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周,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나라는 상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왕조였다.(서주 동주시대 합쳐 약 800년) 이 시기에 철기 시대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지배했다. 주나라의 청동기문화권이 최근의 조사에서는, 중원에서 더욱 남쪽 지방인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등의 양쯔강 유역에까지 미친 것이 확실해졌다. 이 광대한 지배권을 유효하게 통치하는 조직이 봉건제도이다. 주 왕조는 농업을 장려하고 농지의 개척을 진척하였으나 농기구는 목제나 석제의 기구였다.
견융이 침략하여 기원전 771년 유왕이 살해되고 제후에 의해 옹립된 평왕이 호경(鎬京, 현재의 시안 시 부근)에서 부도(副都) 낙읍(洛邑, 현재의 뤄양 시)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 이후를 동주(기원전 770년 ~ 기원전 256년)라고 구분한다. (글 출처:위키백과)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왕조 봉건국가 주나라 (周朝)
1. 주나라 역사
주나라는 은나라의 서쪽 (지금의 산시 성)에서 은나라와 상당 기간 공존했다. 주나라는 은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우호적으로 지내다가도 때때로 은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주나라의 왕실에서 은나라를 정복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전통적으로는 BC 1122년에 주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전쟁은 BC 1111년경에 벌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은나라의 전영역에 대한 주의 통치권이 확립되기 전에 반란이 일어나 이를 진압하는 데 3년이나 걸리긴 했지만, 결국에 주나라가 중국 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주는 영역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전지역에 대한 군주의 지배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각지에 봉건 제후국을 설치했다.
주나라는 중국 역사상 이후 3천년의 기틀을 다진 중요한 시기로 주는 모두 37명의 천자(왕)들이 전후 8백여 년을 거치며 기원전 206년까지 이어진 후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주나라는 오천년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왕조이자 중화(中華) 고전 문명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이 시대에 탄생한 제자백가 그중에서도 특히 유가와 도가 사상은 후세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주의 수도는 원래 웨이허 강(渭河)이 황허 강(黃河)과 합류하기 전의 지점인 지금의 시안(西安) 부근에 있었다. 동부지역으로 팽창한 제국과 제후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황허 강 중류지역에 있는 뤄양에 동도(東都)를 세웠다. 약 200년 후 20여 명의 제후들이 지방에서 세력을 점차 키워감에 따라 이러한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BC 8세기에 기본적으로 거대한 가족체제였던 주의 정치체제는 크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제후들이 주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되면서 유력한 제후들이 번갈아 패자(覇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BC 771년 이전의 주를 보통 서주(西周)라고 하며 BC 770년부터는 동주(東周)라고 한다. 동주는 춘추시대(BC 770~476)와 전국시대(BC 475~221)로 나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많은 작은 제후국들간에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몇몇 강대한 제후국이 작은 제후국들을 병합하면서 패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전쟁을 벌였다. 서주 시기에 주왕조는 비교적 넓어 서기(西畿)와 동기(東畿)를 포함했는데, 서기는 주나라 최초의 도성인 풍호(지금의 섬서성) 이경(二京)을 중심으로 하고, 동기는 나중에 건립된 낙읍(洛邑 지금의 하남성 낙양)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다 기원전 770년 유왕(幽王)이 사망한 후 평왕(平王)이 낙읍으로 천도한 후 서쪽 지역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고 이때부터 주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서주의 역사에 관해 후세 사가(史家)들은 하상(夏商)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주나라가 다른 제후국들의 공통적인 주인 역할(천자의 나라)을 했다는 것 외에 기타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하지만 서주는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및 주공(周公) 등 오제를 본받은 현명한 왕과 뛰어난 신하들이 잇달아 출현해 그런대로 대도(大道)의 자취를 많이 보존한 편이다.
하지만 동주는 달랐다. 후세에 전해진 것을 보아도 강대국이나 비교적 문화가 발달한 몇몇 지역의 역사는 많이 전해졌지만 소위 천자의 나라라고 하는 주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외에도 동주시대 주나라 왕들은 평범하고 용렬한 임금들이 많았다. 동주 시기 천하는 끊임없이 변동했고 특히 열국(列國)간의 경쟁이 아주 격렬해졌다. 동주시기를 춘추시기와 전국시기로 구분하는데 "춘추(春秋)"라는 말은 공자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춘추(春秋)』라는 노나라의 역사서에서 따온 것이고, 전국(戰國)은 전쟁이 빈번한 시기라는 의미로 서한(西漢) 시대에 유향(劉向)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이란 책이 있다.
춘추시기에 각 제후국은 나라의 크기와 세력에 따라 1등에서 2등, 3등국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각국의 실력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어느 한 나라도 압도적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나라에 대한 예제(禮制)는 어느 정도 준수되었고 제후들 간의 쟁패도 주 천자를 존숭한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었다. 때문에 강대국 간의 대규모 전쟁도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전국시기에 들어오면서 북방의 강력한 제후들은 이미 주 천자를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왕을 칭했다. 각 제후들은 모두 여러 제후 왕들을 능가하는 제(帝)가 되길 원했고 더 나아가 중국 전체를 통일한 대제국을 이루려는 야망이 있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전쟁이 아주 빈번하게 발생했다.
춘추시대 말기를 살다간 공자는 당시 이미 천하에 도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탄식했다. 이는 주나라 예법을 중심으로 유지되던 서주시대의 정치제도가 변질되고 각국이 무력과 실력을 숭상하는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다간 공자의 생생한 증언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이 존중했던 도(道)와 덕(德)은 현실적인 권력과 욕망 이익에 밀려나 사람들은 점점 더 도(道)에서 멀어졌다. 때문에 인류의 전반적인 도덕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한편 사람들이 대도(大道)와 멀어지면서 사람들의 도덕이 아주 빨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천상의 일부 신(神)들이 성자(聖者)의 형상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의 사상과 행위를 규범 지었다. 춘추전국시기에 중국에서는 유(儒), 도(道), 묵(墨), 법(法) 등 제자백가가 나타나 쟁명(爭鳴)했지만 그중에서도 노자(老子)의 진도(眞道)와 공자의 유가 사상이 후세 중국역사를 주도한다.
이후 많은 제후국 가운데 하나였던 진(秦)이 나머지 제후국들을 정복하고 최초의 통일제국(BC 221~206)을 이룩한다.
2. 주나라의 통치제도 - 봉건제도
주나라는 본격적인 봉건제도를 실시했다. 개국 초부터 무왕은 자신의 친족들과 태공망 등 개국공신들을 각지에 파견하고 이들에게 영토를 나눠주며 다스리게 하였고, 주(周) 왕실을 지키게 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하는 봉건체제가 되었다. 봉건제 하에서 왕은 직할지를 직접 다스리고, 동맹 세력과 일족을 세습 제후로 봉하여 토지를 나누어 주고 그 대가로 군사적 봉사와 공납을 받았다. 주나라나 제후의 나라는 읍(邑:도시국가)이었고, 그 구조는 씨족적 결합으로 성립되어 있었다. 이 씨족적인 결합은 종법(宗法)에 의하여 규제되어 있었다. 부계 혈통의 종족 구성에서는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의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천자의 적장자만이 천자가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대종이고, 그 나머지 자식들은 소종이라 하여 신분이 한 등급 낮았다. 이 원리는 제후·대부·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전국적인 통치 제도에 이용되었다. 춘추 시대의 봉건 국가들은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다퉜으나,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은 유명무실화 되었고, 급기야 주나라 왕실이 권위가 유명무실화 되고 전국 칠웅의 국가들이 실질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임을 내세우게 된다.
3. 정치
주의 관제에 대해서는 주의 여러 제도에 대해 주공 단이 엮었다고 여겨지는 『주례』에 매우 자세한 기술이 있지만, 이 서적이 집필된 것은 전국시대 이후라고 생각되므로 이것으로 주의 관제를 논하려면 무리가 있다. 금문에 의하면 주에는 경사료(卿事寮)·대사료(大史寮)로 불리는 2개의 조직이 있었다. 경사료의 장관은 태보(太保)·태사(太師)의 2개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태사만 남았다. 그 밑으로 사마(군사 담당)·사토(토지 관리 담당)·사공의 관직이 있었고 각 제후 밑에도 같은 관직이 있었다. 대사료의 장관을 태사(太史)라 부르고 역사의 편찬·각종 의례·제사 등을 실시했다.
신분 제도에 대해서는 『춘추좌씨전』에 의하면, 왕 아래에 제후가 있고 그 아래에 대부(大夫)로 불리는 일종의 귀족층이 있으며 그 아래에 사(士)로 불리는 층이 있고 그 아래가 서민이다. 다만 대부와 사라는 계급은 금문에는 없다. 또한 거래되는 대상인 일종의 노예 계층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고 주로 주인을 대신해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이 안에는 직공이라고 생각되는 직책도 있어 청동기의 주조와 관련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토지 제도에 대해서는 정전제를 하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4. 주나라의 사회와 경제
주나라 시대에 중국은 문명의 측면에서 볼 때 비교적 후진성에서 벗어나 가장 선진적인 지역으로 발전했다. 소가 끄는 쟁기와 철기·석궁(石弓)·기마술을 모두 도입했다. 또 처음으로 대규모 관개와 수리시설도 설치하여 화북 평야의 농업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도량형을 새로 건설하고 교통체계도 크게 개선했다. 상업이 발전하고 도시가 늘어났으며 화폐의 주조가 활발했다. 젓가락도 사용하게 되었다. 은나라 시대에 원시적인 형태로 시작된 문자는 주대에 들어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철학도 크게 번성하여 유가·도가·법가가 이 시기에 나타났다. 후대의 중국인들은 중국 문명의 기원을 알기 위해 주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5.문화
상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그 예술성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주나라도 기본적으로는 그 기술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예술성에서는 간소화되어 은대에 비하면 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대의 청동기는 거의 모두가 제사용이며 실용적인 것은 적다. 그릇에는 점의 결과를 거푸집에 부은 것이 있다. 이것이 금문으라 불리는 것으로 이 시대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대와 비교해서 주대는 이 문장이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또 지금까지의 절대적인 조상 숭배가 약해진 것도 상과 주의 차이로서 들 수 있다. 상나라에서는 조상에 대한 숭배와 외경심이 매우 강하고 제사를 게을리하거나 하면 당장이라도 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의 사람들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하고 있었지만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 순수하게 경의를 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상대에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쳤지만 주대에는 그러한 일이 적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상이 남긴 금문에 비해, 주가 남긴 금문의 수가 적어 주대 전기보다 오히려 상대의 자료가 많은 상태이다.
이러한 청동기에 문자를 거푸집에 붓는 기술은 왕실의 독점 기술인 것으로 보이고 제후에게는 어떤 때에 왕실로부터 하사되는 경우가 있었다. 춘추시대에 들어설 무렵의 혼란으로 기술이 제후에게도 전파되어 제후들 사이에서도 청동기에 문자를 거푸집에 붓는 것이 행해지기 시작했다.
건축 분야에서는 주대에 들어서 모즙 기와가 일반적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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