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東晉, 317년 ~ 420년)은 중국의 서진(西晉) 왕조가 유연(劉淵)의 전조(前趙)에게 멸망한 후, 진의 낭야왕(琅邪王) 사마예(司馬睿)가 강남(江南)에 세운 진(晉)의 망명 왕조로 서진과 구별해 동진이라고 부른다. 총 11명의 황제가 있었다.
중국 동진 시대 황제 계보
(묘호, 시호, 성명 순)
제1대진 중종 (晉中宗) 원황제 (元皇帝) 사마예(司馬睿)
능호 건평릉(建平陵)/ 재위기간: 317년 ~ 322년/ 연호: 건무(建武) 317년 ~ 318년, 대흥(大興) 318년 ~ 321년, 영창(永昌) 322년 ~ 323년
요약: 동진 원제(東晉 元帝, 276년 ~ 322년)는 중국 동진 의 초대 황제이다. 자는 경문(景文) 하내군(河内郡) 온현(溫縣) 출신. 봉지가 동쪽인 낭야였기에 낙양 근교에서 벌어진 팔왕의 난과 이민족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서진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건업에 주둔하며 서진 황족과 주변 호족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서진의 마지막 황제인 민제가 죽자 317년 동진을 세우고 제위에 올랐다.
제2대진 숙종(晉肅宗)명황제 (明皇帝)사마소(司馬紹)
연호: 태녕(太寧) 323년 ~ 326년/ 재위기간 322년 ~ 325년/ 능호 무평릉(武平陵)
요약: 동진 명제(東晉 明帝, 299년 ~ 325년)는 동진의 제2대 황제로 자는 도기(道畿)이다. 원제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순씨 (선비족 출신으로 소박맞았는데 나중에 재가했음).
제3대진 현종 (晉顯宗) 성황제 (成皇帝) 사마연(司馬衍)
연호: 함화(咸和) 326년 ~ 334년, 함강(咸康) 335년 ~ 342년/ 재위기간 325년 ~ 342년/ 능호 흥평릉(興平陵)
요약: 동진 성제(東晉 成帝)는 명제의 아들이며 자는 세근(世根)이다. 325년 명제가 죽자 5살의 나이로 즉위했다. 성제가 어렸기 때문에 태후가 국정을 처리했다. 336년에 두예(杜乂)의 딸인 두릉양(杜陵陽)을 황후로 삼았다. 341년에 황후 두릉양이 죽고 다음해 죽었다.
제4대강황제(康皇帝) 사마악(司馬岳)*묘호 없음
연호: 건원(建元) 343년 ~ 344년/ 재위기간 342년 ~ 344년/ 능호 숭평릉(崇平陵)
요약: 동진 강제(東晉 康帝)는명제의 아들이자 성제의 동복동생이며 자는 세동(世同)이다. 성제가 죽고 부자계승의 원칙에 따라 성제의 아들이 제위에 올라야 했으나 중서감 유빙이 "국가는 강한 적을 갖고 있으니 의당 어른이 된 군주를 세워야 한다"라고 하여 황제가 된다.
제5대진 효종 (晉孝宗) 목황제 (穆皇帝) 사마담(司馬聃)
연호: 영화(永和) 345년 ~ 356년, 승평(昇平) 357년 ~ 361년/ 재위기간 344년 ~ 361년/ 능호 영평릉(永平陵)
요약: 동진 목제(東晉 穆帝, 343년 ~ 361년) 자는 팽자(彭子). 343년에 강제와 저산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2살에 태자가 되고 그해 9월 강제가 사망하자 황제가 되었는데 저태후가 섭정하고 하충이 보좌했다. 하충은 재능과 식견이 있고 도량이 넓으며 친족이나 지인을 사사로이 돌보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렸다. 346년 정월에 하충이 죽고 좌광록대부 채모와 사도인 회계왕 사마욱이 정사를 보좌했다. 361년 5월에 재위 18년 만인 1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7월에 영평릉(永平陵)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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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애황제 (哀皇帝) 사마비(司馬丕) * 묘호 없음
연호: 융화(隆和) 362년 ~ 363년, 흥녕(興寧) 363년 ~ 365년/ 재위기간 361년 ~ 365년/ 능호 안평릉(安平陵)
요약: 동진 애제(東晉 哀帝, 341년 ~ 365년) 자는 천령(千齡). 341년 성제와 주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2살 때 낭야왕이 되었고 5살 때 산기상시가 되었다. 356년에 중군장군이 되고 359년에는 표기장군이 되었다. 361년 5월 자식없이 죽은 사촌동생 목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됐다. 364년 3월 곡기를 끊고 불로장생약만 먹다가 과다복용으로 중독되어 폐인이 되었다. 이듬해 365년 2월에 재위 5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태극전 서당에서 사망했다.
제7대폐황제 (廢皇帝) 해서공(海西公)사마혁(司馬奕)*묘호없음
연호: 태화(太和) 366년 ~ 371년/ 재위기간 365년 ~ 371년/ 능호 오릉(吳陵)
요약: 동진 폐제(東晉 廢帝, 342년 ~ 386년) 자는 연령(延齡) 342년에 태어났다. 애제의 친동생이다. 1살 때 동해왕이 되었다가 361년 5월에 낭야왕에 책봉되고 365년 2월에 애제가 사망하자 후사가 없어 뒤를 이었다. 대사마 환온이 북벌에 실패하자 반역의 뜻을 세우고 황제 사마혁을 남색가와 고자로 몰아 재위 7년 만에 폐위시키고 이듬해 1월에 해서현공으로 봉한 뒤 4월에 오현으로 유배보냈다. 사마혁은 이후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다 386년 45세의 나이로 오현에서 사망했다.
제8대진 태종 (晉太宗) 간문황제 (簡文皇帝) 사마욱(司馬昱)
연호: 함안(咸安) 371년 ~ 372년/ 재위기간 371년 ~ 372년/ 능호 고평릉(高平陵)
요약: 동진 간문제(東晉 簡文帝, 320년 ~ 372년) 자는 도만(道萬), 320년 원제와 정아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3살 때 낭야왕 7살 때 회계왕이 되었다. 간문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원제의 사랑을 받았고 풍채가 좋았다. 몸가짐이 단정했고 학문에 관심을 보였으며 서예를 좋아했다. 장성해서는 마음이 깨끗했고 욕심이 적었지만 큰 뜻은 없었다. 371년 11월에 환온이 폐제를 폐위한 뒤 사마욱을 황제로 추대했다. 그는 폐제의 할아버지 명제의 이복동생이었으므로 페제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황제에 즉위한 후, 대사마 환온을 불러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은근히 양심이 찔리던 환온은 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환온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친필로 '만약 진나라의 복이 오래 지속된다면 경이 이 나라를 섬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나라를 알아서 하라'라고 보냈다. 이에 환온은 정곡을 찔려 땀을 흘리며 대경실색했는데 그래도 환온의 위엄이 내외에 떨쳐 있어 간문제는 항상 폐위될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372년 7월에 재위 8개월 만에 53세의 나이로 태극전 동당에서 죽었다. 사마욱의 증손녀 왕씨(왕헌원)는 송나라 효무제 유준의 황후가 되었고 유준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유송의 폭군 전폐제 유자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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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진 열종 (晉烈宗) 효무황제 (孝武皇帝) 사마요(司馬曜)
연호: 영강(寧康) 373년 ~ 375년, 태원(太元) 376년 ~ 396년/ 재위기간 372년 ~ 396년/능호 융평릉(隆平陵)
요약: 동진 효무제(東晉 孝武帝, 362년 ~ 396년) 자는 창명(昌明). 362년 간문제와 이릉용의 육남으로 태어났다. 11세이던 372년 7월 황제에 즉위 태후가 섭정을 했고 4년 후인 376년 성인이 되자 정월부터정사를 처리했다. 환온에게 선양요구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날 뻔 했지만 중신들이 시간을 끌고 기다리던 환온이 사망하며 보위를 지키게 된다. 효무제는 총명하고 서예를 좋아했는데, 시 짓기를 좋아했다. 초기에는 선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우 낭야왕 사마도자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지냈다. 불교에 심취하여 노인, 승려, 비구니를 가까이 두어 총애했고 신하들은 당파 싸움을 자행해 동진의 정치를 더욱 혼란시켰다.
396년 9월에 후궁들과 주연을 베푼 뒤 총애하던 장귀인과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때 장귀인에게 30세가 넘었으니 이제 널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하겠다고 한 농담에 장귀인이 진담으로 알아듣고 그날 밤 장귀인은 자고 있던 효무제를 죽여 버린다. 재위 25년 향년 35세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제10대안황제 (安皇帝)사마덕종(司馬德宗) *묘호없음
연호: 융안(隆安) 397년 ~ 402년, 원흥(元興) 402년 ~ 404년, 의희(義熙) 405년 ~ 418년/재위기간 396년 ~ 418년/능호 휴평릉(休平陵)
요약: 동진 안제(東晉 安帝) 자는 안덕(安德). 효무제와 진귀녀의 맏아들로 태어나 5세 때인 387년에 태자가 되었다. 안제는 선천적으로 중증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에 말을 하지 못하고 모든 감각을 느끼지 못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따라서 혼자서는 목숨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그의 동복동생인 낭야왕 사마덕문(훗날 동진 공제)이 그를 평생동안 돌봐줘야만 했다.
397년 11월 6일에 효무제의 사망으로 즉위했지만 황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섭정을 맡은 숙부 회계왕 사마도자는 귀신에 빠졌고 주색에 여념이 없어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399년 사마도자의 아들 사마원현을 섭정으로 삼았는데 사마원현은 능력은 있지만 인격이 잔악무도하고 매우 탐욕스러워 뇌물을 받고 나라를 어지럽혔다. 결국 난을 일으킨 환현은 사마도자와 사마원현 부자의 목을 베어 안제를 생포했다. 403년 안제는 환현에게 강제로 선양당하고 평고왕으로 강등당했다가 404년 유유가 환현을 격파하고 안제를 복위시켰다. 이후 동진은 사실상 유유가 통치하고 유유는 유목지에게 내정을 맡기고 원정을 떠났는데 유목지가 사망하자 이 원정은 흐지부지 되어 유유는 그냥 중앙에 되돌아왔다. 이런 상황이 되자 유유의 인망이 땅으로 떨어지고 백성들이 안제를 동정하기 시작하자 유유는 안제를 돌봐주던 사마덕문이 병들어 몸져눕자 그 기회를 틈타 중서시랑 왕소지를 시켜 안제를 교살시키고 만다.
제11대공황제 (恭皇帝) 사마덕문(司馬德文) *묘호없음
연호: 원희(元熙) 419년 ~ 420년/재위기간 418년 ~ 420년/능호 충평릉(沖平陵)
요약: 동진 공제(東晉 恭帝)는 효무제의 아들이며 안제의 동복동생이다. 사마덕문은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6척 높이의 금불상을 제작했고 친히 와관사까지 10여 리를 걸으면서 금불상을 맞이했다. 성품이 신중하고 선량해서 지적장애를 앓고있는 형 사마덕종을 평생동안 돌봐줬다. 이러한 사마덕문의 훌륭한 인품 덕에 장위같이 그를 대신해서 죽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안제의 동복동생으로 태어난 공제는 중증의 지적장애를 지닌 형을 정성껏 돌봐서 인망을 크게 얻었다. 사마덕문이 깊은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을때 안제 사마덕종을 교살시키고 동진의 11대 황제가 되지만 유유의 괴뢰황제로 제위 2년 만인 421년 유유에게 선양하고 영릉왕으로 봉해졌다. 하지만 유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낭야낭중령 장위에게 독을 잔뜩 섞은 술단지를 쥐어준 뒤 이것을 사마덕문에게 먹여 자결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장위는 "이렇게 착한 황제를 독살하는 건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고 하면서 그 술을 자기가 먹고 자결함으로써 사마덕문을 대신해 죽었다. 이후 유유의 병사들이 사마덕문을 붙잡고 자결을 강요하자 사마덕문은 불교에서는 자살하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으니 죽이라 말하자 병사들은 사마덕문을 이불로 질식사시켰다.
이렇게 동진은 11대 103년만에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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