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하면 가장 먼저 장희빈이 떠오르고 이어서 나오는 이름이 인현왕후 민씨다. 대부분 장희빈은 악녀, 인현왕후는 선한 여인으로 알려졌는데, 인현왕후부터 살펴 본다.
왕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인,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설명
우선 일찍 요절한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를 간략히 소개한다.
[참고: 인경왕후]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1661년 10월 25일(음력 9월 3일) ~ 1680년 12월 16일(음력 10월 26일)) 조선 숙종의 정비로 본관은 광산(光山), 시호는 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순의인경왕후(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純懿仁敬王后). 본명은 김진옥(金盡玉)이며, 광성부원군 김만기와 서원부부인 한씨의 딸. 인현왕후와는 친·인척간이다.
1670년 10세 때 세자빈에 간택되고 다음해 음력 3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 하자 왕비가 되고 1676년 16세에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된다. 두 명의 공주를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1680년 음력 10월, 천연두 발병 8일 만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무덤은 고양시 용두동 서오릉 익릉(翼陵)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인경왕후가 후사가 없이 죽었기에 이후 계비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대립하게되는 이유가 된다.
이제 인현왕후 민씨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인현왕후 민씨 가계 및 출생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1667년 5월 15일(음력 4월 23일) ~ 1701년 9월 16일(음력 8월 14일)) 조선 19대 왕 숙종의 2번째 왕후(계비). 본관은 여흥(驪興),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송준길의 딸인 은성부부인 송씨의 차녀(次女).
2. 숙종의 계비가 되다.
1680년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죽고 다음해 1681년 외조부 송준길의 친척 아우 송시열의 후견으로 숙종의 계비(繼妃)가 되었는데, 당시 15살로 숙종보다 21살 차이가 난다. 너무 어린나이에 시집을 온데다가 당시 몸도 매우 허약했다고 한다. 더구나 숙종의 마음은 출궁당한 장희빈에 있어 숙종의 애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장희빈(당시 궁인)이 환궁되고 숙종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인현왕후는 지위가 매우 불안해지게 된다.
3. 폐위
1688년 후궁 장씨(소의 장씨)가 숙종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들 윤(昀)(후일의 경종)을 낳게 된다. 당시 숙종의 기쁨은 매우 컸고 원자로 정하려했지만,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들은 원자정호를 뒤로 미룰 것을 주장하는데 이는 장희빈이 남인이었기 때문이다. 서인의 상징 송시열 등이 송나라 철종의 고사를 예로 들며 원자 정호를 반대하자 숙종은 분노를 참지못했고 이는 기사환국으로 이어진다. 기사환국으로 1689년 서인들이 쫓겨나고 남인들이 집권하면서 인현왕후는 폐서인되어 안국동 사가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때는 남인과 서인들 모두 반대했었다. 남인들도 반대했다는 사실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싫어했다고 밖에는 볼수가 없는 것이다.
이 사건후 한 달 뒤 1689년 음력 6월 3일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사되면서 서인들은 구심점을 잃게된다.
4.복위
하지만, 서인을 몰아낸 남인들의 힘이 비대해지고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왕권 강화를 우선시했던 숙종에게 남인은 눈 밖에 나고 1694년 4월 1일 갑술환국이 일어났다. 남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들을 기용하고 정권을 교체한 숙종은 폐비(민씨)를 신원하는 자는 역률로 다스린다는 명을 내려 왕비를 교체할 마음이 없음을 선포 하지만 4월 9일, 숙종은 마음을 바꾼다. 4월 12일 서궁으로 입거하고 왕비 복위되고 왕비였던 장희빈은 빈으로 강등되어 본래의 희빈의 작호를 받게 된다.
이 문제로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데 노론은 폐비 민씨의 복위를 주장했고, 반면 소론은 장씨의 왕후직을 그대로 두고 인현왕후 민씨를 궐 내 서궁에 입주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둘로 나뉘게 되는데 서로 강경한 입장을 주고 받으면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게 된다.
이후 노론은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와 남인들을 제거하려 하지만 희빈 장씨와 왕세자(경종)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임을 안 소론의 제지로 남인 영수 민암 부자만을 죽이고 장희빈과 장희재를 살리게 되면서 이후 소론이 자연스럽게 경종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인현왕후는 전혀 개입도 되지 않았고 어떤 발언권도 없는 허울뿐인 왕비였다.
5. 최후
인형왕후는 왕비로 복위된 지 8년 만인 1700년 음력 3월경에 하반신이 부풀어 오르는 괴질이 발병 신체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투병하다 1701년 음력 8월 14일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사망한다. 이때 인현왕후는 희빈 장씨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말 했는데 숙종실록 27년(1701년) 9월 23일자에 인현왕후 민씨가 친정 민진후(閔鎭厚) 형제에게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빌미’란 장씨의 저주로 병에 걸렸다는 뜻이고 숙종실록에는 또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가 임금에게 몰래 (장씨의 저주를) 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숙종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장씨의 오빠 장희재를 처형하고 무고의 옥과 신사환국이 발생한다. 그리고 장희빈이 자진하고, 남인과 소론은 큰 화를 입게 된다.
인현왕후의 무덤은 서오릉에 있는 명릉(明陵)이고 시호는 효경숙성장순원화의열정목인현왕후(孝敬淑聖莊純元化懿烈貞穆仁顯王后)이다.
6. 뒷 이야기
서예를 잘했다고 전하는데 한글로 된 편지 서신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왜곡된 사실은 숙종이 장희빈에게서 아들(경종)을 빼앗아 인현왕후 민씨에게 줘버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종실록에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된 뒤 왕세자 윤(경종)이 민씨 아래로 입적되었다고 적혔는데 이는 '서자로서 아비의 뒤를 잇는 자는 적모에게 입적한다'는 당시 조선의 예를 따른 것이다.
인현왕후에 대해 다룬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은 내용이 실록과 일치하지 않고 사건과 인명 표기에도 오류가 많아 사료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지만 옛 한글 연구에눈 참고가 되고 있다고 하며 저자는 영조와 정조시대 인현왕후의 친족이나 그녀의 폐출에 반대했던 박태보의 후예가 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얻더 죽는 정도로 나오지만 실제 1년 6개월이상 힘든 투병생활을 겪다가 새벽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사인은 종기와 부종의 합병증으로 악성종기인데, 한의학에서는 '옹저'라고 부른다.
7. 올드코난 생각
드라마와 소설의 영향으로 인현왕후는 투기를 하지 않고 매우 선한 여자로 그려지지만, 실재로 실록에는 투기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고 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바람기가 심했던 숙종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남편 숙종을 놓고 인현왕후가 장희빈에 대해 느꼈을 질투와 분노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인현왕후의 반대편에 있던 장희빈이 남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서 남인들이 인현왕후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칠때도 서인과 남인들 모두 반대했다. 이는 숙종이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대할 때 정치적인 점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인 사심이 더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현왕후에 숙종은 약간의 애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소설만큼 투기가 전혀 없던 사람은 아니지만 본성은 선한 사림이었다. 이유는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영조)를 귀여워하고 사랑을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장희빈은 원수라고 여겨질 정도로 나쁜 사이였지만, 아들 경종을 친아들처럼 대해준 점은 인현왕후의 사람됨은 좋았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숙종은 사후 인형왕후 곁에 묻히길 원했는데, 이는 미안한 감정이 있거나, 다른 후궁들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해 딱히 곁에 있고 싶은 여인이 없기때문일 것이다. 숙종은 여자문제에 있어서는 나쁜남자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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