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박정희가 만든 국민노비문서 국민교육헌장 전문 분석(國民敎育憲章)

올드코난 2016. 1. 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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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네공주의 간신들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애국가4절에 공무원 임명을 하는데 민주성 대신 애국심을 평가한다. 여기서 애국심은 당연히 권력자에 대한 충성이다. 간신 황교안 국무총리는 어찌 보면 박정희 유신 시대 세뇌를 당한 대표적인 로봇형 인간이 아닐지.

과거 박정희 시절 발표되어 당시 청소년기를 보냈던 우리 세대들이 무조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하는가. 총 393자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군부독재의 유산으로 아직도 이 전문내용 대부분을 기억하는 내 자신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해 정리해 본다.

일본천황을 동경했던 박정희가 만든 국민노비문서 국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


1. 국민교육헌장 전문 내용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2.만든이

1968년 6월 박정희(朴正熙)가 당시 문교부장관 권오병(權五柄)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망라하여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할 것을 지시하고

문교부에서는 헌장 제정을 위하여 26명의 기초위원(起草委員)과 48명의 심의위원을 선정, 개혁위원 가운데 박준규(朴浚圭)·이만갑(李萬甲)·김성근(金聲近)·정범모(鄭範謨)·이규호(李奎浩)·박희범(朴喜範) 등이 제출한 논문을 토대로 하여 대학교수 20명을 초청, 3회에 걸친 초안작성준비회가 마련되고 그 해 7월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주재로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박종홍(朴鍾鴻)·이인기(李寅基)·유형진(柳炯鎭) 등이 헌장 초안을 다듬었다. 이 헌장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까지 대통령이 주관한 전체회의 4회,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의 4회가 개최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 선포하였다. 선포일인 12월 5일은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 기념일이 되었다.


3. 폐지

반공과 집권세력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사회적 이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내용의 국민교육헌장은 선포 당시부터 논란을 빚었지만 발표와 동시에 전국의 학생들이 이를 암기할 것을 강요당했다. 암기를 못하는 학생에게는 체벌이 가해지기도 했다. 몇몇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암송대회를 열기도 했고 유신체제 하에서는 매년 12월 5일 기념행사를 치렀다.

국민교육헌장관련 행사는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에 이어 김영삼 정부 초까지 이어졌는데 1993년까지 교육부에서 주관 헌장이념의 구현을 다짐하는 기념식을 베풀고, 스승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는 각종 기념행사를 열었었다.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는 개최하지 않았다. 이후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국민교육헌장이 삭제되었고 2003년 11월 27일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 1968년 선포된지 35년만이다.


4.비판.

국민교육헌장은 일본의 메이지 천황시대에 제정한 군국주의적, 국수주의적인 교육칙어와 이념이 매우 유사하다는 비판이 있고,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이 집단주의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78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이 있었는데, 대학교수 11명이 해직되고 일부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보수 언론(조선일보 같은)들과 수구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적극 옹호한다.



5. 개인적인 추억

위에 잠시 언급했듯이, 초등학교 시절 우리세대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반드시 외워야 했다. 대략 지금 20대에서 50대 중반까지는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7080시대 학생들은 강압적으로 외워야 했는데, 나 역시 많이 맞았다. 하필이면 수구꼴통같은 교사가 학교에 있어서 호되게 욕을 먹으며 외웠다. 이걸 못외우는 그 어린학생들에게 욕과 매질을 해대면서까지 주입을 시켰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입에서 저절로 내용이 나온다. 몇군데 틀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외우고 있는 내 자신이 정말 놀랍다. 이게 바로 세뇌교육의 무서움이다.

이런 세뇌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고, 지금 중년과 노년층들 상당수가 이런 세뇌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같은 이런 군부독재의 유산은 하루라도 빨리 청산되고 잊혀져야 하는 것은 우리 뒤를 이은 세대들마저 독재에 익숙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국민교육헌장은 일본 천황을 동경했던 마사오 박정희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노비문서와 같았다고 하면 과장이 심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의도는 있었다. 국민들을 통제수단으로 여겼던 박정희는 죽는날까지 한국인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열망을 짓밟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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