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여성근로자 차별에 맞선 세계 여성의 날 유래 의미 설명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올드코난 2016. 3. 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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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 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1909년 시작된 것으로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고 1975년부터 국제연합에 의해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정리해 본다.

근로자의 권리, 인권, 민주주의와 여성 근로자들의 권익에 큰 영향과 도움을 주고 있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 유래 의미 설명


1.최초의 여성 노동조합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은 가사만을 하던 여성들에게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남성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과 조건에 더 낮은 임금에 여성차별까지 심각해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결국 1857년 미국 뉴욕 시에서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곧 경찰에게 공격받고 해산되고 2년후 1859년 3월 여성들은 최초로 노동 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2. 세계 여성의 날 시작

1908년 2월 28일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에서 1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뉴욕 시로 행진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의 영향으로 1909년 2월 28일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이 미국에서 선포되었고 이에 자극받은 유럽에서는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고,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개최되었다. 3월 19일로 한 것은 1848년 3월 19일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이때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주장했다.

2년후인 1913년부터 3월 8일로 변경된 이후 지금까지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3. 러시아 혁명 당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로인해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세계 여성의 날은 위기를 맞게된다. 이는 자본가들 보다는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제 연대적 색채가 강한 세계 여성의 날을 공공연히 방해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역차별했던 것이다. 1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명목을 이어가는데,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진행될즈음인 1917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페트로그라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키는데 공헌을 하게되고 이어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여성들의 평등권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1927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한 후부터 국제 공산주의를 사실상 부인하고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가 쇠퇴하게되는에 이로인해 세계 여성의 날도 쇠퇴하게된다.


4.국제연합 지정

1960년대들어 여성 운동이 성장하고 세계 여성의 날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되고 여성들의 인권과 여성근로자들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노력을 하게되는데,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 동안 유엔은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공식 기념하기 시작한다.(그래서 이 해를 공식 1회로 보는 사람도 있다.) 2년 뒤 1977년 12월 유엔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는 회원 국가들이 1년 중 하루를 정해 그 날을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로 준수할 것을 선포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여성의 역할 인정, 여성 차별의 종식, 여성의 평등권을 촉구하게 된다.



5.한국에서의 여성의 날

1920년 당시 일제 강점기였던 조선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박인덕, 김활란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이들 여성 행사를 감시하지만 탄압하지는 않고 1945년 해방까지는 이어진다.

문제는 해방 이후였다. 당시 혼란기이기도 했지만 사회운동은 모든 공산당이라고 여겼던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 거의 모든 사회 운동을 탄압하고 여기에는 여성의 날 행사도 포함된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세계 여성의 날이 사회주의라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1985년이 되어서야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있고 있대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본격적인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및 각종 여성주의 단체들이 주최 및 후원하는 전국적인 정치·문화 행사로 자리잡았고, 한국 여성 인권과 여성근로자들의 지위향상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6.마무리

여성차별의 역사는 너무 오래되었다. 최근들어 여성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차별은 크다. 흔히 유리천장 지수로 알려진 남녀차별 지수를 보면 인종, 종교 등의 어떤 차별보다 더 큰 차별이 여성차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여성임에도 오히려 여성차별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은 여성차별의 이면에는 여자와 남자라는 성적인 구별보다는 강자와 약자라는 힘의 논리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재자의 힘이 군대라면, 자본의 힘은 돈이다. 자본의 논리는 경제논리로 이어지는데, 이런 경제위주의 정책이 여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생각해 본다. 결론은 역시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경제민주화의 중요성 또한 언급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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