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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18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6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어느 날은 하오리에 게다를 신고 정부 문을 들어서다가 중국인 하인에게 쫓겨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동녕 선생과 기타 국무원들에게 한인인지 일인인지 판단키 어려운 인물을 정부 문 내에 출입시킨다는 책망을 받았고, 그때마다 조사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다고 변명하였으나 동지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럭저럭 이씨와 폭탄도 돈도 다 준비가 되었다. 폭탄 한 개는 왕웅을 시켜 상해 병공창에서, 한 개는 김현을 하남성 유치한테 보내어 얻어온 것이니 모두 수류탄이었다. 이 중에 한 개는 일본 천황에게 쓸 것이요, 한 개는 이씨 자살용이었다. 나는 거지 복색을 입고 돈을 몸에 지니고 거지 생활을 계속하니 아무도 내 품에 천여 원의 큰 돈이 든 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5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엄항섭 군은 프랑스 공무국에서 받은 월급으로 석오(이동녕의 당호)나 나 같은 궁한 운동자를 먹여 살렸다. 그의 전실 임씨는 내가 그 집에 갔다가 나올 때면 대문 밖에 따라나와서 은전 한두 푼을 내 손에 쥐어 주며, "애기 사탕이나 사주셔요." 하였다. 아기라 함은 내 둘째 아들 신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는 초산에 딸 하나를 낳고 가엾이 세상을 떠나서 노가만 공동묘지에 묻혔다. 나는 그 무덤을 볼 때마다 만일 엄군에게 그러할 힘이 아니 생기면 나라도 묘비 하나는 해 세우리라 하였으나 숨어서 상해를 떠나는 몸이라, 그것을 못한 것이 유감이다. 오늘날도 노가만 공동묘지 임씨의 무덤이 눈에 암암하다. 그는 그 남편이 존경하는 늙은이라 하여 내게 그렇게 끔찍하게 해주었다. 나는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4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임시정부에서는 한형권의 러시아에 대한 대표권을 파면하고 안공근을 대신 보내었으나 별효과가 없어서 임시정부와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는 이내 끊어지고 말았다. 상해에 남아 있는 공산당원들은 국민대표회가 실패한 뒤에도 좌우 통일이라는 미명으로 민족운동자들을 달래어 지금까지 하여 오던 민족적 독립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자고 떠들었다. 재중국 청년동맹, 주중국 청년동맹이라는 두 파 공산당의 별동대로 상해에 있는 우리 청년들은 쟁탈하면서 같은 소리를 하였다. 민족주의자가 통일하여서 공산혁명운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한 희극이 생겼다. '식민지에서는 사회운동보다 민족독립운동을 먼저 하여라.'하는 레닌의 새로운 지령이었다. 이에 어제까지 민족독립운동을 비난하고 조소..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2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내가 5년간 경무국장을 하는 동안에 생긴 기이한 일을 일일이 적을 수도 없고 또 이루 다 기억도 못하거니와 그 중에 몇 가지만을 말하련다. 고동 정탐 선우갑을 잡았을 때에 그는 죽을 죄를 깨닫고 사형을 자원하기로, 장공속죄를 할 서약을 받고 살려 주었더니 나흘 만에 도망하여 본국으로 들어갔다. 강인우는 왜 경부로 상해에 와서 총독부에서 받아 가지고 온 사명을 말하고 내게 거짓 보고 자료를 달라 하기로 그리하였더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공으로 풍산 군수가 되었다. 구한군 내무대신 동농 김가진 선생이 3.1 선언 후에 왜에게 받았던 남작을 버리고 대동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아들 의한 군을 데리고 상해에 왔을 적 일이다. 왜는 남작이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는 것이 수치라 하여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

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머리말 내 나이 이제 육십 칠, 중경 화평로 오사야항 1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다시 이 붓을 드니, 오십 삼세 때 상해 법조계 마랑로 보경리 4호 임시정부 청사에서 "백범일지" 상권을 쓰던 때에서 14년의 세월이 지난 후이다. 나는 왜 "백범일지"를 썼던고? 내가 젊어서 붓대를 던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제 힘도 재주도 헤아리지 아니하고 성패도 영욕도 돌아봄이 없이 분투하기 30 여 년, 그리고 명의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지키기 10 여 년에 이루어 놓은 일은 하나도 없이 내 나이는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나는 침체된 국면을 타개하고 국민의 쓰러지려 하는 3.1 운동의 정신을 다시 떨치기 위하여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에게 편지로 독립운동의 위기를 말하여..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9 (상권 끝)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임시정부의 조직에 관하여서는 후일 국사에 자세히 오를 것이니 약하거니와 나는 위원의 한 사람으로 뽑혔었다. 얼마 후에 안창호 동지가 미주로부터 와서 내무총장으로 국무총리를 대리하게 되고, 총장들이 아직 모이지 아니하였으므로 차장제를 채용하였다. 나는 안 내무총장에게 임시정부 문 파수를 보게 하여 달라고 청원하였다. 도산은 처음에는 내 뜻을 의아하게 여기는 모양이었으나 내가 이 청원을 한 동기를 말하자 쾌락하였다. 내가 본국에 있을 때에 순사 시험 과목을 어디서 보고 내 자격을 시험하기 위하여 혼자 답안을 보았으나 합격이 못된 일이 있었다. 나는 실력이 없는 허명을 탐하기를 두려워할 뿐더러, 감옥에서 소제를 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원하기를 생전에 한 번 우리 정부의 정청의 뜰을 쓸..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8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또 어머니와 아내가 서울서 내려와서 종산 우종서 목사에게 의탁하여 있을 때에는 준영 삼촌이 소바리에 양식을 실어다 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렇게 준영 삼촌의 일을 고맙게 말씀하시고 나서, "네 삼촌님이 네게 대한 정분이 전과 달라 매우 애절하시다. 네가 나온 줄만 알면 보러 오실 것이다. 편지나 하여라." 하셨다. 어머니는 또 내 장모도 전 같지 않아서 나를 소중하게 아니, 거기도 출옥하였다는 기별을 하라고 하셨다. 내가 서대문 감옥에 있을 때에 장모가 여러 번 면회를 와 주셨다. 나는 곧이라도 준영 숙부를 찾아가 뵈옵고 싶었으나 아직 가출옥중이라 어디를 가려면 일일이 헌병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왜놈에게 고개 숙이고 청하기가 싫어서 만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정..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7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서대문에 있을 적에 어떤 강도가 중형을 지고 징역을 하는 중에 그의 공범으로서 잡히지 않고 있다가 횡령죄의 경형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밀고하여 중형을 지우고 저는 감형을 받아서 다른 죄수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을 보았다. 이것을 생각하니 문가를 덧들여 놓았다가는 큰일이다. 이자가 내가 17년 전의 김창수라는 것을 밀고하거나 떠벌리는 날이면 모처럼 일년 남짓하면 세상에 나가리라던 희망은 허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문가에게 친절 또 친절하게 대접하였다. 사식도 틈을 타서 문가를 주어 먹게 하고 감식(감옥에서 주는 밥)이라도 문가가 곁에 있기만 하면 나는 굶으면서도 그를 먹였다. 이러다가 문가가 만기가 되어 출옥할 때에 나의 시원함이란 내가 출옥하는 것 못지 아니하였다. 나..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6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인물을 고를 때에는 먼저 눈 정기를 본다는 것이며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동지의 처첩을 범하는 것과 장물을 감추는 것이요, 상 중에 가장 큰 상은 불행히 관에 잡혀가더라도 동지를 불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하여서는 그 가족이 편안히 살도록 하여 준다는 말도 들었다. 김진사의 말을 듣고 나는 나라의 독립을 찾는다는 우리 무리의 단결이 저 도적만도 못한 것을 무한히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여기서 나는 동지 도인권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본시 용강 사람으로 노백린, 김희선, 이갑 등이 장령으로 있을 때에 군인이 되어서 정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군대가 해산되매 향리에 돌아와 있는 것을 양산학교 체육 선생으로 연빙하여 와서 우리와 동지가 되어 이번 사건에도 10년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5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그랬더니 그날 저녁에 우리들이 벌거벗고 공장에서 감방으로 들어올 때에 그 역시 벌거벗고 우리 뒤를 따라서, "오늘부터 이 방에서 괴로움을 끼치게 됩니다." 하고 내가 있는 감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퍽이나 반가워서, "이 방으로 전방이 되셨소?" 하고 물은즉 그는, "네. 아, 노형 계신 방이구려." 하고 그도 기쁜 빛을 보인다. 옷을 입고 점검도 끝난 뒤에 나는 죄수 두 사람에게 부탁하여 철창에 귀를 대어 간수가 오는 소리를 지켜 달라 하고 김진사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아까 공장에서는 서로 할 말을 다 못하여서 유감일러니 이제 한 방에 있게 되니 다행이란 말을 하였더니 그도 동감이라고 말하고는 계속하여서 그는 마치 목사가 신입 교인에게 세례문답을 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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