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Good-트로트

금잔디 - 번지없는 주막 [MV,뮤직비디오,노래 듣기,가사] 1940년 발표곡 가요무대 최대 애창곡

올드코난 2014. 2. 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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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코난 (Old Conan)이 추천하는 가수 금잔디 * 1940년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곡으로 백년설 (본명 이창민)의 대표곡이다. [제목] 금잔디 - 번지없는 주막 (원곡 백년설) [가수] 금잔디 (박수연) [장르] K-Pop, 트로트 [제작] 작사 추미림; 작곡 이재호(李在鎬, 1919년 10월 24일 ~ 1960년 6월 4일) [앨범] 금잔디 불멸의 명곡 1, 2(2012.10.8)

[Music Video/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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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e Singer] 한국의 가수/ 백년설

백년설(白年雪, 1914년 1월 19일 ~ 1980년 12월 6일)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한국의 가수로, 본명은 이갑용(李甲龍), 이창민(李昌民, 李昌珉)이다.

경상북도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대표곡은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이 있다.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은 남인수, 김정구, 진방남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편이라면, 백년설은 음정을 흔들어 구수하면서도 듣는 이에게 절규하는 듯한 독창적인 호소력이 특징이다. 친근한 맛을 주는 백년설의 창법은 서민적인 취향의 노래와 잘 어울려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했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아들의 혈서〉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논란이 일었다. 백년설은 남인수, 박향림과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가 1963년에 은퇴했다. 가수인 심연옥과 결혼한 뒤 1978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함께 이민을 갔으며, 약 2년 후인 1980년에 미국에서 사망했다. 고향 성주에 생가가 남아있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글 출처: 위키백과)

 

 

[Lyrics] 금잔디 번지없는 주막 노래가사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나리는 이밤도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여

어느 날짜 오시겠오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쿠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믿겠오 못믿겠오 울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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