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이동 역사
(네이버에서 퍼온 글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민족이동역사 전체의 흐름을 먼저 설명합니다.
BC15세기 - BC5세기 정도 까지는 서쪽의 힘이 강해서 동으로 동으로 민족들이 이주하면서 문명기술을 동으로 전달해 주던 때입니다.
첫째 메소포타미아/이집트에서 발전한 청동기 문명이 에게해를 통하여 고대 그리이스 해상국가와 무역을 하던 흑해북부 민족(스키타이족)이 초원(모피)길로 시베리아를 거처 동아시아에 전파됩니다.
두번째 현재 소아시아땅의 히타이트가 개발한 철기문명 기술이 유목민족(스키타이족)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전파됩니다.
여기서 스키타이는 페르시아(아리아인종) 유목민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서쪽에 있던 민족들이 철기/청동기 기술을 바탕으로 동쪽에 있는 민족들에 비하여 군사능력이 우월하였기 때문에 동쪽으로 민족이동이 이루워 진 때입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BC8세기 - BC3세기)는 농업분야/사상/병법등과 함께 무기개발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한 때이고 또한 춘추전국시절에는 고도 기술을 가진 한족들의 일부가 혼란기의 흥망에 따라 만주로, 몽골로, 한반도로 피난을 옵니다.
이러한 결과로 중국 주변에 있던 민족의 농업기술 발전도 있었지만 무기 제조기술도 발달하게 되는 결과가 이루워 집니다. 북방 유목민족이 군사 최강국이 된 배경은 선진 기술(철기)을 유목민족이 배우기 시작하면서 기동력과 겸비하게 되면서 라고 보면 맞습니다.
BC3세기부터 AD16세기 까지는 동쪽의 힘이 강해져서 동쪽민족이 역으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주하였고 서쪽민족은 멸망하고 변동하는 역사흐름이 이루워 집니다.
17세기 이전까지 역사시대에 민족이동의 결과를 만든 세력이 유라시아에 있는 유목민족입니다.
이들 유목민족의 이동은 유목민족간의 전쟁 결과나 또는 중국과의 전쟁결과로서 패배한 유목민족이 서쪽으로 쫒겨나면서 시작하는데 극히 일부 즉 몽골 세계 정복의 결과로 서쪽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역사시대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패배자(또는 승리자)가 서진하여 서쪽민족을 정복하여 이여파로 서쪽의 역사가 계속하여 변동 하였지만 제정러시아의 동방진출 정책이전에 어떠한 국가도 동아시아를 침범할 생각조차 한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군사능력이 동아시아가 근세이전 까지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17세기 이후에는 서유럽이 해양강국이 되면서 동쪽민족이 서쪽을 정복하는 민족이동 흐름이 멈추어 버립니다.
문명교류 또는 분쟁은 구석기 시대로 부터 거슬러 가는 것이지만 청동기 이후에나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서 인지할수 있기 때문에 기원전 15세기 이후부터 흐름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커다락 맥락을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역명 및 민족계통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페르시아계는 스키타이, 사카족으로 불려지며 아리아계-백인종 입니다. 어족으로는 유럽-인도어족입니다.
투르크계는 백인종과 황인종이 혼혈된 민족인데 어족으로는 알타이어족입니다. 어족으로 보면 황인종(몽골계) 어족과 동일합니다. 고대 투르크어와 몽골어는 같든지 거의 유사합니다.
몽골계는 황인종이고 어족은 알타이어계 입니다.
퉁그스계는 만주/한국/일본인 이며 어족은 알타이어계입니다.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아랄해에서 발하쉬호 사이에 있는 남쪽지방입니다.
이식쿨, 일리강 지역은 발하쉬호에서 바이칼호 남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몽골초원은 잘 알려져 있어서 생략합니다.
만주는 흥안령산맥에서 연해주까지입니다.
이제부터 실제 사례로서 역사를 살펴봅니다. 본문은 역사시대에 있었던 민족들의 서진하는 역사를 다룹니다.
BC3세기경 동아시아 지역별 민족구성은 감숙성(돈황부근) 및 서쪽초원(이식쿨, 일리, 트란스옥시아나)지역은 페르시아계 민족(월지, 오손등)이 거주하였고 몽골초원은 훈누(흉노, 몽골-투르크계)족이 만주는 동이(몽골,퉁그스계)족이 거주하였습니다. 또한 현재 신강성 남부지역(비단길 시작지점)은 페르시아계 민족이 거주하였고, 툰두라 산림지역에서는 기록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투르크/몽골/퉁그스 족이 혼재하였다고 보여 집니다.
한나라 건국당시 흉노(몽골-투르크계)가 돈황북쪽에 있던 월지(페르시아계)을 몰아내자 패배한 월지가 파키스탄 북부(토하리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박트리아(그리이스계 국가) 멸망과 인도 마우리아왕조를 대체하는 쿠샨왕조가 성립하는 인도에서 민족대이동의 역사를 만듭니다. 쿠샨왕조는 월지족이든지 또는 월지족에 패배서 밀려난 민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그 여파로 서쪽지방에서 발생된 첫번째 민족이동이며 이후에도 이와 동일한 이동이 계속 반복되게 됩니다.
한무제때 곽거병, 위청의 활약으로 흉노가 더 서쪽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덩달아서 페르시아 유목민족은 더 서쪽으로 밀려나서 이식쿨, 일리강지역(바이칼호에서 발하쉬호 사이 지역)은 흉노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후한시대는 두가지 역사적 사건이 생깁니다.
한나라 반초가 서역을 정복하여 현재 신강성 일대를 장악하여 흉노를 패배시킵니다.
한나라가 만주요동 북쪽에 거주하던 선비/오환족(몽골-동이계)에게 북흉노를 공격하도록 요구하여 흉노가 몽골초원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후한시대 이러한 변혁의 결과로 흉노가 서쪽으로 패주하여 이실쿨, 일리강 유역에 거주하던 페르시아 민족은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 졌으며 이러한 여파로 2가지 세계사 변혁이 나타납니다.
1) 파르티아(이란, 이라크지역)가 북방에서 쫒겨 밀려오는 페르시아계 유목민족에게 망해서 사산조페르시아가 건국됩니다.
2) 훈족이 러시아 남부초원부터 독일까지 거주하던 게르만 족을 굴복시켜서 이를 피해서 도망간 게르만족이 로마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 흉노사 약술
흉노는 두만선우때 월지와 전쟁을 시작하고 그아들 묵특선우때 월지를 멸망시키고 동쪽으로 동호(몽골-퉁그스계)를 멸망시키고 한고조 유방을 백등산으로 유인 포위섬멸하면서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한의 형님국가로서 모든 북방초원을 통일하는 대제국을 건국하지만 후에 한무제부터 주도권을 빼았겨서 서흉노, 동흉노로 분열되었다가 후한에는 남흉노, 북흉노로 분열됩니다.
후한 광무제때 남흉노는 한나라에 복속하게 되나 북흉노는 한과 계속 전쟁을 하다가 선비에게 망합니다
***
중국5호16국시대에는 북방민족인 선비(몽골-퉁그스계)가 번성하여 중국북방을 정복하고 위(후위, 북위)를 건국하여 한족을 양자강 남쪽으로 쫒아내게 됩니다. 이선비족 중에서 중심이 되는 세력이 탁발족입니다. 이 탁발족은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수나라, 당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유연(투르크-몽골계)은 탁발족 지역 북방에 있던 유목민족인데 이들이 탁발족에 패해서 또 서쪽으로 이주합니다.
서쪽에서 이러한 역사결과로 나타난 것이 에프탈훈(몽골계)인데 이들이 페르시아계유목민을 또 패배시켜서 트란스옥시아나지역 마저도 몽골-투르크족의 땅이 됩니다. 에프탈훈 이후에는 아바르(몽골계)가 발하쉬호 북쪽에서 밀려와서 사산조를 압박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혁으로 서쪽에서 나타난 역사의 결과는 크게 세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1) 에프탈훈은 인도로 침략하게 되어 인도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2) 에프탈, 아바르가 사산조페르시아를 수시로 침략하여 군사강국이던 사산조가 약화됩니다. 사산조에 이러한 북방민족의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면 비잔틴제국은 사산조의 침략에 국가존립의 어려움을 격었을 것입니다.
3) 비잔틴 제국은 이때 시리아, 소아시아에서의 이득만 본것은 아닙니다. 북방유목민족이 카스피해를 북쪽으로 넘어와서 발칸반도의 비잔틴제국 영토가 침식당하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1000년동안 동쪽에서 밀려오는 유목민족으로 부터 유럽을 지키고 또한 오리엔트를 지키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5호16국 부터 당나라 까지의 패배한 유목민족의 여러차레에 걸친 민족이동의 여파를 콘스탄티노플이 1000년동안 힘들게 지켜낸 것입니다.
3-1) 몽골-투르크에게 패배하여 밀려온 슬라브족이 발칸반도의 비잔틴제국의 로마인을 추방합니다.
3-2) 투르크(오구즈) 민족이 슬라브족을 정복하여 지배하여 혼혈되어 생긴 불가리아족이 발칸반도로 밀려와서 강국이 됩니다.
3-3) 마자르족(우랄어족, 헝가리)이 또 발칸반도로 쫒겨와서 발칸의 강국이 됩니다.
3-4) 트란스옥시아나에 있던 아바르족이 발칸반도 북쪽지방까지 밀려옵니다.
다음 수/당나라 때를 설명합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가 흔히 중국한족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수,당은 사실은 선비족 일파인 탁발족이 왕족 또는 귀족입니다. 수나라/당나라의 본질은 유목민 피를 가진 나라라서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것으로 보면 됩니다.
돌궐 퀠테긴, 빌케 칸 비문에 수, 당을 타부가치(탁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즉 돌궐인의 눈에는 수, 당이라는 중국식 왕조를 표시하지만 탁발족은 옷을 바꿔입어도 탁발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구려가 수당과의 전쟁을 기록한 문서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면 여기에도 탁발이라고 썻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나라 양제는 돌궐을 압도하고 북방장악을 마무리하기 위한 고구려 침공에서 대패하여 중국의 힘이 위축된 틈을 타서 돌궐은 다시 힘을 잠시 회복하였습니다.
위대한 고구려 침략으로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 태종(이세민)의 돌궐압도후에 다시 고구려침공에 패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수양제와는 달리 뛰어난 황제라서 바로 사태를 수습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은 패하지만 돌궐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북방을 안정시킵니다. 사실 고구려가 당태종에게 패배하였다면 돌궐도 멸망하였겠지만 뒤에 고구려를 둔 상태에서 당이 돌궐과의 총력전을 벌일수는 없겠지요.
** 참고 1) 중국의 북방민족 정복 전략
고구려는 반농/반유목국가라서 고정된 서울(평양)이 존재하지만 북방 유목민족의 서울은 천막보따리를 싸서 다른 곳에 펼치면 서울이 바뀝니다. 그래서 유목민족 정복은 이러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고대 중국(한, 당)이 북방을 정복할때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1) 유목민족(흉노, 돌궐)에게 한펀치 세게 날린 다음에 유목민족을 그로키 상태로 먼저 만들어 놓습니다.
2) 한국(조선, 고려)은 수도(평양)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힘을 집중하여 한국을 점령합니다.
3) 서울이 없는 유목민족은 몇회의 정벌사업으로 전쟁을 끝낼수 없기 때문에 동쪽의 위협(한국)이 사라진 다음에는 전력을 집중하여 유목민족을 계속(수십년-수백년) 압박하여 고사시키는 전략입니다.
참고 2) 돌궐사 약술
6세기 중엽 부민 칸에 의하여 나라가 건국되어 강국으로 탄생하고 그아들 이스테미 칸때 전성기가 됩니다. 사산조페르시아를 괴롭히던 에플탈을 멸망시킨 이들이 돌궐입니다. 이후 궐은 동돌궐, 서돌궐로 분열되고 서로 싸우는 과정 그리고 수/당의 압박으로 약해지나 동돌궐의 새로운 영웅 카파간 칸, 퀸테긴, 빌케 칸 때 잠시 북방 초원지대를 통일하였으나, 당 무측천에게 패해서 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위그르가 돌궐을 멸망시킵니다
이후에는 무측천(고종 황후)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모든 무력을 돌궐 압박과 거란족(후에 나오는 아율라보기의 요나라 이전국가)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당현종(양귀비 남편 이융기)때 돌궐을 압박하고 국력이 쇠약해진 돌궐을 위그르가 멸망시키게 됩니다. (위그르는 돌궐과 달리 친 당정책을 추진한 나라입니다)
또한 발해도 초기 이후에는 당나라와 화친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당현종은 내치에 있어서도 개원치세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하였지만 외교능력도 탁월한 사람입니다. 북방의 강력한 국가 위그르, 발해와 전쟁을 치루지 않고 동아시아에서 종주국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지요.
당현종 때에는 이렇게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서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고선지장군이 티벳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 장악하였으나, 고선지장군은 장군으로는 뛰어난 사람이지만 정치적(외교)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타쉬켄트(투르크계) 왕은 당나라에 충성을 거듭하여 맹세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역방어 업무를 소홀하게 하였다는 명목으로 잡아 죽이는 처벌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중앙아시아 여러 투르크국가들의 광범위한 저항을 가져오게 됩니다. 타쉬켄트 왕의 부하들이 카를룩(투르크계 발하쉬호 남부지역)에 가서 당나라에 항쟁할 것을 촉구하면서 고선지는 남에서 오는 이슬람군대와 뒤에서 오는 카를룩 군대에 패배하게 됩니다. 카를룩은 내친 걸음에 중앙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장악하는 투르크를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하고 중앙아시아가 이슬람세력권이 되는 계기가 된것이 탈라스 전투의 결과입니다.
사실은 당나라의 현종이 양귀비에 미치지만 않았다면 탈라스의 패배 이후라도 현종은 이를 수습하고 다시 중앙아시아를 다시 정복할수 있는 세력을 가진 나라이지만, 양귀비에 미쳐서 나중에 국사를 소홀히 한 결과로, 안록산 반란이후 동아시아 자체가 혼란기에 빠져서 동아시아 내부의 주도권다툼으로 서역 정벌사업을 추진할수 없었지만 동아시아가 이슬람보다 힘이 부족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슬람세력은 당의 침략을 간신히 막아낸 것에 만족하는 수준이지 결코 동아시아를 공격할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동쪽에서 패배한 투르크는 민족대이동을 하게 됩니다.
북아시아 초원은 돌궐을 몰아낸 위그르가 투르크족의 주인공인 되는 국가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발하쉬호 남쪽에 있던 작은 투르크국가 카를룩이 탈라스전투이후 서진하는 돌궐(투르크족) 일부를 통합하고 규모있는 국가로 성장하였다가 발하쉬호 북서쪽에 있던 오구즈(오우즈)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위그르는 잠시 북아시아 초원을 지배하다가 거란(요)에 의하여 북방초원에서 패하여 중국 신강성 남부지역(비단길 시작점인 쿠차, 투르판, 카슈카르)에 거주하던 페르시아계 민족을 다시 또 추방하고 덩달아 인도에서도 또한차례 민족이동의 역사를 만들지요. 이 위그르족은 현재에도 이곳에 그대로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야율라보기가 건국한 요(키타이, 몽골계)는 중국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송태조 조광윤 이후에는 송을 동생국으로 만드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합니다.
여진족(퉁그스계)은 아골타를 중심으로 뭉쳐서 금을 건국하고 요를 멸망시킵니다.
페르시아계 민족을 완전히 밀어내서 서쪽 초원지대(트란스옥시아나부터 카스피해까지)에 거주하던 투르크족은 또다시 동쪽에서 밀려오는 패배자들에게 또 패해서 더 서쪽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오구즈족의 일부는 카스피해 북쪽으로 서진하여 슬라브족을 지배하여 불가리아족을 성형한 이들이 더 서쪽으로 밀려나 발칸반도까지 오게 되고, 오구즈의 주력집단은 카스피해 남쪽으로 서진하여 이슬람세계로 지배자로 통치합니다. 이들이 셀주크투르크입니다. 이들은 이슬람권을 다시 통합시키는 셀주크조를 건설하고 이전까지 실질적인 통치자 칼리프를 단순한 종교지도자로 만들고 투르크의 왕이 슐탄이라는 칭호로 이슬람 세계를 통치합니다.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카라한조라는 투르크족이 지배합니다. 인도는 가즈니라는 투르크 국가가 지배합니다.
인도의 아리안족은 이후에도 1000년간 역사에서 대부분을 북에서 내려오는 투르크(또는 몽골)족을 왕족으로 모시고 살았던 약소국 민족입니다.
이러한 서쪽의 지역구도를 또 바꾸게 만든 민족이 여진에게 패배하여 서쪽으로 밀려난 거란족의 일부가 건국한 서요(카라키타이)입니다.
카라키타이는 투르크의 카라한조를 멸망시키고 트란스옥시아나지역과 이식쿨, 일리강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서쪽 투르크는 계속 서진하여 소아시아 입구에서 비잔틴제국과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드디어 소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현대의 터키는 흉노 -> 돌궐 -> 카를룩 -> 오구즈 -> 셀주크투르크 -> 오스만투르크 -> 터키 로 이어지는 민족이동의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이과정에서 페르시아계 유목민과 혼혈되고 그리이스인과 또 혼혈되는 긴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터키인이 되는데 요즘에 보면 백인종에 많이 가까워 보입니다.
*** 참조 필자 생각 : 흉노족의 인종적인 분류
이부분은 필자의 생각인데 원형이 되는 흉노는 황인종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이전 스키타이인과 몽골로이드의 혼혈로서 흉노가 있었겠지만 언어를 유럽-인도어족이 아닌 알타이어족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점을 보면 흉노의 많은 인구구성은 황인종이거나 또는 역사이전시대에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알수 없으나 지배계층이 되는 사람은 흉노때에는 몽골로이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강성에 거주하는 위그르족도 몽골초원에 거주하던 투르크족과 과거부터 이지역에서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살고 있었던 아리아족(백인종)이 혼혈이 되어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위그르족은 요즘에 보기에도 황인종 1/2 백인종 1/2 정도의 유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혼혈되기전 몽골초원에 살던 때는 현재보다 훨씬 더 몽골로이드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재도 일본 북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족은 백인종에 더 가깝다고 하니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리고 지금도 북부 시베리아 지방에도 투르크족과 퉁그스족가 혼재하여 살고 있다고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퉁그스족보다 좌표상으로 더 북쪽 그리고 더 동쪽에도 살고 있다고 하니.....
이러한 민족들이 혼재하여 살고 있는 모습에서 많은 역사가들이 투르크족과 몽골족을 고대사에서는 분리하기 극히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흉노를 몽골-투르크계 국가라고 하나로 합하여 이야기 하고 있나 봅니다. 언어도 고대에는 몽골어와 투르크어와의 차이를 구분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구요.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현재 터키어는 알타이어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처럼 만에 몽골계에 비하여 투르크족이 강세로 되어 카라키타이를 이식쿨, 일리지역으로 쫒아낸 호레즘이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트란스옥시아나을 지배하였던 투르크계는 극히 잠시 동안만(10-20년 정도) 큰소리 치다가 징기스칸을 만나게 됩니다.
징기스칸은 몽골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위압하고 호레즘을 순식간에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후예들이 동유럽을 정복하고 이슬람을 정복하고 송나라를 정복한 대제국 원과 4한국을 건국합니다. 위대하였던 기마군단은 몽골족 내부의 왕위타툼과 승계권 문제로 팽창을 멈추고 귀퉁이에 간신히 붙어 있던 이집트 맘루크조, 유럽은 간신히 숨을 돌리게 됩니다.
이슬람(아랍, 페르시아)은 투르크, 몽골에게 정복당하지만 지배자인 투르크 몽골을 그들의 문화에 동화시켜서 몽골/투르크의 힘에 의지하여 이슬람의 세력을 더욱 팽창하도록 한 역사를 가지고 되는 것이 다음 역사의 장입니다.
징기스칸 이후의 정복왕 티무르 (몽골성향의 투르크족)가 잠시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이후,
1) 투르크가 인도를 점령하여 건국한 무굴제국
2) 오스만 투르크가 또 간신히 숨만 쉬고 있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발칸을 지배하는 마지막 서진의 역사를 창조하고
3) 동아시아에서는 또다른 북방민족 만주족이 강대국 청나라를 건국한 이후 우리는 서유럽의 전성기라는 새로운 흐름은 200-300년간 보게 된것이 현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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