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주나라 태공(太公) 고공단보

올드코난 2015. 2. 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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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절이 사망한 후 7대가 지나 고공단보(古公但父)가 즉위했다. 고공단보는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다시 이어 덕을 쌓고 의(義)를 행했다. 그러자 국인(國人)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 흉노의 전신에 해당하는 훈육(薰育)족이 고공단보를 공격하며 재물을 요구하자 고공단보는 그들에게 재물을 주었다. 나중에 또 다시 공격해 땅과 백성들을 요구하자 사람들은 모두 분개하며 반격에 나서려 했다.


그러나 고공단보는 "백성들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자신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오. 지금 융적(戎狄 이민족)이 우리를 공격하는 까닭은 우리에게 땅과 백성이 있기 때문인데 백성이 내게 속하든 그들에게 속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백성들이 나를 위해 싸우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의 아버지나 아들을 죽여 가며 그들의 군주가 되는 것이니 나는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고공단보는 빈을 떠나 기산(岐山 지금의 섬서성 기산현과 봉상현) 아래 정착했다. 그러자 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노인을 부축하고 아이를 이끌며 다시 기산 아래에 정착한 고공단보에게 귀순했다.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백성들도 고공단보가 어질고 인자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에게 귀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고공단보는 이때부터 이민족의 풍속을 개량하고 성곽과 가옥을 건축했으며 읍을 설치해 백성들이 거주하기 편하게 했다.


또 각종 관직을 설치해 행정업무를 보게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노래와 음악을 만들어 그의 공덕을 찬양했다. 고공단보는 후대에 태공(太公)이라고 불렸고 강태공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공단보가 사망한 후 계력이 즉위하니 이 이가 바로 공계(公季)이다. 공계는 부친인 고공단보의 덕정을 본받아 인의를 시행하는데 노력했으며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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