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잠 없는 꿈, 착인

올드코난 2010. 7. 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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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잠 없는 꿈

 

나는 어느 날 밤에 잠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디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겠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세요, 님이여』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히려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레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너의 님이 오히려 길을 너에게로 갖다 주면

너의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된다

네가 간대도 너의 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길을 가져다가 나의 님에게 주셔요』

『너의 님에게 주는 것이 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저의 길이 각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이별한 님을 만나보겠습니까』

『네가 너를 가져다가 너의 가려는 길에 주어라.

그리하고 쉬지 말고 가거라』

『그리할 마음은 있지마는 그 길에는 고개도 많고  물도 많습니다.

갈 수가 없습니다.

꿈은 『그러면 너의 님을 너의 가슴에 안겨주마』

하고 나의 님을 나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님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나의 팔이 나의 가슴을 아프도록 다릴 때에

나의 두 팔에 비어진 허공은 나의 팔을 뒤로 두고 이어졌습니다.


착인

 

내려오셔요. 나의 마음이 자릿자릿하여요. 곧 내려오셔요.

사랑하는 님이여,

어찌 그렇게 높고 가는 나뭇가지 위에서 춤을 추셔요.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붙들고

고이고이 내려오셔요.

에그, 저 나뭇잎새가 연꽃 봉오리 같은 입술을 스치겠네.

어서 내려오셔요.

 

'네 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잠자거나 죽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나는 아시는 바와 같이 여러 사람의 님인 때문이여요.

향기로운 부르심을 거스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버들가지에 걸린 반달은 해죽해죽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나는 작은 풀잎만치도 가림이 없는

발가벗은 부끄러움을 두 손으로 움켜 쥐고

빠른 걸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누웠습니다.

창 밖에 숨어서 나의 눈을 엿봅니다.

부끄럽던 마음이 갑자기 무서워서 떨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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