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Clinton) 평가

올드코난 2017. 2. 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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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퍼슨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 1946년 8월 19일 ~ )은 미국 41대 대통령 (재임 1993년부터 2001년)으로 46세의 나이로 당선되어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세 번째로 젊은 대통령으로 첫번째 베이비 붐 세대 대통령이었다.


1.초기생애

아칸소 주 호프(Hope)에서 태어났는데 어릴적 이름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3세(William Jefferson Blythe III)였다. 아버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주니어는 외판원이었고 빌이 태어나기 석달전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간호사 공부를 위해 뉴 올리언스에 가게 되었고 빌은 마트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외조부모와 함께 호프에서 살았다. 1950년 빌의 어머니는 뉴 올리언스에서 돌아왔고 그해 자동차 딜러를 운영하는 로저 클린턴과 재혼 했는데 노름꾼에 알코올 중독자여서 자주 술에 취해 아내를 폭행하고 때로는 빌리의 이부(異父)동생 로저 주니어(1956년생)나 심하면 그를 구타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어머니 버지니아는 빌리가 계부의 성을 따르는 것에 반대하고, 계부와 잠시 이혼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가정의 안정을 위하여 모친 버지니아는 로저 클린턴과 다시 결혼하였고, 빌은 1962년 법적으로 클린턴이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계부 로저 클린턴이 1967년 암으로 사망한 후, 모친 버지니아는 1969년 제프 드와이어와 재혼했다. 빌의 새 계부 제프 드와이어도 1974년 사망했고, 모친 버지니아는 1982년 딕 켈리와 재혼하는 등 빌 클린턴에게 어린 시절은 힘든 시기였다.

아칸소 주에서 벌어지던 인종 갈등을 목격하면서 흑인 민권 문제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고교 시절 아칸소 주 학생 대표로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PPE(철학, 정치, 경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포드 대학교 재학 관계로 외국에 체류하게 되어 병역의무가 면제되어 이후 병역을 기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 로스쿨에 입학해 3년 후 1973년에 J.D.(법무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예일 로스쿨 재학 중 한 학년 선배였던 힐러리 로댐을 만났다. 예일 로스쿨 졸업 후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아칸소 대학교 로스쿨에서 교수로서 법을 가르치다 1974년 28세의 나이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하고 1975년 힐러리 클린턴과 결혼한다.


2.정치

1976년 아칸소 주의 법무장관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에는 40대 아칸소 주지사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32세로 미국 최연소 주지사였다. 1980년에 공화당 후보 프랭크 화이트에게 패하고 낙선당했다. 1982년 42대 아칸소 주지사로 당선되었고 이후 1986년과 1990년 재선되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아칸소 주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3. 대통령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특히 불경기에 대한 이슈를 제기했는데 선거 운동 본부의 캠페인 문구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는 지금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현직 공화당 대통령 조지 H. W. 부시와 무소속 후보 로스 페로를 누르고 42대 대통령에 취임 12년간의 공화당 정부는 막을 내린다. 초기 계속된 실책으로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큰 패배를 안겨주었다. 특히 하원에서는 40년 만에 공화당에 다수석의 지위를 넘겨주었다. 1998년 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탄핵 직전까지 몰렸고 3000만 달러를 부정대출로 받은 화이트워터게이트 사건 등과 폴라 존스 사건 등 각종 스캔들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를 포함해 클린턴 정부의 정책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공무원 30만명을 해고했고 감세 정책을 폐기하고 누진세를 확대해 재정수입을 늘렸다. 재선에도 성공해 클린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로 두 번의 임기를 모두 채운 첫 번째 민주당 대통령이 된다


4. 퇴임후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이끌었던 대통령이며 역대 최고 지지율로 퇴임했다. 자서전 나의 삶(My Life, 2004년)을 발표해 베스트 셀러가 된다. 클린턴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향력이 크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출마했지만 표는 더 얻고 선거인단수에 뒤져 트럼프에 패했다.


5. 평가

스캔들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후 미국을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게 만들었던 유능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린턴 시기 IT산업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오늘날 미국 경제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 그리고 낮은 범죄율, 여성 권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6. 뒷이야기

베이비 부머 세대의 첫 번째 대통령이자, 역대 대통령들 중 시어도어 루즈벨트, 존 F. 케네디에 이어 3번째로 젊은 만 46세의 나이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빌과 힐러리 부부 사이에 1980년에 태어난 외동딸 첼시 클린턴이 있다. 백악관에서 사춘기를 보낸 첼시는 스탠포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원 석사, 옥스포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NBC 뉴스 특파원으로 일하다 현재 클린턴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2009년 8월 4일 미국 여기자 억류사태 해결 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해 여기자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햄버거를 즐기고 섹소폰 연주가 수준급이다. 최근 취임한 도널트 트럼프와 1946년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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