 즐겼는데 1946년 닉슨의 하원의원 선거 운동 비용 중 대부분을 닉슨이 전쟁 중에 포커로 딴 돈으로 충당했다는 말도 나온다. 케네디와 닉슨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나이차가 많다고 착각하지만 1946년 정치에 같이 데뷔했고 나이 차는 고작 네 살에 불과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이 시끄러운 때 실업자 새뮤얼 비크가 경찰을 죽이고 비행기를 납치해 닉슨을 암살을 시도하다 진압되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고 동아시아 탐사 중 만난 박정희는 닉슨을 무시해 버렸고 그 결과 닉슨이 대통령이 된 후 큰 곤혹을 치르게 된다. (이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권력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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