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6

올드코난 2010. 7. 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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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인물을 고를 때에는 먼저 눈 정기를 본다는 것이며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동지의

처첩을 범하는 것과 장물을 감추는 것이요, 상 중에 가장 큰 상은 불행히 관에

잡혀가더라도 동지를 불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하여서는 그 가족이

편안히 살도록 하여 준다는 말도 들었다.

  김진사의 말을 듣고 나는 나라의 독립을 찾는다는 우리 무리의 단결이 저 도적만도

못한 것을 무한히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여기서 나는 동지 도인권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본시 용강 사람으로

노백린, 김희선, 이갑 등이 장령으로 있을 때에 군인이 되어서 정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군대가 해산되매 향리에 돌아와 있는 것을 양산학교 체육 선생으로 연빙하여

와서 우리와 동지가 되어 이번 사건에도 10년 징역을 받고 나와 같이 고생을 하게 된

사람이다. 이때에 옥중에서는 죄수를 모아서 불상 앞에 예불을 시키는 예가 있었는데,

도인권은 자기는 예수교인이니 우상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없다 하여 아무리

위협하여도 고개를 빳빳이 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마침내 강제로 시키지

아니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또 옥에서 상표를 주는 것을 그는 거절하였다. 자기는 죄를 지은 일도 없고 따라서

회개한 일도 없으니 개준을 이유로 하는 상표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그 후에 가출옥을 시킬 적에도 도인권은, 내가 본래 무죄한 것을 지금 와서

깨달았으니 판결을 취소하고 나가라 하면 나가겠지마는 가출옥이라는 ''자가

불쾌하니 아니 받는다고 버티어서 옥에서도 할 수 없이 형기를 태우고 도로 내보냈다.

도인권의 이러한 행동은 강도로서는 능히 못할 일이라, '만산고목일지청'의 기개가

있었다.

 

  '(외외낙낙적나나 독보건곤수반아)

  홀로 높고 정갈하여 구애됨이 없으니 천하를 홀로 걸으매 누가 나를 짝하랴.'

 

  라고 한 불가의 귀절을 나는 도군을 위하여 한 번 읊었다.

  하루는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을 중지하고 명치가 죽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대사를 내린다는 말을 하였다. 이 때문에 최고 2년인 보안법 위반에 걸린

동지들은 즉일로 나가고 나는 8년을 감하여 7년이 되고 김홍량 기타 15년은 7년을

감하여 8년이 되고 10년이라도  다 그 비례로 감형이 되었다. 그런 뒤 수삭이 지나서

또 명치의 처가 죽었다 하여 다시 잔기의 3분지 1을 감하니 내 형은 5년 남짓한

경형이 되고 말았다.

  이때 종신이던 것이 20년으로 감하여진 안명근은 형을 가하여 죽임을 받을지언정

감형은 아니 받는다고 항거하였으나 죄수에게 대하여서는 일체를 강제로 집행하는

것인즉 감형을 아니 받을 자유도 죄수에게는 있지 아니하다 하여 필경 20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안명근은 새로 지은 마포 감옥으로 이감이 되어서 다시는 그의

면목을 대할 기회도 없게 되었다. 안명근은 전후 17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연전에

방면되어 신천 청계동에서 그 부인과 같이 여생을 보내고 있더니 아령에 있는 그

부친과 친 아우를 그려서 권하고 그리로 가던 길에 만주 화룡현에서 만고의 한을 품고

못 돌아올 길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연거푸 감형을 당하고 보니 이미 꺾어 버린 3년 남짓을 떼면 나머지 형기가

2년밖에 아니된다. 이때부터는 확실히 세상에 나가서 활동할 희망이 생겼다. 나는

세상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할까, 지사들이 옥에 다녀 나가서는 왜놈에게 순종하여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나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왜놈이

지어준 뭉우리돌대로 가리라 하고 굳게 결심하고 그 표로 내 이름 김구를 고쳐 김구라

하고 당호 연하를 버리고 백범이라고 하여 옥중 동지들께 알렸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 함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 하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정도를 그만큼이라도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를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 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하고.

  나는 앞으로 2년을 다 못 남기고 인천 감옥으로 이감이 되었다. 나는 그 원인을

안다. 내가 서대문 감옥 제 2과장 왜놈하고 싸운 일이 있는데 그 보복으로 그놈이

나를 힘드는 인천 축항공사로 돌린 것이었다.

  여러 동지가 서로 만나고 위로하며 쾌활하게 3년이나 살던 서대문 감옥과 작별하고

40명 붉은 옷 입은 전중이 떼에 편입이 되어서 쇠사슬로 허리를 얽혀서 인천으로

끌려갔다. 무술년 3월 초열흘날 밤중에 옥을 깨뜨리고 도망한 내가 17년 만에

쇠사슬에 묶인 몸으로 다시 이 옥문으로 들어올 줄을 누가 알았으랴.

  문을 들어서서 둘러보니 새로이 감방이 증축되었으나 내가 글을 읽던 그 감방이

그대로 있고 산보하던 뜰도 변함이 없다. 내가 호랑이같이 소리를 질러 도변이 놈을

꾸짖던 경무청은 매음녀 검사소가 되고 감리사가 좌기하던 내원당은 감옥의 집물을

두는 곳간이 되고, 옛날 주사, 순검이 들끓던 곳은 왜놈의 천지를 이루었다. 마치

죽었던 사람이 몇 십 년 후에 살아나서 제 고향에 돌아와서 보는 것 같다. 감옥 뒷담

너머 용동 마루터에서 옥에 갇힌 불효한 이 자식을 보겠다고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시던 선친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의 김구가 그날의 김창수라고

하는 자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감방에 들어가니 서대문에서 먼저 전감된 낯익은 사람도 있어서 반가웠다.

  어떤 자가 내 곁으로 쓱 다가앉아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분 낯이 매우 익은데, 당신 김창수 아니오."

한다.

  참말 청천벽력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본즉 17년 전에 나와 한 감방에 있던

절도 10년의 문종칠이었다. 늙었을망정 젊을 때 면목이 그대로 있다. 오직 그때와 다른

것은 이마에 움쑥 들어간 구멍이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의아한 듯이 짐짓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제 낯바닥을 내 앞으로 쑥 내밀어 나를 쳐다보면서,

  "창수 김서방. 나를 모를 리가 있소. 지금 내 면상에 이 구멍이 없다고 보면 아실 것

아니오? 나는 당신이 달아난 후에 죽도록 매를 맞은 문종칠이요, 그만하면 알겠구려."

하는데는 나는 모른다고 버틸 수가 없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 자가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문가는 나에게,

  "당시에 인천 항구를 진동하던 충신이 무슨 죄를 짓고 또 들어오셨소?"

하고 묻는다. 나는 귀찮게 생각하여서,

  "15년 강도요."

하고 간단히 대답하였다.

  문가는 입을 삐죽거리며,

  "충신과 강도는 상거가 심원한데요. 그때의 창수는 우리 같은 도적놈들과

동거케한다고 경무관한테까지 들이대지 않았소? 강도 15년은 맛이 꽤 무던하겠구려."

하고 빈정거린다.

  나는 속에 불끈 치미는 것이 있었으나 문의 말을 탓하기는 고사하고 빌붙는 어조로,

  "충신 노릇도 사람이 하고 강도도 사람이 하는 것 아니오? 한때에는 그렇게 놀고

한때에는 이렇게 노는 게지요. 대관절 문 서방은 어찌하여 또 이렇게 고생을 하시오?"

하고 농쳐 버렸다.

  "나요? 나는 이번까지 감옥 출입이 일곱 번째니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셈이요."

  "역한(징역 기한)은 얼마요?"

  "강도 7년에 5년이 되어서 한 반 년 지내면 또 한 번 세상에 다녀오겠소."

  "또 한 번 다녀오다니, 여보시오 끔찍한 말도 하시오. 또 여기를 들어와서야

되겠소?"

  "자본 없는 장사가 거지와 도적질이지요. 더우기 도적질에 맛을 붙이면 별 수가

없습니다. 당신도 여기서는 별꿈을 다 꾸리다마는 사회에 나가만 보시오. 도적질하다가

징역한 놈이라고 누가 받자를 하오? 자연 농공상에 접촉을 못하지요. 개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도적질하던 놈은 배운 길이 그것이라 또 도적질을 하지 않소?"

  문가는 이렇게 술회를 한다.

  "그렇게 여러 번째라면 어떻게 감형이 되었소?"

하고 내가 물었더니 문은,

  "번번이 초범이지요. 지난 일을 다 말했다가는 영영 바깥 바람을 못 쏘여 보게요?"

하고 흥 하고 턱을 춘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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