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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8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24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유인무는 그동안 나를 이리저리로 돌린 연유를 설명하였다. 이천경이나 이시발이나 성태영이나 유인무와는 다 동지여서 새로운 인물을 얻으면 내가 당한 모양으로 이 집에서 한 달, 저 집에서 얼마, 이 모양으로 동지들의 집으로 돌려서 그 인물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그 인물이 벼슬하기에 합당하면 벼슬을 시키고, 장사나 농사에 합당하면 그것을 시키도록 약속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시험의 결과로 아직 학식이 천박하니 공부를 더 시키도록 하고 또 상놈인 내 문벌을 높이기 위하여 내 부모에게 연산 이천경의 가대를 주어 거기 사시게 하고 인근 몇 양반과 결탁하여 우리 집을 양반 축에 넣자는 것이었다. 유인무는 이런 설명을 하고,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문벌이 양반이 아니고는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23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튿날 조반 후에 어떤 키가 후리후리하고 얼굴이 숨숨 얽은, 50세나 되었음직한 사람이 서슴지 않고 사랑으로 들어오더니 내 앞에서 글을 배우고 있는 윤태를 보고, "그 새에 퍽 컸구나. 안에 들어가서 작은 아버지 나오시래라 내가 왔다고." 하는 양이 이춘백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윽고 진경이가 윤태를 앞세우고 나와서 그 손님에게 인사를 한다. "백씨 소식 못 들었지?" "아직 아무 소식 없습니다." "허어, 걱정이로군. 유인무의 편지 보았지?" "네, 어제 받았습니다." 주객간에 이런 문답이 있고는 진경이가 장지를 닫아서 내가 앉아 있는 방을 막고 둘이서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는 아니 듣고 두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문답은 이러하였다. "유..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21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하루는 물을 길어오다가 물통 하나를 깨뜨린 죄로 스님한테 눈알이 빠지도록 야단을 맞았다. 어떻게 심하게 스님이 나를 나무라셨는지 보경당 노승님께서 한탄을 하셨다. "전자에도 남들이 다 괜찮다는 상좌를 들여 주었건마는 저렇게 못 견디게 굴어서 다 내어 쫓더니 이제 또 저렇게 하니 원종인들 오래 붙어 있을 수가 있나. 잘 가르치면 제 앞쓸이는 할 만하건마는."하고 하은당을 책망하셨다. 이것을 보니 나는 적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면 다른 사미들과 같이 예불하는 법이며 "천수경", "심경" 같은 것을 외고 또 수계사이신 용담 스님께 "보각서장"을 배웠다. 용담은 다시 마곡에서 불학만이 아니라 유가의 학문도 잘 아시기로 유명한 이었다. 학식만이 아니라, 위인이 대체..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20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함평을 떠나 강진, 고금도, 완도를 구경하고 장흥을 거쳐 보성으로 갔다. 보성서는 송곡면(지금은 득량면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득량리에 사는 종씨 김광언이라는 이를 만나 그 여러 댁에서 40여 일이나 묵고 떠날 때에는 그 동네에 사는 선씨 부인한테 필냥 하나를 신행 선물로 받았다. 보성을 떠나 나는 화순, 동복, 순창, 담양을 두루 구경하고 하동 쌍계사에 들러 칠자아자방을 보고 다시 충청도로 올라와 계룡산 갑사에 도착한 것은 감이 벌겋게 익어 달리고, 낙엽이 날리는 늦은 가을이었다. 나는 절에서 점심을 사먹고 앉았더니 동학사로부터 왔노라고 점심을 시켜 먹는 유산객 하나가 있었다. 통성명을 한즉, 그는 공주에 사는 이 서방이라고 하였다. 연기는 40이 넘은 듯한데 그가 들려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9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옥에서 사귀었던 진오위장을 찾아갔다. 이 사람은 남영희궁에 청지기로 있는 사람으로서 배오개 유기장이 5, 6인과 짜고 배를 타고 인천 바다에 떠서 백동전을 사주하다가 깡그리 붙들려서 일년 동안이나 나와 함께 옥살이를 하였다. 그들은 내게 생전 못잊을 신세를 졌노라 하여 나에게 출옥하는 날에는 꼭 찾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내가 영희궁을 찾아간 것은 황혼이었다. 진오위장은 마루 끝에 나와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아이구머니, 이게 누구요?" 하고 버선발로 마당에 뛰어내려 와서 내게 매달렸다. 그리고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가 나온 곡절을 듣고는 일변 식구들을 불러서 내게 인사를 시키고 일변 사람을 보내어 예전 공범들을 청해 왔다. 그들은 내 행색이 수상하..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8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3. 방랑의 길 옥에서는 나왔으나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 늦은 봄 안개가 자욱한 데다가 인천은 연전 서울 구경왔을 때에 한 번 지났을 뿐이라, 길이 생소하여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에 물결소리를 더듬어서 모래사장을 헤매다가 훤히 동이 틀 때에 보니 기껏 달아난다는 것이 감리서 바로 뒤 용동 마루턱이에 와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휘휘 둘러보노라니 수십 보밖에 순검 한 명이 칼 소리를 제그럭제그럭 하고 내가 있는 데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길가 어떤 가겟집 함실 아궁이를 덮은 널빤지 밑에 몸을 숨겼다. 순검의 흔들리는 환도집이 바로 코끝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아궁이에서 나오니 벌써 환하게 밝았는데, 천주교당의 뾰족집이 보였다.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7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그 뒤에도 제 2차, 제 3차로 관계있는 각 아문(관청)에 소장을 드려 보았으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이 모양으로 김주경은 7,8개월 동안이나 나를 위하여 송사를 하는 통에 그 집 재산은 다 탕진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번갈아서 인천에서 서울로 오르락내리락하셨으나 필경 아무 효과도 없이 김주경도 마침내 나를 석방하는 운동을 중지하고 말았다. 김주경은 소송을 단념하고 집에 돌아와서 내게 편지를 하였는데, 보통으로 위문하는 말을 한 끝에 오언절구 한 수를 적었다. '(탈농진호조 발호기상린 구충필어효 청간의려인) 새는 조롱을 벗어나야 좋은 상이며 고기가 통발을 벗어나니 어찌 예사스러우랴. 충신은 반드시 효 있는 집에서 찾고 효자는 평민의 집..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6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밤이 초경이 되어서 밖에서 여러 사람이 떠들석하고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옳지. 이제 때가 왔구나." 하고 올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한방에 있는 죄수들은 제가 죽으러 나가기나 하는 것처럼 모두 낯색이 변하여 덜덜 떨고 있었다. 이 때 문 밖에서, "창수, 어느 방에 있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방이요." 하는 내 대답은 듣는 것 같지도 않고, 방문도 열기 전부터 어떤 소리가, "아이구, 이제는 창수 살았소! 아이구, 감리 영감과 전 서원과 각청 직원이 아침부터 밥 한 술 못 먹고 끌탕만 하고 있었소---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이느냐고. 그랬더니 지금 대군주 폐하께옵서 대청에서 감리 영감을 불러 계시고, 김창수..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5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며칠 전보다는 기운이 회복되었으므로 모여 선 사람들을 향하여 한바탕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 왜놈들이 우리 국모 민 중전마마를 죽였으니 우리 국민에게 이런 수치와 원한이 또 어디 있소? 왜놈의 독이 궐내에만 그칠 줄 아시오? 바로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이 필경은 왜놈의 손에 다 죽을 것이오. 그러니 여러분! 당신들도 나를 본받아서 왜놈을 만나는 대로 다 때려 죽이시오. 왜놈을 죽여야 우리가 사오." 하고 나는 고함을 하였다. 와나다베놈이 내 곁에 와서, "네가 그렇게 충의가 있으면 왜 벼슬을 못하였나?" 하고 직접 내게 말을 붙인다. "나는 벼슬을 못 할 상놈이니까 조그마한 왜놈이나 죽였다마는, 벼슬을 하는 양반들은 너의 황제의 모가지를 베어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하고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4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이 감리사가 나를 심문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나 김창수는 하향 일개 천생이건마는 국모 폐하께옵서 왜적의 손에 돌아가신 국가의 수치를 당하고서는 청천백일 하에 제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왜구 한 놈이라도 죽였거니와, 아직 우리 사람으로서 왜왕을 죽여 국모 폐하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거늘, 이제 보니 당신네가 몽백(국상으로 백립을 쓰고 소복을 입었다는 말)을 하였으니, 춘추대의에 군부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은 잊어버리고 한갖 영귀와 총록을 도적질하려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단 말이요?" 감리사 이재정, 경무관 김윤정, 기타 청상에 있는 관원들이 내 말을 듣는 기색을 살피건대 모두 낯이 붉어지고 고개가 수그러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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