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2

올드코난 2010. 7. 1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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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내가 5년간 경무국장을 하는 동안에 생긴 기이한 일을 일일이 적을 수도 없고 또

이루 다 기억도 못하거니와 그 중에 몇 가지만을 말하련다.

  고동 정탐 선우갑을 잡았을 때에 그는 죽을 죄를 깨닫고 사형을 자원하기로,

장공속죄를 할 서약을 받고 살려 주었더니 나흘 만에 도망하여 본국으로 들어갔다.

  강인우는 왜 경부로 상해에 와서 총독부에서 받아 가지고 온 사명을 말하고 내게

거짓 보고 자료를 달라 하기로 그리하였더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공으로 풍산 군수가

되었다.

  구한군 내무대신 동농 김가진 선생이 3.1 선언 후에 왜에게 받았던 남작을

버리고 대동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아들 의한 군을 데리고 상해에 왔을 적 일이다.

왜는 남작이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는 것이 수치라 하여 의한의 처의 종형 정필화를

보내어 동농 선생을 귀국케 할 운동을 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정가를 검거하여

심문한즉 낱낱이 자백하므로 처교하였다.

  황학선은 해주 사람으로 3.1 운동 이전에 상해에 온 자인데 가장 우리 운동에

열심이 있는 듯하기로 타처에 오는 지사들을 그 집에 유숙케 하였더니 그 자가 이것을

기화로 하여 일변 왜 영사관과 통하여 거기서 돈을 얻어 쓰고 일변 애국 청년에게

임시정부를 악선전하여 나창헌, 김의한 등 십수 명이 작당하여 임시정부를 습격하는

일이 있었으나 이것은 곧 진압되고 범인은 전부 경무국의 손에 체포되었다가 그들이

황학선의 모략에 속은 것이 분명하므로 모두 설유하여 방송하고 그때에 중상한

나창헌, 김기제는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황학선이가 왜

영사관에서 자금과 지령을 받아 우리 정부 각 총장과 경무국장을 살해할 계획으로

나창헌이 경성의전의 학생이던 것을 이용하여 삼 층 양옥을 세 내어 병원 간판을

붙이고, 총장들과 나를 그리로 유인하여 살해할 계획이던 것이 판명되었다.

  나는 이 문초의 기록을 나 창헌에게 보였더니 그는 펄펄 뛰며 속은 것을 자백하고

장인 황학선을 사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황학선은 처교된

뒤였다. 나는 나. 김 등이 전연 악의가 없고 황의 모략에 속은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 번은 박 모라는 청년이 경무국장 면회를 청하기로 만났다. 그는 나를 대하자 곧

낙루하며 단총 한 자루와 수첩 하나를 내 앞에 내어 놓으며, 자기는 수일 전에

본국으로부터 상해에 왔는데 왜 영사관에서 그의 체격이 건장함을 보고 김 구를

죽이라 하고 성공하면 돈도 많이 주려니와 설사 실패하여 그가 죽는 경우에는 그의

가족에게는 나라에서 좋은 토지를 주어 편안히 살도록 할 터이라 하고, 만일 이에

응치 아니하면 그를 '불령선인'으로 엄벌한다 하기로 부득이 그러마 하고 무기를 품고

법조계에 들어와 길에서 나를 보기도 하였으나 독립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을, 자기도

대한 사람이면서 어찌 감히 상하랴 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 단총과 수첩을 내게 바치고

자기는 먼 지방으로 달아나서 장사나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놓아 보냈다.

  나는 '의심하는 사람이거든 쓰지를 말고, 쓰는 사람이거든 의심을 말라.'는 것을

신조로 하여 살아왔거니와 그 때문에 실패한 일도 없지 아니하였으니 한태규 사건이

그 예다.

  한태규는 평양 사람으로서 매우 근실하여 내가 7, 8년을 부리는 동안에 내외국인의

신임을 얻었었다. 내가 경무국장을 사면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경무국 일을 보고

있었다.

  하루는 계원 노백린 형이 아침 일찍 내 집에 와서 뒤 노변에 한복 입은 젊은 여자의

시체가 있다 하기로 나가 본즉 그것은 명주의 시체였다.

  명주는 상해에 온 후로 정인과, 황석남이 빌어 가지고 있는 집에 식모로도 있었고

젊은 사내들과 추행도 있다는 소문이 있던 여자다. 어느 날 밤에 한 번 한태규가 이

여자를 동반하여 가는 것을 보고 한 군도 젊은 사람이니 그러나 보다 하고 지나친

것이 얼마 오래지 아니한 것이 기억되었다.

  시체를 검사하니 피살이 분명하다. 머리에 피가 묻었으니 처음에는 때린 모양이요,

목에는 바로 매었던 자국이 있는데 그 수법이 내가 서대문 감옥에서 활빈당 김

진사에게 배운 것을 경호원들에게 가르쳐 준 그것이었다. 여기서 단서를 얻어 가지고

조사한 결과 그 범인이 한태규인 것이 판명되어 그 프랑스 경찰에 말하여 그를 체포케

하여 내가 배심관으로 그의 문초를 듣건대, 그는 내가 경무국장을 사임한 후로부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왜에게 매수되어 그 밀정이 되어, 명주와 비밀히 통기하던 중,

명주가 한이 밀정인 눈치를 알게 되매 한은 명주가 자기의 일을 내게 밀고할 것을

겁내어서 죽인 것이라는 것을 자백하였다. 명주는 행실이 부정할망정 애국심은 열렬한

여자였다. 그는 종신징역의 형을 받았다. 후에 나와 동관이던 나우도 한태규가 돈을

흔히 쓰는 것으로 보아 오래 의심은 하였으나 확적한 증거도 없이 내게 그런 말을

고하면 내가 동지를 의심한다고 책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말을 아니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후에 한태규는 다른 죄수들을 선동하여 양력 1 1일에 옥을 깨뜨리고 도망하기로

약속을 하여 놓고 제가 도리어 감옥 당국에 밀고하여 간수들이 담총하고 경비하게 한

후에 약속한 시간이 되매 여러 감방문이 일제히 열리며 칼. 몽둥이. 돌멩이. 재 같은

것을 가지고 죄수들이 뛰어 나오는 것을, 한태규가 총을 쏘아 죄수 여덟 명을 즉사케

하니, 다른 죄수들은 겁은 내어 움직이지 못하매 이 파옥 소동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재판하는 마당에 한태규는 제가 쏘아 죽인 여덟 명의 시체를 담은 관머리에

증인으로 출정하더란 말을 들었고, 또 그 후에 한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는 같은 죄수

여덟 명을 죽인 것이 큰 공로라 하여 방면이 되었고, 전에 잘못한 것은 다 회개하니

다시 써 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듣건대 이 편지에 대한 회답이 없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본국으로 도망하여 무슨 조그마한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내가 이런

흉악한 놈을 절대로 신임한 것이 다시 세상에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서

심히 고민하였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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