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대 왕중 가장 오래 재임한 왕은 영조이고 왕비 중 왕비재임기간이 가장 긴 왕비는 바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다. 가장 오래 재임한 왕과 왕비 의 기록 모두 이들 부부라는 점은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정성왕후에게는 상처의 시간이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에 대해 정리해 본다.
왕에게사랑받지 못한 왕비,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출생과 가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3년 1월 12일 (1692년 음력 12월 7일) ~ 1757년 4월 3일 (음력 2월 15일) 영조의 정비(正妃),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이다. 본관은 달성(達城).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2. 왕비
1704년, 연잉군(延仍君, 영조)과 혼인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책봉되었다. 이때 일화가 있는데 혼인 첫날 밤 연잉군이 서씨의 손을 보고는 왜 이리 곱냐고 물어보자 고생을 안해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아 그리했다고 대답하자 연잉군이 자신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깔본 것으로 간주해 이후로 찾지 않았다고 전한다. 사실여부를 떠나 영조는 정성왕후 서씨를 싫어했던 것은 사실이다.
1721년,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고 세제빈(世弟嬪)이 되었고 1724년, 경종이 죽고 연잉군이 왕으로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슬하에 자녀를 낳지는 못했다. 성격이 어질고 너그럽다고 전하며 정빈 이씨의 소생인 효장세자와 영빈 이씨의 소생인 사도세자를 친아들처럼 대하주어 많이 따랐다고 전한다.
3. 사후
1757년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66살의 나이(1757년 4월 3일(음력 2월 15일))로 죽었는데 당시 시어머니인 인원왕후 보다 한달 먼저 세상을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내에 홍릉이다. 영조는 이후 계비 정순왕후와 동구릉의 원릉 묻쳤다. 살아서도 외로웠고 죽어서도 남편과 곁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4. 올드코난 생각
정사를 보면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는 실재로 성품이 좋았다고 보인다. 자신이 아이가 없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후궁들의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와 사도세자에게 매우 잘해주었다고 나온다. 특히 사도세자는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정성왕후 사후 가장 슬퍼했던 사람도 사도세자였다. 정성왕후를 보면 영조가 업적이 많기는 하지만, 속이 꽉 막힌 사람이라는게 보인다. 무수리 아들이라는 혈통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기도 했지만, 원래 성격이 냉혹하다고 보이는 점이 많다. 다혈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으로 이후 사도세자의 죽음 이면에는 영조의 지나침이 분명 있다고 본다. 조선의 명군이었다는 영조의 정비였던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살다간 조선 왕비와 후궁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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