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사상 최악의 소년 인권 유린 사건 '선감학원' 편이 방송되었다. 방송에서 나온 내용은 실재 그곳에서 자행된 사건들을 모두 다 보여주지는 못했다. 방송내용을 요약해 보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본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선감도 선감학원 진실편, 요약 정리 및 같이 생각해 볼 점을 정리해 본다. 누가 이 지옥을 만들었는가! 박정희 독재시대의 유산인 것이다.
1.선감학원 설립
선감도에 선감학원(仙甘學園))이 세워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이었다. 1942년 부랑아 수용시설로 설립되었는데, 소년범죄의 절멸과 부랑아동들의 갱생을 꾀하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소년의 낙원 선감학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관련자료 매일신보 1942년 4월 17일) 이미 이때부터 선감학원의 비극은 시작되었는데,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이 외딴 섬에서 250여명의 소년들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부원장 아들인 이하라 히로미츠 씨는 자신의 부친이 한 행위에 대해 사죄하며 당시의 일들을 아는 것 모두를 밝혀주었다. 이하라 씨의 증언에 의하면 고문하고 때리고 도망갔다가 붙잡혀 돌아오면 다시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직접 봤다고 증언한다. (이를 솔직한 밝혀준 이하라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2.해방후 다시 열린 지옥의 수용소
문제는 해방후에도 선감학원이 다시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후의 선감학원은 단순히 비교하기는 뭐하지만, 일제 강점기 못지않게 잔인했다는 점이다.
1948년 4월 1일 동아일보에 “공부하고 일하며 새일꾼 되기에 전념, 초등학교 교과수업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라는 모범 복지시설로 선감학원이 소개가 되었다.
3.선량한 아이들이 끌려갔다.
공식적으로는 부랑아, 죄를 지은 아동을 선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할당제였다. 경찰들에게 끌려간 아이들은 부모도 있고, 죄를 지은 아동도 아닌 대체적으로 평범한 8살에서 12살 정도의 어린이들이었다.
그냥 길에서 놀고 있는데 검은 차를 탄 어른들이 나타나 그냥 잡아갔다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가겠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인권이 존중되기전의 시대였다.
4. 박정희 시대가 가장 참혹했다.
생존자들 7명의 증원과 다른 주민들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보면 대부분 60년대와 70년대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전 피해자들도 분명히 있지만, 가장 참혹한 피해를 당한 시기는 바로 이때 박정희 집권기였다.
이유는 당시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에 있어서 빈민들과 부랑아들은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 나치의 히틀러가 그랬고, 북한의 김일성이 그랬듯이 박정희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없애 버려야 할 하찮은 존재로 본 것이었다.
5.원생들의 두려움의 대상 사장과 방장
피해자들의 노동력 착취는 물론, 몰고문과 매질에 성폭력까지 있었다. 특히, 같은 처지이면서도 원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일명 ‘사장’과 ‘방장’들이 당시 피해 원생들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과거 일제 강점기 조선인 순사들이 가장 악랄하고 잔인했듯이, 이들 사장과 방장들이 주로 원생들에게 고문을 직접적으로 가한 자들이었다.
6.탈출이 불가능했던 곳 선감도
원생들은 선감학원을 탈출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성인들도 걷기 힘든 갯벌과 거센 물길이 수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여기에 선감도 주민들은 선감학원에 잡혀있는 원생들을 범죄자로 알고 있거나, 모른척하고 있었다. 만일 원생들이 탈출을 해 숨기라도 하면 주민들이 오히려 학원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만일 원생의 탈출을 돕거나 신고를 하게된다면 당시 시대상으로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7.누구의 죄인가.
선감학원 편에 대한 내용은 가급적이면 JTBC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꼭 한 번 보기를 권하며, 이제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
선감학원 편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냉정하게 판단을 한다는게 어려웠다. 그래도 이성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지,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연 선감학원에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른자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자.
누구일까?
학원을 처음 만든 일본이 먼저 죄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진짜 지옥으로 만든 이는 이 학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박정희였다.
이승만 시대에도 선감학원이 악용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가장 큰 폐해를 준 것은 박정희 시대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져야 확실히 밝혀질 것이다.)
원생들에게 당장 큰 고통을 준 것은 같은 원생이었던 사장과 방장이지만, 이들에게 권력을 준 것이 당시 선감학원의 원장과 공무원(선생)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군력을 준 최종인물이 바로 박정희였다.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권력자 박정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선감학원의 원장이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는지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고의적으로 없애버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선감학원의 원장과 당시 교사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노력 못지 않게,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해주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그곳에서 죽었는지를 밝혀 내야 한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어떤 일들이 같이 고민해 보자.
마지막으로 일본에게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 못지 않게, 박정희 시대에 저지른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비판과 역사적인 사실을 밝혀 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일제 시대를 잊어 버리면 다시 나라를 뺏길 수 있고, 독재 시대를 망각하면 다시 독재자가 등장한다.
선감학원에서 벌여졌던 일들에 대해 경기도는 물론 정부도 진실 규명 노력을 반드시 해 주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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