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게 폐군이 2명있다. 하나는 연산군이고 다른 하나는 광해군이다. 광해군의 부인며 정비였던 폐비 류씨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본다.
조선 광해군의 정비 폐비 류씨(廢妃 柳氏)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생애
1. 개요
폐비 류씨(廢妃 柳氏, 1576년 8월 15일/음력 7월 21일 ~ 1623년 10월 31일/음력 10월 8일)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의 왕비(王妃)이다.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이라고도 한다. 본관은 문화 류씨로, 아버지는 문양부원군 류자신 어머니는 봉원부부인 동래 정씨였다.
2.세자빈
16세였던 광해군과 혼례를 치르고 아들 셋을 났았는데 첫째와 셋째가 일찍 요절하고 둘째인 질이 이후 세자가 된다.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되면서 왕세자빈(王世子嬪)이 되는데, 당시 시어머니는 바로 인목왕후 김씨였다. 유씨보다 8살이나 어린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나이도 어렸지만 무엇보다 선조가 광해군을 싫어하고 아직 어린 영창대군에게 마음을 주면서, 인목왕후 김씨와 류씨는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가 되는데, 류씨의 셋째 아들의 죽임이후 더 큰 반목이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선조의 사랑을 받은 인목왕후에게 궁녀들이 모이면서 류씨는 세자빈임에도 무시를 당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류씨는 큰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3.왕비
하지만, 영창대군이 2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선조가 죽으면서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역전되고 만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류씨는 왕비(王妃)로 진봉되면서 실질적인 궁궐의 안주인이 된다. 이때부터 류씨는 인목왕후 김씨를 무시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류씨의 친정집안이 외척이 되어 비리를 저지르면서 국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광해군 시기에 풍년이 들어 백성들 삶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류씨 친정이 얽힌 부정부패가 심각해 지고, 왕비 류씨는 다소 호화로운 궁궐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4. 폐비와 죽음
1623년 4월 11일(음력 3월 12일)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왕으로 즉위한다. 남편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류씨도 폐비되고 강화도에 같이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 해 6월 아들 폐세자 질이 26일동안 몰래 구멍을 파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졸들에게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소식에 폐세자빈 박씨는 자결하고 6월 25일 폐세자 질 역시 강화도에서 자결한다.
아들 질의 죽음을 알게된 류씨는 병을 얻어 같은 해 10월 31일(음력 10월 8일) 폐위된 지 7개월여 만에 유배지에서 사망하고 만다.
사후 경기도 양주 적성에 묻혔고 폐비(廢妃)인 까닭에 능은 조성되지 않았고 광해군과 나란히 묻혔다. 인조는 문성군부인이라는 읍호를 내린다.
참고로 비공식적으로 2002년 11월 15일, 사이버 조선왕조 사이트에서 인터넷 논객들이 광해군을 “혜종 경렬성평민무헌문대왕(惠宗 景烈成平愍武獻文大王)”으로 추숭 복위하고, 폐비 류씨를 “소온사헌혜장왕후(昭溫思獻惠章王后)”, 능호를 열릉(烈陵)으로하여 추숭하기도 했다.
5. 평가
왕비로서의 기질이 있던 여인이었다. 인조반정 당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는 했지만,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당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조가 폐비 류씨에게 읍호를 내린 것도 류씨의 이런 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광해군이 임금으로 있던 시기 그녀의 처가의 부패를 알면서도 막지 않은 점과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는 점에서 좋은 인품과 바른 정치를 행하려는 마음은 부족해 보인다.
야사에 의하면 "후세에는 절대 왕실이 부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처에게 자주 빌었다고 전해지지만 이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류씨는 폐비가 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훌륭한 왕비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해 본다. (차후 더 공부를 하고 정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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