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JTBC 뉴스룸에서 김무성의 부친 김용주가 동명이인 때문에 친일파로 오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했다. 김무성 부친이 정말 동명이인이었을까? JTBC에서 사실 확인해보니 동명이인인 김용주는 15세 어렸던 만주군이었던 인물이었고, 김무성 부친이 김용주는 징병제 참여하고 독려 광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명의 김용주 모두 친일매국노였던 것이다. 한마디 한다.
친일반민족행위 김용주 아들 김무성은 애비의 죄를 반성하는 대신 김용주를 애국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건 효도가 아니라 국민과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우선, JTBC 취재에서 중요한 것만 정리한다. 편의상 김부성 아버지 김용주는 A 김용주, 동명이인을 B 김용주로 표기하며 동명이인인 B 김용주부터 간략히 설명한다.
1. B 김용주(동명이인, 간도특설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친과 이름이 같아 혼동이 된다고 주장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동명이인 김용주는 1920년 생으로 김무성의 아버지 A 김용주 보다 15살이 어리다. B 김용주는 1941년 만주국이 항일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간도특설대에 입대한 매국노로 훈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성 대표적인 친일매국노였다. 참고로 간도 특설대에는 백선엽을 비롯한 150여명의 조선인이 장교로 복무를 했다.
2. A 김용주 (김무성부친)
1905년생으로 호는 해촌(海村) 경상남도 함양군 출생 일본명 金田龍周. 일제강점기때인 1937년부터 경상북도 도회의원으로 활동했는데, 이 시대 의원은 적극적인 친일로 봐야 한다. 단순히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친일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욕심에 일본제국주의 편에서 안락한 삶을 원했던 적극적인 친일행위였다. '일본동맹통신사'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김용주는 대구 신사를 건립하는 데 2천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해방후 김용주는 이승만 대통령 당시 대한해운공사 사장, 주 일본 공사 등을 지내다 전남방직 사장이 되고 제2공화국 장면 정권 때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내다 5.16 군사정변 당시 정계떠나 기업가로 활동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김용주의 세째아들이 바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이고, 외손녀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3.김무성 부친 A 김용주의 밝혀진 친일행각
(1) 1940년 2월, 동아일보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한다"라는 발언이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라는 내선일체를 당연시 한 말인데,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내선일체를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평등한 관계로 한 국가의 국민으로 대우를 받았다는 친일파들의 거짓에 속아서는 안된다. 일본인을 주인으로 조선인은 영원한 식민지민 혹은 노예로 삼겠다는 것이 내선일체의 본질인 것이다.
(2) 매일신보 1943년 10월3일 2면 기사 제목 '총후의 전열에 총립, 제2일 공직자대회에 멸적의 열화창일, 각 의원들의 열론'(銃後의 戰列에 總立, 第二日 公職者大會에 滅敵의 熱火漲溢, 各議員들의 熱論)
징병제 시행을 고마워하며 미국과 영국 격멸을 결의할 목적으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서 당시 경북도회 의원 김용주는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 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敬神崇祖 報恩感謝)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태평양전쟁당시 미군에 맞서 조선인들이 일본을 위해 희생을 해야 된다는 망언이었다.
(3) 1944년 1월에 발간한 ‘징병제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대회기록’ (徵兵制施行感謝 敵米英擊滅 決意宣揚 全鮮公職者大會記錄)
여기서 김용주는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정신적으로도 내선일체화를 꾀한다는 말이 무섭다. 김용주는 조선인이 진심으로 일본을 섬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이 외의 발언들과 주장
"각 면에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신을 공경하고 신앙 생활을 하게끔 하면 일본 정신의 진수에 철저히 젖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하여 모든 것을 신께 귀일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철저히 하여 현세의 신이신 천황께 귀일하는 것입니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한글판을 매주 1회 발행하자”
"대동아전쟁 바야흐로 저편과 이편이 결전양상으로 바쁘고 어지럽고 맹렬하게 됨을 돌아보고, 더욱 미영격멸의 결의를 새롭게 하고 조선서 필승 신념을 고양하며, 전력증강, 전시생활의 확립을 한층 심화 철저히 하는 건설적 의견"
"반도(한반도) 2천500만의 반수인 부녀자의 생산방면 활동을 높이기 위해 취사는 아침 밤 2번으로 하고, 점심은 도시락제로 할 것. 요릿집, 음식점 등 유흥음식 시간을 미영격퇴까지 당분간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4. 정리
김무성 대표의 애비되는 김용주의 친일 행각은 분명히 밝혀졌고, 앞으로도 밝혀져야 될 내용이 많다.
김용주의 삶을 대략적으로 보면,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애국자도 아니고, 민주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김용주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며 권력추구형 인간이다.
당시 조선인들 일본인의 노예로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자리와 이권은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자가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이다.
이런 매국노를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두둔하는 것을 효도라고 할수 없다.
보통 사람도 아닌 여당의 대표이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사실을 왜곡하려드는 것은 용납해서도 안된다.
김용주를 비롯한 많은 친일반민족주의자들은 조선의 수많은 청년들에게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으라고 외쳤지만, 정작 자신과 가족들은 전쟁터로 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때 대다수 조선인들이 일본에 의해 수탈과 학대를 당하고 살았지만, 친일매국노들은 귀족처럼 살았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었던 이들 친일파가 지금 한국사회의 주류이고, 여전히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왜 이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을까를 비난하기에 앞서 왜 이들에게 표를 주었는지부터 반성하라.
전두환은 총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이명박근혜는 투표로 권력을 받았다.
다음은 김무성에게 표를 줄 것인가!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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