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 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George H. W. Bush) 평가

올드코난 2017. 2. 2. 19:33
반응형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1924년 6월 12일 ~ )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으로 연방 하원의원, 국제연합 대사, CIA 국장 제43대 부통령을 지냈다.


1. 초기 생애

1924년 6월 12일 매사추세츠 주 밀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8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58회의 전투에 참여해 무공훈장 3개를 받았다. 전선에서 돌아온 후 22세에 바버라 피어스와 결혼했고 이듬해 장남 조지 부시 2세를 낳았다. 1948년 예일대학교 졸업 후 텍사스로 이주 석유 회사 자파타 코퍼레이션 경영에 참여해 큰 돈을 벌었다.


2. 정치

그의 부친 프레스컷 셸던 부시는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으로 조지 부시는 부친을 따라 정계에 입문 1964년 텍사스 주에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 1965년 석유 사업을 맬컴 글레이저에게 매각하고 정치에 투신 1966년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1968년 하원의원에 재선한다. 1970년 연방 상원의원에서 민주당 로이드 벤슨에게 패했다. 닉슨 정부에서 1970년부터 1973년까지 UN 주재 대사로 재직했고 1973년부터 1975년까지 국무성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서 대(對)중국과의 국교정상화에 힘써 외교의 달인이란 평을 받았고 1977년 CIA 국장을 지냈다. 1980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지만 레이건의 요청으로 부통령 후보를 맡아 1980년과 1984년 두차례에 걸쳐서 부통령에 당선된다.


3.대통령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취임 후 1989년 12월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가 마약 퇴치를 위해 파견된 미군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파나마를 침공한 후 이틀 만에 점령한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점령하자 노먼 슈워츠코프를 총사령관으로 앞세워서 이라크를 공격해 한달만에 승리를 거두었다.(걸프전쟁), 재임시 소련이 붕괴되는 등 격변의 시간에서 미국의 최강국가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악화로 여론이 돌아섰고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유명한 선서 슬로건을 내건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370 대 168로 패해 재선에 실패한다.


4. 퇴임후

퇴임후인 1993년 텍사스 주로 돌아와 노후를 보내고 있고 2000년 장남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5. 평가

아들 조지 부시2세 때문에 덩달아 비난을 받고 있지만, 따로 떼어 놓고 평가를 해야한다. 조지 부시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 대학졸업부터 부통령까지 부시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냈고, 대통령 재임중에 경제 악화는 레이건의 책임이 컸다. 레이건의 감세정책의 후유증들이 부시정부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또 걸프전쟁 당시에도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려들지 않았던 것 역시 세계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내린 현명한 판단이었다. 많은 이들이 조지 부시에 대해 전쟁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았다. 명분과 증거가 분명했을 때 일을 벌였기에 조지 부시에 대해서는 전쟁에 대해 도덕성 논란이 없는 것이다. 아들 조지부시 2세와는 분명히 달랐다.


6. 뒷이야기

지미 카터와 동갑이다. 학년은 카터보다 한 학년 위인데 미국에서는 9월생을 기준으로 학년을 끊기 때문이다. 부시는 1923년 9월 1일생부터 1924년 8월 31일생과 같은 학년이 되고, 지미 카터는 1924년 9월 1일생부터 1925년 8월 31일생과 같은 학년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