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중국의 고대문명 - 황하 문명, 장강 문명, 쓰촨 문명

올드코난 2014. 12. 1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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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문명은 크게 황하 문명과 장강 문명 2갈래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이전페이지에서 중국 고대 문명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 이들을 황화와 장강으로 크게 나눴다고 보면 된다. 중국의 황하 문명과 장강 문명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글 출처: 위키백과, 중국사)

 

중국 고대사: 중국의 고대문명 황하 문명, 장강 문명, 쓰촨 문명

 

1. 황하 문명(黃河文明)은 중국의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문명의 성립이란 일반적으로 국가·청동기·문자의 성립 등이 요소가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황하 문명의 성립기(成立期)는, 오리엔트나 인도보다 늦은 기원전 2000년경이라 알고 있엇지만 훙산 문화 발견 이후로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세계4대 문명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장강 문명, 훙산 문화 등 다양한 문명이 중국 각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4대 문명에 황하 문명만을 채택하지는 않으며, '황하 및 장강 문명'이라 한다. 신석기 시대의 양사오 문화와 룽산 문화를 거쳐, 은나라, 주나라의 청동기 문명으로 발전해 갔다.

 

선사 시대의 중국인의 생활구역은, 황하 유역 지대의 산기슭에 있는 물이 솟아나는 지대에 많으며, 수해를 피하기 위하여 단구(段丘) 위에 거주했다. 나일 강이나 인더스 강 유역에서는, 하천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인한 비옥한 흙의 퇴적을 이용한 관개 농업이 성립했으나, 이 점은 중국 농업의 성립 조건과는 다르다. 황토는 잿빛이 나는 황색의 석영(石英)이나 장석(長石) 등의 미립(微粒)의 퇴적으로서, 빗물 속의 석회질을 모아 땅이 비옥하고 부드러워서 농경 생활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이 황토 지대에서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기초로 문명은 성립된 것이다. 장강 유역에 고문명이 성립하지 않은 이유는, 고온다습(高溫多濕)하기 때문에 초목이 무성하여, 철기시대 이전에는 개간이 곤란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최근 장강 중·하 유역의 문화 유적의 발굴 조사가 진척중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황하 문명의 대표적인 신석기 문화는 페이리강 문화, 라오관타이 문화, 베이신 문화, 츠산 문화, 양사오 문화, 허우강 문화, 다원커우 문화, 룽산 문화, 얼리터우 문화 등이 있다.

 

2. 장강 문명(長江文明)은 중국 장강 유역에서 일어난 고대 문명의 총칭이다. 황하 문명과 함께 중국의 대표 문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강 문명의 시기는 기원 전 14,000년경부터 기원 전 1,000년경으로 추측되며, 이후의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의 국가로 발전해 갔다.

20세기 전반에 황하 문명의 양사오 문화가 발견된 이래, 황하 유역에서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중국 문명의 발상은 황하 유역이며, 그 후 점차 장강 유역 등의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3년, 1978년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저장성 위야오 시의 하모도 유적(河姆渡文化)에 의해, 이 설은 뒤집어졌다. 하모도 유적은 기원 전 6000년 ~ 기원 전 5000년경으로 추정되어 대량의 볍씨 등의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벼농사를 짓고있었기 때문에 그 주거형식은 고마루식(高床式)이었다.

이와 같이 하모도 유적은 황하 문명과는 뚜렷하게 계통이 다른 것이어, 지금까지의 중국 문명이 황하 문명이라고 하는 공식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이 세계4대문명이라고 하는 공식도 타파되어 당시의 정설을 크게 뒤집는 일이 되었다.

더욱 동북지역의 랴오허 주변에서도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어, 현재는 랴오허 주변, 황하 상, 중, 하류 지역, 장강 상, 중, 하류 지역, 각각이 서로 서로 영향을 주었으며 한편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 갔다고 생각되고 있다.

 

특징은, 초기 단계에서는 벼농사가 중심이며, 밭농사 중심의 황하 문명과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모두 독자적인 농경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장강 문명의 발견으로 벼(자포니카 쌀)의 원산이 장강 중류 지역으로 거의 확정되어 벼농사의 발상도 여기라고 볼 수 있다. 중류 지역의 추자링 문화(屈家嶺文化, 기원 전 3000년? ~ 기원 전 2500년?), 하류 지역의 량주 문화(良渚文化, 기원 전 3300년? ~ 기원 전 2200년?)의 시대를 최절정으로 이후에는 쇠퇴하였으며, 중류 지역에서는 황하 유역의 얼리터우 문화가 이식되었다. 황하 유역의 사람들에 의해 정복된 결과라고 추측되며, 황제와 신농이나 치우의 대립 등의 전설은 황하 문명과 장강 문명의 세력 다툼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모도 유적에서는 구슬로 만들어진 옥기나 칠기 등이 발견되고 있어 우청 문화(呉城文化, 기원 전 1400년? ~ 기원 전 1000년?)에서는 자기가 발견되고 있다. 중국 문화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이러한 문물의 원류가 여기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도 있다.

이러한 문화들은 이후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에 계승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떠한 흐름으로 연결되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지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발견된 유적의 물적 량에 비해 연구가 뒷받침 해주지 못하고 있다. 쓰촨 분지에서는 오랫동안 문명의 발견이 없었지만, 1986년에 쓰촨성 광한 시의 삼성퇴 유적(三星堆遺跡)에서 대량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특이한 특징을 가진 유물이 많이 발굴되었으며, 청동상의 얼굴에 썼던 황금가면도 발굴되었다. 고대에 존재하였던 촉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촉나라는 《사기》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아직 중화문명의 시야의 밖의 지역이었다. 오직 기원 전 316년에 진나라의 혜문왕 사마착에 의해서 멸망당했고, 진나라의 세력권에 들어갔던 것만 기록되어있다.

또한 촉 지역의 지역 사서인 《화양국지》에서는 이 고대 촉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있었지만, 황하 문명 중심의 사관에서는 이러한 문헌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퇴 유적의 발견으로 현실성을 띤 것으로 증명되었다.

2004년까지도, 장강 문명, 쓰촨 문명에서도 체계화된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문자모양의 기호는 발견되었으며, 그 연대는 기원 전 2000년 ~ 기원 전 600년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출토하고 있는 최고의 갑골 문자가 기원 전 1,300년 정도(무정기)의 것이므로, 이것이 문자라고 증명되면 갑골 문자에 앞선 문자가 된다.

 

장강 문명은 위찬옌 유적(玉蟾巖遺跡), 셴런퉁 루퉁환 유적(仙人洞・呂桶環遺跡), 펑터우산 문화(彭頭山文化), 다시 문화(大溪文化), 추자링 문화(屈家嶺文化), 스자허 문화(石家河文化), 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 마자방 문화(馬家浜文化), 쑹쩌 문화(崧澤 文化), 량주 문화(良渚文化), 우청 문화(吳城文化) 등이다.

 

3.쓰촨 문명: 중국 동부지역의(촉) 쓰촨성 지방의 문명으로 바오둔 문화(宝墩文化), 삼성퇴 유적(三星堆遺跡) 등이 있다. * 아직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은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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