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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포도주, 진 주, 자유정조(自由貞操)

올드코난 2010. 7. 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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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포도주

 

가을 바람과 아침 볕에 마치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였습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잔에 가득히 무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으로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임이여, 그 술은 한 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 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 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임이여!

 


진 주

 

언제인지 내가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주웠지요.

당신은 나의 치마를 걷어 주셨어요, 진흙 묻는다고.

집에 와서는 나를 어린아이 같다고 하셨지요,

조개를 주워다가 장난한다고.

그리고 나가시더니 금강석을 사다 주셨습니다, 당신이.

 

나는 그 때에 조개 속에서 진주를 얻어서

당신의 작은 주머니에 넣어 드렸습니다.

당신이 어디 그 진주를 가지고 계셔요.

잠시라도 왜 남을 빌려 주셔요.

 

유정조(自由貞操)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정조보다도 사랑입니다.

 

남들은 나더러 시대에 뒤진 낡은 여성이라고 삐죽거립니다.

구구(區區)한 정조를 지킨다고.

그러나 나는 시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과 정조의 심각한 비판을 하여 보기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자유연애의 신성( ? )을 덮어놓고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자연을 따라서 초연생활(超然生活)

할 생각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구경(究境), 만사가 

저의 좋아하는 대로 말한 것이요, 행한 것입니다.

나는 님을 기다리면서 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

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

나의 정조는 『자유정조(自由貞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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