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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8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3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내가 나진포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탄 것이 병진년 7월 25일, 달빛도 없이 캄캄한 밤이었다. 물결조차 아니 보이고 다만 소리뿐이었다. 배가 강화도를 지날 때쯤하여 나를 호송하는 순검들이 여름 더위 길에 몸이 곤하여 마음놓고 잠든 것을 보시고 어머니는 뱃사공에게도 안 들릴 만한 입 안의 말씀으로, "애야, 네가 이제 가면 왜놈의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물에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모자가 같이 다니자." 하시며 내 손을 이끄시고 뱃전으로 가까이 나가셨다. 나는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이번 가서 죽을 줄 아십니까, 결코 안 죽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친 정성으로 한 일이니 하늘이 도우실 것입니다. 분명히 안 죽습니다...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2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때가 왔다 하고 서서히 일어나 '이놈!'소리를 치면서 발길로 그 왜놈의 복장을 차니 그는 한 길이나 거진 되는 계하에 나가 떨어졌다. 나는 나는 듯이 쫓아 내려가 그놈의 모가지를 밟았다. 삼간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며 그리로서 사람들의 모가지가 쑥쑥 내밀어졌다. 나는 몰려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누구나 이 왜놈을 위하여 감히 내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발에 채이고 눌렸던 왜놈이 몸을 빼쳐서 칼을 빼어 번쩍거리며 내게로 덤비었다. 나는 내 면상에 떨어지는 그의 칼날을 피하면서 발길을 들어 그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은즉 칼이 저절로 언 땅에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그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1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 혼사에 훼사를 놓은 김가라는 사람은 함경도 정평에 본적을 둔 김치경이다. 10여 년 전에 아버지께서 술집에서 그를 만나 술을 같이 자시다가 김에게 8, 9세 되는 딸이 있단 말을 들으시고 취담으로, "내 아들과 혼사하자." 하여 서로 언약을 하고 그 후에 아버지는 그 언약을 지키셔서 내 사주도 보내시고 또 그 계집애를 가끔 우리 집에 데려다 두기로 하셨는데, 서당 동무들이 '함지박장수 사위'라고 나를 놀리는 것도 싫었고, 또 한 번은 얼음판에 핑구를 돌리고 있는데 그 계집애가 따라와서 제게도 핑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나를 조르는 것이 싫고 미워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떼를 써서 그 애를 제 집으로 돌려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약혼을 깨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여러 해를..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0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우리는 이튿날 강계를 떠나 되넘이고개를 넘어 수일 만에 신천으로 돌아왔다. 청계동으로 가는 길에 나는 호열자(콜레라)로 하여서 고 선생의 맏아들 원명의 부처가 구몰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나는 집에도 가기 전에 먼저 고 선생 댁을 찾았더니, 선생은 도리어 태연자약하셨다. 나는 어색하여 말문이 막혔다. 내가 부모님 계신 집으로 가려고 하직을 할 때에 고 선생은 뜻모를 말씀을 하셨다. "곧 성례를 하게 하자."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잡고 비로소 내가 없는 동안에 고 선생의 손녀, 즉 원명의 딸과 나와 약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번을 갈아서 약혼이 되던 경로를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하루는 고 선생이 집에 찾아오셔서..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9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어디나 토지는 비옥하여서 한 사람이 지으면 열 사람이 먹을 만하였다. 오직 귀한 것은 소금이어서 이것은 의주에서 배로 물을 거슬러 올라와 사람의 등으로 져 나르는 것이라 한다. 동포들의 인심은 참으로 순후하여 본국 사람이 오면, '앞대나그네'가 왔다 하여 혈속과 같이 반가워하고, 집집이 다투어서 맛있는 것을 대접하려고 애를 쓰고, 남녀노소가 모여 와서 본국 이야기를 돌려 달라고 졸랐다. 대부분이 청일전쟁 때 피난간 사람들이지만 간혹 본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온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는 민요에 장두가 되었던 호걸도 있고 공금을 포흠한 관속도 있었다. 집안의 광개토왕비는 아직 몰랐던 때라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거니와, 관전(?)의 임경업 장군의 비각을 본 것이 기뻤다. '삼국충신..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8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가끔 안진사가 고 선생을 찾아 오셔서 두 분이 고금의 일을 강론하심을 옆에서 듣는 것은 참으로 비할 데 없이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가끔 그 선생 댁에서 놀다가 저녁밥을 선생과 같이 먹고 밤이 깊고 인적이 고요할 때까지 국사를 논하는 일이 있었다. 고 선생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라져 한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7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윽고 이동엽의 호령이 들렸다. "김접주에게 손을 대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영장 이종선 이놈 막 잡아 죽여라."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불을 차고 마루 끝에 뛰어나서서, "이종선은 내 명령을 받아서 무슨 일이나 한 사람이니 만일 이종선이가 죽을 죄를 지었거든 나를 죽여라." 하고 외쳤다. 이동엽이 부하에게 명하여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게 하고 이종선만을 끌고 나가더니, 이윽고 동구에서 총소리가 들리자, 이동엽의 부하는 다 물러가고 말았다. 이종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동구로 달려 내려갔다. 과연 그는 총에 맞아 쓰러졌고 그의 옷에서는 아직도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안고 통곡하다가 내 저고리를 벗어 그 머리를 싸주었다. 그 저고리는 내가 남의 웃사람이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6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우리 일행이 해월 선생 앞에 있을 때에 보고가 들어왔다.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가 벌써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또 후보가 들어왔다. 어떤 고을 원이 도유(동학 도를 닦는 선비)의 전가족을 잡아 가두고 가산을 강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를 들으신 선생은 진노하는 낯빛을 띠고 순경상도 사투리로, "호랑이가 몰려 들어오면 가만히 앉아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우지." 하시니 선생의 이 말씀이 곧 동원령이었다. 각지에서 와서 대령하던 대접주들이 물끓듯 살기를 띠고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각각 제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싸우자는 것이었다. 우리 황해도에서 온 일행도 각각 접주라는 첩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두건 속에 '해월인'이라고 전자로 새긴 인이 찍혀 있..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5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번 과거에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아무리 글 공부를 한댔자 그것으로 발천하여 양반이 되기는 그른 세상인 줄을 깨달았다. 모처럼 글을 잘해서 세도 있는 자제들의 대서인이나 되는 것이 상지상일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과거에 실망한 뜻을 아뢰었더니 아버지도 내가 바로 깨달았다고 옳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그러면 풍수 공부나 관상 공부를 하여 보아라. 풍수를 잘 배우면 명당을 얻어서 조상님네 산소를 잘 써서 자손이 복록을 누릴 것이요, 관상에 능하면 사람을 잘 알아 보아서 성인 군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매우 유리하게 여겨서 아버지께 청하여 "마의상서"를 빌어다가 독방에서 석달 동안 꼼짝 아니하고 공부하였다. 그 방법은 면경을 앞에 놓고 내 얼..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4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 선생이 오신다는 날, 나는 머리를 빗고 새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를 따라서 마중을 나갔다. 저리로서 쉰 남짓 되어 보이는 키가 후리후리한 노인 한 분이 오시는데 아버지께서 먼저 인사를 하시고 나서 날더러, "창암아, 선생님께 절하여라."하셨다. 나는 공손하게 너붓이 절을 하고 나서 그 선생을 우러러보니 신인이라 할지 하느님이라 할지 어떻게나 거룩해 보이는지 몰랐다. 우선 우리 사랑을 글방으로 정하고 우리 집에서 선생의 식사를 받들기로 하였다. 그때에 내 나이가 열 두 살이었다. 개학하기 전날 나는 '마상봉한식' 다섯 자를 배웠는데 뜻은 알든 모르든 기쁜 맛에 자꾸 읽었다. 밤에도 어머니께서 밀매가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자꾸 외웠다.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선생님 방에 나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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