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중국 최초의 세습왕조, 아직은 전설상의 왕조 중국 하(夏) 나라

올드코난 2014. 12. 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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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 , 기원전 2070년경 ~ 기원전 1600년경)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나라 이전 수백 년간 존재했다고 기록된 나라이다. 그 연대는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 기원전 2070년경에서 기원전 1600년까지로 추정한다. 하 당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자료는 없으며, 일부 중국 사학계에서는 얼리터우 문화를 하왕조의 것으로 비정하고 하나라의 실존을 주장하나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국 전설상의 왕조 하(夏)나라

1. 하나라 요약

현재까지는 중국 전설상의 왕조로 본다. 오제(五帝)의 한 사람인 요임금의 말년, 홍수가 일어나 우임금(禹)이 치수 사업에 성공했고 그 공으로 순임금(舜)이 죽은 후, 제후(諸侯)들이 받들어 왕위에 오르고 하 왕조를 열어 이후 17대에 이어졌다. 우는 제위를 민간의 현자에게 양도하려 했으나, 제후들이 우의 아들 계(啓)를 추대하여 이때부터 선양제(禪讓制)가 없어지고 상속제에 의한 왕조가 출현했다. 17대의 걸왕 때에는 정치가 포악해지고 민심을 잃어 은나라의 탕왕(湯王)에 의해 멸망하였다. 하(夏)의 소재지를 산시(山西)·산둥·허난 등으로 추측하는 학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2. 하 나라 시조 우의 창업

하왕조의 시조가 되는 우는 오제의 손자 중 한 명이다. 요의 시대에 우는 치수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순에게 추천 받는 형태로 황하의 치수 사업을 맡았고 공적을 이루어 크게 인정받았다.

순은 덕망이 높았던 우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순이 사망한 후 3년 상을 치른 우는 순의 아들인 상균을 제위에 앉히려고 했지만 제후들이 상균을 순의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가 제위에 즉위하였다. 양성을 도성으로 정했다. 우의 성은 사(姒)였지만 왕조 창시 후에 하후(夏后)로 바꾸었다.

우는 즉위 후 잠시동안 무기 생산을 그만두고 궁전의 대증축을 한동안 재고하였으며 관문과 시장에 걸려있는 여러 세금을 면제했다. 또한 지방에 도시를 만들었고 번잡한 제도를 폐지해 행정을 간략화했다. 이 결과 중국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조공을 청하러 오게 되었다. 또한 우는 여러 하천을 정비했고 주변의 토지를 경작해 초목을 육성하였으며 중앙과 동서남북의 차이를 기(旗)로써 사람들에게 나타냈고 옛 방식도 답습해 전국을 나누고 9주를 두었다. 우는 검약 정책을 취했고 스스로 솔선수범하였다. 죽서기년에 의하면 45년 동안 재위에 있었다고 한다. 즉위 후 고도(皋陶)가 정치를 보좌하도록 했지만 고도의 사망으로 익(伯益)이 조정을 보좌하였다.


3.최초의 세습왕조

우가 사망한 후 익이 후계자가 되었지만 익이 집정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후들은 우의 아들인 계를 제위에 앉혔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위의 세습으로 여겨진다. 제위에 오른 계는 유호씨가 복종하지 않자 이를 토벌하였다.

계가 사망한 후 아들 태강이 제위를 계승했지만 사기에 의하면 '나라를 잃었다'라고 기록되는 등 국세의 쇠퇴를 볼 수 있다. 태강이 사망한 후 남동생 중강이 뒤를 이었다. 중강 때에 제후인 희씨와 화씨가 음락에 빠져 있었으므로 윤(胤)에게 명해 희씨와 화씨를 토벌하였다. 사기에 중강 이후의 왕들의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전하고 있지 않다.


4.쇠퇴와 멸망

하의 14대 왕인 공갑은 성격이 음란하고 귀신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해 인심은 하왕조부터 멀어져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걸은 인덕이 부족해 무력으로 제후와 민중을 억압해 인심의 배반을 불렀다. 또 상나라의 탕을 불러내 투옥시켰다. 탕은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서, 제후들이 그의 밑에 모였으며 마침내 걸을 쫓아냈다. 걸은 명조로 도망쳤지만 객사했다. 이 걸에 관한 전설은 상나라의 주와 지나치게 비슷해서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상나라의 탕왕은 제위에 즉위하면서 하나라의 혈통을 받은 사람들을 하정(夏亭)에 봉했다. 주나라 때에는 기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고 전해진다.


5.하나라 역대 군주

1대 왕 우(禹) : 곤(鯀)의 아들이며 하나라의 개국 군주로, 요순임금의 하나인 순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부자상속제를 확립하였다. 45년 재위했다고 전해진다.

2대 왕 계(啓) : 우 임금의 아들로 10년간 재위

3대 왕 태강(太康) : 계의 아들로 고분죽서기본에 의하면, 짐심으로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우왕의 손자이지만, 우왕과는 달리 사치에만 힘을 써 백성의 신망을 잃었다. 태강이 부하들과 사냥을 나간 사이, 하나라의 제후였던 유궁(有窮)의 후예라는 자가 반역하여 도성을 점령하였다. 태강은 몸을 피하여 주변의 제후들에게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쫓기는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 재위기간 29년

4대 왕 중강(中康) : 태강의 동생으로, 후예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후예와의 권력다툼 끝에 왕위에서 쫓겨난다. 재위기간 13년

5대 왕 상(相) : 중강의 아들로 중강이 죽은 후, 제구(帝邱)에서 하나라의 유신들에게 왕으로 옹립된다. 그러나 후예의 토벌로 성이 포위되었을 때 자살한다.

- 후예(后羿) : 원래는 하나라의 제후로 궁술의 명인이었다. 태강이 민심을 잃자, 그가 사냥을 나간 틈을 타 도성을 점령하고 태강의 동생 중강을 옹립하였다. 그러나 중강은 후예의 부하인 희화를 쫓아내고, 백봉(伯封)이라는 제후를 이용해 후예를 견제하려 했다. 이렇게 중강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 자립할 움직임을 보이자 후예는 중강을 쫓아내고 직접 왕위에 올랐으며, 백봉 등 중강을 지지했던 제후들을 탄압하였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백봉의 어머니이자 천하의 미인인 현처(玄妻)를 왕비로 삼았다. 현처는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야심가인 한착을 끌여들였다. 현처는 한착과 정을 통해 계획을 세웠고, 자신의 세상이라고 넋을 놓고 있던 후예를 죽이고 한착을 왕으로 세웠다.

-한착(寒浞) : 원래는 후예의 부하이나, 후예가 왕이 된 후 정사를 돌보지 않고 문란한 생활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현처와 공모하여 후예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20여 년을 다스렸으나, 상의 아들인 소강에게 살해당한다.

6대 왕 소강(小康) : 상이 죽었을 때 임신한 상태였던 상의 왕비는 자신의 친정인 유잉(有仍)으로 피신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바로 소강이다. 소강은 아직도 남아 있던 하나라의 유신들에게 보살핌을 받았으며, 성인이 되고나서 군사를 일으켜 한착을 죽이고 하나라의 왕실을 복구한다.

7대 왕 저(杼) : 소강의 아들로 재위기간은 17년으로 하나라는 중흥시켰다고 전함

8대 왕 괴(槐) ; 저의 아들 재위기간 26년

9대 왕 망(芒) : 괴의 아들 재위기간 18년

10대 왕 설(泄) : 망의 아들 재위기간 16년

11대 왕 불강(不降) 혹은 강(降) : 설의 아들, 재위기간 59년

12대 왕 경(扃) : 강의 동생 재위기간 21년

13대 왕 근(厪) : 윤갑(胤甲), 경의 아들 재위기간 21년

14대 왕 공갑(孔甲): 강의 아들 근의 종형제, 재위기간 31년

15대 왕 고(皐) : 공갑의 아들 재위기간 11년

16대 왕 발(發) : 고의 아들, 재위기간 11년

17대 왕 걸(桀) : 이계(履癸), 발의 아들, 포악하고 사치를 즐기던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 상나라의 주왕과 함께 최악의 폭군으로 부른다. 이윤의 간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정하다가 상나라의 시조인 탕왕에게 패하여 목숨을 잃고 하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6. 하나라 존재여부는 아직 불확실

하나라의 실재성을 확실히 보장하는 고고학상의 발견이 없고 전설상의 왕조로 여겼지만 사기 등의 중국의 많은 고대 사서에 등장하고, 얼리터우 문화를 하나라의 유산이라고 여겨 실존했다고 보기도 한다. 탄소 14연대 측정법에 의해 허난 성 옌스 시 얼리터우 촌의 얼리터우 유적이나 허난 성 신미 시의 신자이 유적 등에 흔적이 있는 얼리터우 문화가 하나라의 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 고고학회는 얼리터우 문화 1기부터 3기까지는 확대기에, 4기는 쇠퇴기로 정의하여, 1기부터 2기까지가 하 왕조, 3기 이후에는 상나라로 접어든다고 추정했다. 중국 학자들은 하나라가 얼리터우 문화와 연관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가운데 어떤 것이 하나라 유적인지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7.마무리

현재까지는 하나라에 대해서는 확실히 규명을 못하고 있지만, 전설상의 왕조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상(은)나라에 대한 실체가 밝혀지고 있고, 이전에 왕조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을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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