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민주화 업적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올드코난 2015. 11. 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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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0시 21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인생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가 없어, 여기에는 생전의 잘한 부문에 대한 평가만을 다루어 보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과도 있었지만 공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앞장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1.개요

故 김영삼(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은 1927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거제(통영군)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金寧) 김씨 28대손으로 사육신 사건 무렵 살해된 김문기의 후손이다.


1954년 거제에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28세로 당선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박정희 정권에 맞섰고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도 맞섰다. 1983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1986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을 선언하여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되고 1993년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해, 32년만에 군사 정권을 끝내고 첫 문민 정부를 열었다.



대통령 재임기간 민주주의 측면에서 확연히 발전을 이루었는데,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했고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마광수 등의 문학가를 석방한다.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 역사 바로 세우기,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군부 사조직 하나회 척결, 전두환·노태우 및 군사반란자들을 사법처리했다. 임기말인 1997년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당시 한국 경계에 엄청한 시련기를 가져왔다. 퇴임후 많은 비판을 받다 2015년 11월 22일 0시 21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2.올드코난의 본 김영삼 대통령이 잘한 점 평가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김영삼 대통령은 애증의 관계로 보면 된다.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며, IMF를 불러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을 한마디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않다.

차후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생애를 차곡히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날이니만큼 비판 보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만 평가를 해보겠다.



(1) 민주화운동

우선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에 공헌을 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2분의 야당 지도자들이 한 민주화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을 정도로 분명한 업적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들의 공로는 분명 인정을 해야 한다.


(2) 언론 자유의 시작

직전 대통령인 노태우까지 한국의 언론의 ‘배달의 기수’로 요약하면 된다. 한국의 언론들이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김영삼의 문민정부때부터였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감히 하지 못했던 비평들을 김영삼 정부때부터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명박이 언론의 자유를 후퇴시키기는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까지 언론의 자유는 착실히 진행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3)금융실명제

지금은 당연한 이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정부가 만든 대표적인 업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전에는 차명 거래를 통해 권력자들과 재벌들 그리고 범법자들이 자금을 세탁하고 탈세를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초인 1993년 8월 12일 모든 금융은 실명으로 거래하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금융실명제가 시행이 되면서 한국 금융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를 해야 한다.


(4) 역사바로 세우기

1995년 일제 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폭파 철거한다.

지금 세대들은 한번도 보지 못했을 조선총독부 청사는 지금의 광화문 바로 뒤에 있었다. 한국의 정기를 누르고 조선을 자신들이 통치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경복궁 바로 앞에 세위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해방수 무려 50년 만에 철거를 시킨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개칭했다. 일제가 한국의 정기가 있는 곳마다 박아돈 쇠말뚝 뽑기 등도 김영삼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독도접안시설을 건설하고 당시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있었지만 이에 당당히 대항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김영삼 대통령이 잘한 점이다.

이상의 이야기와 그가 한 잘못은 차후 정리한다.

일단 오늘은 서거날이며, 명복을 비는 날이니 비판의 글은 삼가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만 줄인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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