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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8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6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이 모양으로 연이어 오는 폭격에 중경에는 인명과 가옥의 손해가 막대하였으며 동포 중에 죽은 이는 신익희씨 조카와 김영린의 아내, 두 사람이 있었다. 이 두 동포가 죽던 폭격이 가장 심한 것이어서 한 방공호에서 4백명이니 8백명이니 하는 질식자를 낸 것도 이때였다. 그 시체를 운반하는 광경을 내가 목도하였는데 화물자동차에 짐을 싣듯 시체를 싣고 달리면 시체가 흔들려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고 그것을 다시 싣기가 귀찮아서 모가지를 매어 자동차 뒤에 달면 그 시체가 땅바닥으로 엎치락 뒤치락 끌려가는 것이었다. 시체는 남녀를 물론하고 옷이 다 찢겨서 살이 나왔는데 이것은 서로 앞을 다투어 발악한 형적이었다. 가족을 이 모양으로 잃어 한 편에 통곡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편에는 방..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5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호종남 장군은 출타하여서 참모장만을 만나고 성주석 축소주 선생은 나와 막역한 친우라 이튿날 그의 사저에서 석반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성당부에서는 나를 위하여 환영회를 개최한다 하고 서안 부인회에서는 나를 환영하기 위하여 특별히 연극을 준비한다 하고 서안의 각 신문사에서도 환영회를 개최하겠으니 출석하여 달라는 초청이 왔다. 나는 그 밤을 우리 동포 김종만씨 댁에서 지내고 이튿날은 서안의 명소를 대개 구경하고 저녁에는 어제 약속대로 축 주석 댁 만찬에 불려갔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돌아와 수박을 먹으며 담화를 하는 중에 문득 전령이 울었다. 축 주석은 놀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중경에서 무슨 소식이 있나 보다고 전화실로 가더니 잠시 후에 뛰어 나오며, "왜적이 항복한다!"..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4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이리하여 5당 통일도 실패되어서 나는 민족진영 3당의 동지들과 미주, 하와이 여러 단체에 대하여 나의 불명한 허물을 사과하고 이어서 원동에 있는 3당만을 통일하여 새로 한국독립당이 생기게 되었다. 하와이 애국단과 하와이 단합회가 각각 해소하고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가 되었으니 역시 5당 통일은 된 셈이었다. 새로 된 한국독립당의 간부로는 집행위원장에 김구, 위원으로는 홍진, 조소앙, 조시원, 이청천, 김학규, 유동열, 안훈, 송병조, 조완구, 엄항섭, 김붕준, 양묵, 조성환, 차이석, 이복원이요, 감찰위원장에 이동녕, 위원에 이시영, 공진원, 김의한 등이었다. 임시 의정원에는 나를 국무회의의 주석으로 선거하였는데, 종래의 주석을 국무위원이 번갈아 하던 제도를 고쳐서 대내..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3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광주에서는 중국 군대에 있는 동포 이준식, 채원개 두 분의 알선으로 동산백원을 임시 정부의 청사로, 아세아 여관을 전부 우리 대가족의 숙사로 쓰게 되었다. 이렇게 정부와 가족을 안돈하고 나는 안의사 미망인과 가족을 상해에서 나오게 할 계획으로 다시 향항으로 가서 안정근, 안공근 형제를 만나 강경하게 그 일을 주장하였으나 그들은 교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듣지 아니하였다. 사실상 그때 사정으로는 어렵기도 하였다. 나는 안의사의 유족을 적진 중에 둔 것과 율양고당암에서 중국 도사 임한정에게 선도를 공부하고 있던 양기탁을 구출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다. 향항에서 이틀을 묵어서 광주로 돌아오니 거기도 왜의 폭격이 시작되었으므로 또 나는 어머님과 우리 대가족을 불산으로 이접하게 하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2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어머니는 대로하여서, "내 아들을 찾는 데는 내가 경관들보다 나을 터이고, 또 가라고 허가를 하여서 가장집물을 다 팔게 해놓고 이제 또 못 간다는 것이 무슨 법이냐. 너희놈들이 남의 나라를 빼앗아 먹고 이렇게 정치를 하고도 오래 갈 줄 아느냐." 하면서 기절하셨다. 이에 경찰은 어머니를 김씨네에게 맡기고 가 버렸다. 그 후에 경찰이 물으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썽 많은 길은 안 떠난다." 하시고는 목수를 불러 다시 집을 수리하고 집물을 마련하시는 등 오래 사실 모양을 보이셨다. 이러하신 지 수삭 후에 어머니는 송화 동생을 보러 가신다 칭하고 신아를 데리시고 신천으로, 재령으로, 사리원으로 도막도막 몸을 옮겨서 평양에 도착하여 숭실중학교에 재학 중인 인아를 데리고 안동현으..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1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다시 남경으로 돌아왔으나 왜는 내가 남경에 있는 냄새를 맡고 일변 중국 관헌에 대하여 나를 체포할 것을 요구하고 일변 암살대를 보내어 내 생명을 엿보고 있었다. 남경 경비사령관 곡정륜은 나를 면대하여 말하기를, 일본측에서 대역 김구를 체포할 것이니 입적 기타의 이유로 방해 말라 하기로, 자기가 김구를 잡거든 일본서 걸어 놓은 상금은 자기에게 달라고 대답하였으니 조심하라고 하였다. 또 사복 입은 일본 경관 일곱이 부자묘 부근으로 돌아다니더라는 말도 들었다. 이에 나는 남경에서도 내 신변이 위험함을 깨닫고 회청교에 집 하나를 얻고 가흥에서 배 저어주던 주애보를 매삯 15원씩 주기로 하고 데려다가 동거하며, 직업은 고물상이요, 원적은 광동성 해남도라고 멀찍이 대었다. 혹..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0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가흥 성내에 있는 진명사는 유명한 도주공의 집터라 한다. 그 속에는 축오자(암소 다섯 마리를 기른다)하고 또 양어하던 못이 있고 절문 밖에는 도주공유지라는 돌비가 있다. 하루는 길로 돌아다니다가 큰 길가 마당에서 군사가 조련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있기로 나도 그 틈에 끼었더니 군관 하나가 나를 유심히 보며 내 앞으로 와서 누구냐 하기로 나는 언제나 하는 대로 광동인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군관이 정작 광동인인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는 곧 보안대 본부로 붙들려 갔다. 저씨 댁과 진씨 댁에 조사한 결과로 무사하게는 되었으나 저 봉장 군은 내가 피신할 줄을 모른다고 책하고 그의 친우요, 중학교 교원인 과부가 하나 있으니 그와 혼인하여 살면서 행색을 감추라고 권하였다. 나는..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9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진씨 내외와 동반하여 남호 연우루와 서문 밖 삼탑 등을 구경하였다. 여기는 명나라 때에 왜구가 침입하여 횡포하던 유적이 있었다. 동문 밖으로 10리 쯤 나아가면 한나라 적 주매신의 무덤이 있고 북문 밖 낙범정은 주매신이 글을 읽다가 나락 멍석을 떠내려 보내고 아내 최씨에게 소박을 받은 유적이라고 한다. 나중에 주매신이 회계태수가 되어 올 때에 최씨는 엎지른 동이의 물을 주워담지 못하여 낙범정 밑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가흥에 우접한 지 얼마 아니하여 상해 일본 영사관에 있는 일인 관리 중에 우리의 손에 매수된 자로부터, 호항선(상해, 항주 철도)을 수색하러 일본 경관이 가니 조심하라는 기별이 왔다. 가흥 정거장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 보았더니 과연 변장한 왜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8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은, "자동차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 공원을 향하여 달렸다. 그 길로 나는 조상섭의 상점에 들려 편지 한 장을 써서 점원 김영린을 주어 급히 안창호 선생에게 전하라 하였다. 그 내용은 '오전 10시경부터 댁에 계시지 마시오. 무슨 대사건이 있을 듯합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석오 선생께로 가서 지금까지 진행한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7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새로 얻은 동지 이덕주, 유진식은 왜 총독의 암살을 명하여 먼저 본국으로 보냈고 유상근, 최흥식은 왜의 관동군 사령관 본장번의 암살을 명하여 만주로 보내려고 할 즈음에, 윤봉길이 나를 찾아왔다. 윤 군은 동포 박진이가 경영하는, 말총으로 모자 기타 일용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근래에는 홍구 소채장에서 소채 장수를 하던 사람이다. 윤봉길 군은 자기가 애초에 상해에 온 것이 무슨 큰 일을 하려 함이었고 소채를 지고 홍구 방면으로 돌아다닌 것도 무슨 기회를 기다렸던 것인데, 이제는 중일간의 전쟁도 끝이 났으니 아무리 보아도 죽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탄한 뒤에, 내게 동경사건과 같은 계획이 있거든 자기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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