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서주 선왕중흥(宣王中興)기 주선왕 시대 설명

올드코난 2015. 2. 27. 22:00
반응형

기원전 841년 공화원년은 중국 역사상 그 연대가 확실히 입증된 최초의 해로 이 이전까지의 연대는 어느 정도 유동적인 면이 있으나 이 이후의 연대는 확실히 믿을 수 있다. 공화 14년(기원전 828년), 주 여왕이 사망하자 소공의 집에서 성장한 태자 정이 왕위를 이었으니 이가 바로 주나라 선왕(宣王)이다. 주여왕 이후 주왕실을 어느 정도 일으켜 세운 시기로 선왕중흥(宣王中興)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집권 후반 서주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는데


서주의 마지막 증훙기 선왕중흥(宣王中興)기 주선왕 시대 설명


1.주선왕 요약

서주 선왕 희정(西周 宣王 姬靜, ? ~ 기원전 782년) 서주(西周)의 제11대 왕(재위 : 기원전 828년 ~ 기원전 782년). 휘는 정(靜).

아버지 주 여왕이 기원전 842년에 국민 폭동에 의해 체(彘, 현재의 산시 성 훠저우 시)로 도망했고 이후 왕이 부재한 공화제가 실시되었다. 기원전 828년에 주 여왕이 사망한 후, 주 여왕의 아들인 정을 왕으로서 세웠다. 재위 중에 주 정공(周定公), 소 목공(召穆公)이 정치를 도와 국세가 중흥해 선왕중흥(宣王中興)으로 불리는 시기를 구축하였다. 선왕 시기 동생 우(友)를 정나라(鄭)의 군주에 봉했다. 이 시대에 주(籀) 의해 사주편(史籀篇)이 저술되어 서체의 하나인 대전(大篆)에 해당하는 전서가 완성되었다.


2. 원년에 대한 이설

사기 진기세가에서는 진 유공 12년에 서주 여왕이 달아났고, 진 유공은 재위 23년 만에 죽어 아들 진 희공이 뒤를 이었고, 진 희공 6년이 선왕 원년에 해당한다고 기록했다. 이는 공화의 시작이므로, 진 유공 12년은 서기 기원전 842년에 해당한다. 진 희공 6년은 진 유공 12년의 17년 후에 해당하므로, 서기로는 기원전 845년에 해당한다. 주 본기에 따른 주 선왕 원년과는 2년의 차이가 있다. 이는 서주 왕들이 즉위 후 1년과 3년 각각에 두 번 개원했을 것이라는 이중칭원법 가설의 한 증거가 된다


3. 열국지와 사기 참조 주선왕 설명

폭군 여왕(厲王)의 아들로 태어나 소공(召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해될 고비를 넘긴 주 선왕은 즉위 후 소공과 주공의 보좌를 받고 문왕, 무왕 등 선왕(先王)들의 유풍을 본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러자 제후들이 다시 주나라를 섬기기 시작했다. 사서에서는 이를 선왕의 중흥(中興)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질고 현명한 신하들을 등용해 많은 발전을 이룬 선왕도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점차 독단적으로 변했다. 선왕 40년(기원전 788년) 주나라가 요사스런 여자의 손에 멸망한다는 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선왕은 이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두백(杜伯)이란 대신을 파견해 요사스런 여자들을 잡아오되 의심이 가면 모두 죽여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두백은 충성스런 사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런 사람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기원전 785년, 선왕이 꿈을 꾸는데 꿈속에 요사스런 여자가 나타나 그의 왕위를 빼앗았다. 놀란 선왕은 두백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화가 나서 그를 죽여 버렸다. 이때 두백의 친구인 좌유(左儒)은 임금의 잘못을 간하다 왕이 듣지 않자 두백의 무죄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백은 억울하게 참수당하면서 유언을 남겼다. "임금께서 나를 죽이지만 나는 죄가 없다. 사람이 죽은 뒤에 만약 영혼이 있다면 나는 3년 후 기필코 임금에게 영혼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3년이 지난 후 선왕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다. 선왕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작은 수레가 오고 있었다. 말과 수레가 모두 흰색이었으며 안에는 빨간 옷에 빨간 관을 쓰고 빨간 활과 화살을 가진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수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대왕께선 그 간 별일 없으셨습니까?"하고는 인사를 했다.

선왕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두백과 좌유가 틀림없었다. 선왕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수레는 보이지 않았고 좌우에 있던 시종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수레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수레가 다시 선왕의 눈앞에 나타나 주위를 맴돌았다. 분노한 선왕이 보검을 들어 그들을 치려하자 "무도한 혼군(昏君)아! 임금의 덕은 닦지 않고 함부로 충신을 죽이다니. 혼군의 운수는 이미 다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잃었던 목숨을 찾으리라."하면서 붉은 화살로 선왕의 심장을 쏘았다. 선왕은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옥련 위에서 기절했다. 이후 선왕은 사흘 만에 사망했다. 

뒤를 이은 임금의 서주의 마지막 임금이며 폭군인 주유왕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