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추존왕비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설명

올드코난 2016. 3. 1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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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중에서는 요절한 사람들이 많다. 단의왕후 역시 그러했는데, 경종의 정비였던 단의왕후 심씨는 실재 왕비가 아니었다. 간략히 설명해 본다.

추존왕비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설명


1.출생과 가계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1686년 7월 11일(음력 5월 21일) ~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 조선 20대 왕 경종(景宗)의 정비. 시호는 공효정목단의왕후(恭孝定穆端懿王后), 전호(殿號)는 영휘(永徽), 능호(陵號)는 혜릉(惠陵).

본관은 청송(靑松). 성은 심(沈). 세종의 장인 심온의 12대손이고, 명종의 장인 심강의 7대손이고 동서분당의 원인을 제공한 심충겸의 6대손이고 심봉서의 손녀이며, 첨정으로 후일 우의정, 영의정 등으로 추증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이다.


2. 세자빈

세자빈으로 책봉될 당시 증조부 심권(沈權: 당시 종4품 부응교)이 생존한 상태로 심권은 서인 핵심 인물 중 한 명었다. 1696년에 11살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경종과 가례를 올렸다.

흔히 알려진 병약한 왕세자(경종)를 곁에서 극진히 모시다가 급환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알렸지만, 숙종실록에 의하면 병약한 쪽은 세자빈 심씨였던 것 같다. 숙환으로 풍질(風疾: 중풍 등의 신경질환)을 앓았고 말이 횡설수설하는 증상이 있다고 하며 인현왕후의 상사에 예를 갖추지 못할 정도의 병을 앓았다고 한다. 가례 당시에도 극심한 복통을 일으켜 식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3.급사와 사후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인 숙종 44년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 갑자기 혼절해 돌연사했다. 왕세자 경종이 손수 지문을 지었고, 숙종은 그녀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단의(端懿)의 시호를 추서하고 단의빈으로 삼았다.

같은 해 어유구의 딸 어씨(선의왕후 어씨)가 14세(만 12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어 왕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혜릉(惠陵)의 능호와 영휘(永徽)의 전호를 받고 단의왕후로 추봉되었다. 후일 영조가 그녀에게 공효정목(恭孝定穆)의 휘호를 올렸다. 경종의 급서 후 그녀의 동생 심유현은 경종이 노론 환관들에 의해 유폐당한 뒤 독살되었다고 주장하며 이인좌의 난에 동참해 그로 인해 그녀의 친정가문이 몰락하였다.



4.올드코난 생각

개인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매우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면서 왜 숙종은 단의왕후를 며느리로 삼았을까 하는 점이다. 당시 숙종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경종을 위해서라도 세자빈의 간택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이미 경종에 대한 마음이 식어 연잉군을 향하던 숙종의 본심이 있던 것이 아닐까. 경종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단의왕후의 증상들은 한번만 만나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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