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란?
술을 마실 때의 예의를 가르쳐 '주도' 혹은 주례(酒禮)라고 한다.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는 예법에 대해 [소학(小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酒器)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한다. 감히 제자리에 앉은 채로 어른에게서 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
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이는 감히마시지 못한다. 어른이 마시고 난 뒤에 마시는 것이
아랫사람의 예의이다. 우리 나라의 사람들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는 특히 행동
을 삼가는데,먼저 어른에게 술잔을 올리고 어른이 술잔을 주시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
는다. 또, 어른이 마신 뒤에야 비로소 잔을 비우며,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므로 돌아앉거나,상체를 뒤로 돌려 마시기도 한다. 술잔을 어른께 드리고 술을 따
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 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 소매가 넓지 않은 양복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으로 오
른팔 아래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술은 임금에서부터 천만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없이 즐겨 마셨기 때문에 주례(
酒禮)는 술과 함께 매우 일찍부터 있었다.[고려도경(高麗圖經)]의 향음(鄕飮)조에 따
르면, 고려에서는 이 주례 (酒禮)를 매우 중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잔치 때 신분이 높
은 사람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의자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그러나신분이 낮으면
좌상(左相)에 음식을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마신다. 잔치에 객이 많으면 좌상
을 늘린다.기혈(器血)은 구리(놋쇠)로 만든 것을 쓰고 어포(魚脯), 육포(肉脯), 생선,
나물 등을 잡연(雜然)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주행(酒行)에 절도가 없어서 많이
권하는 것을 예(禮)로 안다. 또, 사소절에는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못 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다. 또한 술은 빨리 마셔서도 안 되고, 혀
로 입술을 빨라서도 안 된다 고 하였다.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 마실 때 수염까지 빨
지 말라 하였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술 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 고 하였다. 남에
게 술을 따를 때는 술잔에 가득 부어야 하며, '술은 술잔에 차야 맛'이라고 하는 말이
지금도 쓰인다. 그래서 '술은 차야 맛'이라 할 때는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
다는 뜻도 되고, 술은 술잔에 가득 차야 된다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술은 차야 맛
이고 임은 품안에 들어야 맛'이라는 속담도 이런 데서 생긴 것이다.
동양의 주도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네 주도에서는 상대편에게 먼저 술잔을 권하는 것이 상례
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보이는 우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곰 다르다. 술잔을 권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지만, 실로 코딱지만한
잔으로 병아리 눈물 정도의 술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가란 감질이 날 지경. 그리하여
간에 기별이 가기까지는 밤 새워 마셔도 오히려 부족할 판국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술잔을 권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주도에 따르면 상대편에게 잔을 권
하는 것은 예를 잃는 것이 된다. 각자 자기 잔에 술이 가득 부어지면 잔을 들어올려 '
건배'를 하고, 또 술을 마신 뒤에도 자기 잔은 자기 앞에 놓아야 하는데, '건배!'의
말이 오가면 잔에 담긴 술은 남김없이 쭉 들이켜야 한다.
때로 조금만 마시고 싶을 경우에는 '스위'(조금만이라는 뜻이라든가?)라는 말로 양해
를 구하고 서로가 약간씩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도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술을 들 때, 아니 들고 싶
을 때 자기 혼자 들이켜는 것이 아니라 꼭 상대편과 함께 들자고 권하는 인사말이다.
인사말이라야 방금 말한 바 '간뻬이'나 스위' 둘 중의 어느 하나이겠지만, 그 인사말
에는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대륙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주도
일본식의 안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빛깔의 안주요, 술상에 공식처럼 올르는 것은 생선
회이다. 그 생선회도 가지가지. 넓은 접시에 울긋불긋 야채류를 올려놓은 그 솜씨는
마치 '먹는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식 안주는 안주 그 자체를 먹
는 것이 아니라 빛깔을 먹는다는 편이 실감이 가는 표현일는지 모른다.
일본 민족은 원래 색을 즐기는 민족인 성싶다. 술상에 같이 앉는 여색(女色) 또한 빛
깔로 단장한 의상이다. 그 '기모노'부터가 그렇다. 색으로 단장한 '기모노'를 앉혀 놓
고, 갖가지 색의 안주를 든다는 것은 마치 색을 감상하면서 빛깔을 먹는 일과 다름이
없다.
색이라는 것은 본래 솔직담백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색은 오래가면 퇴색하기 마련이다
.
쌈빡한 맛은 있지만 오래 두고 음미할 것은 못 된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일본인들
이 색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들의 민족성과도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한 점이 있
지 않은가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일본인들의 빛깔의 의미,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직담백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왜어(倭語)로 '앗사리'하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그 '앗
사리'하다는 것은 빛깔로 말하자면 원색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복고정신을 부르짖다가 제 뜻대로 안 된다고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
끼오 같은 기질이 바로 그러한 기질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한편 그 솔직담백한 기질은 일단 이해관계가 계속되면 점차 퇴색되어 가는 면
이 없지 않다.
그러한 현상은 지나간 한일관계사만 보더라도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좋던
우정도 한번 금이 가면 그 무사도 정신이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그런 정신으로 한칼에
우정을 끊는 예를 우리는 일본의 역사소설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빛깔이
퇴색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지 모르겠다.
더욱이 일본식 술은 여인들의 애교 바람에 넘어가는 술이다. 빛깔로 점철된 안주는 먹
는 것이 아닌 보는 안주요, 술은 영딘들의 애교맛에 저절로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이고
보면, 그네들에 있어서는 안주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그리하여 실제
로 애교, 그것은 곧 안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주도
일본 술이 빛깔과 애교의 술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술은 요리와 정(情)의 술이다. 술상
에 나오는 요리만도 열 가지가 넘는다. 그것도 우리처럼 한 상에 모두 차려놓고 이것
저것 제 맘대로 먹는 안주가 아니라 한 가지씩 차례차례로 들여오는 안주요, 원탁을
돌려가며 나누어 먹는 정다운 안주인 것이다. 요리하면 중국을 연상케 한다더니, 이
말에 그리 큰 거짓은 없을 성싶다. 어느 안주를 입에 넣어도 별미요, 다음에 나올 요
리의 별미를 기다리는 바람에 더욱 마시게 되는 술이다. 때문에 안주는 맛만 보고 넘
겨야 한다. 한 가지 안주를 한꺼번에 먹고 나면 다음 안주의 맛은 놓치기 마련이다.우
선 배가 불러서 다음 안주는 거들떠보기조차 싫어지게 된다.
중국 여인들의 정은 뜨겁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네들은 눈으로 말을 한다.
중국인들의 주량은 또한 대단하지만, 거긋이 일면 대도와 자연을 터득키 위한 그들의
대륙적 기질과 통하는 일면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일 삼수감산(三水甲山)을 갈망정 오
늘의 이 술좌석만은 충분히 즐기려 하고 주빈(主賓)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흠뻑 맛보여
주려는 성의가 엿보이는 술이기도 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서양은 자기 것을 스스로가 따라 마시는 술,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철두
철미 에고이즘이 낳은 주도이기도 하다. 주도 또한 풍류라는데, 그 메마른 자작(自酌)
의 술에 무슨 풍류가 있으며 인간의 정이 오갈 것인가. 서양식 자작의 주도는 결국 개
인주의를 낳았고, 그 개인주의는 곧 오늘의 비인간화라는 비극을 낳고 말지 않았는가.
정으로 통하는 인간화에는 동양의 주도가 그 한몫을 할 것같이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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