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 (Gerald Rudolph Ford Jr) 평가

올드코난 2017. 2. 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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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루돌프 포드 주니어 (Gerald Rudolph Ford Jr., 본명 레슬리 린치 킹 주니어 (Leslie Lynch King Jr.), 1913년 7월 14일~2006년 12월 26일)는 전 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의 사임으로 수정 헌법 25조에 따라 처음으로 부통령직에 지명된 인물이며 닉슨이 사임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현재까지 마지막 부통령 승계 대통령이다.


1. 초기 생애

1913년 7월 14일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 성명은 레즐리 린치 킹 주니어(Leslie Lynch King, Jr.)였다. 친부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신혼 초부터 부인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갓 태어난 아들까지 위협하자 어머니는 생후 16일된 포드를 데리고 가출했고 이혼했다. 부모가 이혼해 모친은 제럴드 루돌프 포드(Gerald Rudolff Ford)와 재혼했고 생부는 친권을 포기 계부의 가문에 입적되어 계부의 이름을 물려받아 제럴드 루돌프 포드 주니어(Gerald Rudolph Ford, Jr.)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랜드래피즈에서 성장해 미시간 대학교에 진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재학 중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 했다.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예일 로스쿨로 진학하여 권투 코치, 미식축구 코치로 아르바이트하며 로스쿨을 상위 25% 성적으로 졸업했다. 미식축구 프로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포드는 이를 거절하고 잠시 변호사 생활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해군으로 참전했다.


2. 정치

종전후 1948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의원 재임 중에는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평판 외에는 별 특징 없는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73년 부통령 스피로 T. 애그뉴가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자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공화당 대표였던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 부통령자리에 올랐다.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부통령에 취임한 사람은 포드가 처음이다.


3. 대통령

1974년 8월 9일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당하기 직전에 사임하고 그날 포드는 닉슨 부부를 헬리콥터에 태워 떠나보낸 뒤 백악관에 돌아와 선서를 하고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30일 뒤 포드는 닉슨을 사면하는데 너무빠른 사면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훗날 재선을 막게 된다.

취임 직후 1974년 9월 12일,통학버스의 흑인과 백인 차별을 금지시키고, 이에 불만을 품은 백인 부모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폭동까지 일으키자 군대를 동원해 통학버스에서 흑인 학생들을 보호하자 많은 백인들을 불만을 품고 1975년 9월 5일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9월 22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미수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융통성도 없는 정책에 재선에 실패 2년 반 재임한 단명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4. 퇴임후

퇴임후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내다 93세 165일을 일기로 2006년 12월 26일 사망했다. 워싱턴에서 국장이 치러진 후 그가 성장한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묻혔다.


5.평가

2년 반이라는 단명 대통령이었지만 보통사람 대통령 시대를 열었고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음은 착하지만 머리는 나빴던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무능하다기 보다 우직하고 업적이 없었기에 나온 평가일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과 약자에 관대했다는 호평이 많다는 점에서 사람됨은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고집이 너무 강했고, 의회와 충돌이 많았는데 여기에는 융통성 없는 성격에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인식을 못했고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드는 대통령 보다는 의원으로 남았더라면 더 존경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6. 뒷이야기

포드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1974년 8월 9일 대통령에 취임했는데 미국 역사상 선거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이나 부통령직에 오른 최초의 기록이다. 부인 베티 포드 여사는 미국민의 큰 사랑을 받은 퍼스트 레이디로 낙태문제와 여성의 권리증직 등을 위해 노력해왔고, 1974년 자신이 유방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했고, 이후 알콜중독에 걸렸는데 극복하고 1982년 베티포드 센터를 건립해 마약, 알콜중독자 구제활동 등의 사회사업단체로 활약을 했다. 베티여사는 2011년 베티 포드 센터 근교의 아이젠하워 진료실에서 사망해 남편 옆에 묻혔다. 포드는 미국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암살당할 뻔한 대통령으로 첫 번째는 자신이 추종하던 살인범 찰스 맨슨의 석방을 주장하던 라넷 프롬, 두 번째는 정신병력이 있는 가정 주부 사라 제인 무어였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식에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대원수로 추증하였다. 포드에 대해 린든 존슨은 "방귀 뀌는 것과 껌 씹는 것을 동시에 할 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현재까지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다. 2004년 사망한 레이건 대통령보다 한 달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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