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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길이 막혀, 달을 보며, 후 회

올드코난 2010. 7. 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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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길이 막혀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 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 못 오시는 당신을 기루어요.



 

달을 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욤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굴로 됩니다.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후 회

 

당신이 계실 때에 알뜰한 사랑을 못하였습니다.

사랑보다 믿음이 많고, 즐거움보다 조심이 더하였습니다.

게다가 나의 성격이 냉담하고 더구나 가난에 쫓겨서,

병들어 누운 당신에게 도리어 소활(疏闊)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신 뒤에, 떠난 근심보다

뉘우치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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