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5·16 군사 정변 배경, 2공화국은 무능하지 않았다.

올드코난 2016. 5. 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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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정변(五一六軍事政變)은 5·16 군사 쿠데타(五一六軍事 coup d’État), 군사 반란이라고 불린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소령 이낙선 등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8기, 9기 출신 일부 장교들이 제6군단 포병여단, 해병대,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 당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필자가 학창시절에는 5·16 군사 정변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후 쿠데타였다는 비판 속에 현재는 5·16 군사 정변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른다. 하지만, 최근 5·16 군사 정변의 당사자인 박정희 딸이 대통령이 되고부터는 혁명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분명히 나오고 있다. 

5·16 군사 정변은 분명 군사 반란이었고, 성공한 쿠데타라고 해서 이를 혁명으로 미화해서는 안된다. 5·16 군사 정변에 대해 주요한 점을 앞으로 시간이 되는데로 정리를 하기로 하며 오늘은 사건의 배경부터 살펴 본다.

5·16 군사 정변 제대로 알기 첫 번째 5·16 군사 정변 배경은 2공화국의 무능이 아니라 박정희의 권력욕이었다.


5.16. 군사 반란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반란을 일으킨 자들 대다수가 국민을 위한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군 내부의 진급 문제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승만 정부 이후 2공화국까지 국군 내부의 주요 알력다툼은 광복군과 중국군, 일본군, 만주군 출신, 함경도파, 서북파 등 여러 가지 출신 군벌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광복후 초기 광복군과 중국군 출신이 중용되었는데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1광화국이 출범하면서 주요 요직에서 제거되고 일본군 출신을 중용하고 이후 세가 커지자 만주군 출신을 중용해 일본군 출신을 제거하는 등 군내의 권력 다툼을 이승만이 조장한 것은 이후 출신별로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이유게 된다. 


이 당시 박정희는 만주군 출신이지만, 육사 출신으로 박정희를 포함한 육사5기, 육사8기 등이 승진이 막히면서 육사출신들 끼리 뭉치게 만들고 결국에는 군사 반란을 모의하기에 이른다. 흔히, 5.16군사정변을 2공화국의 무능때문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반란을 모의했음이 드러났다.


반란에 성공한 후 3공화국을 세운 이들 반군들과 이후 박정희 추종자들은 현재까지 제2공화국의 정치력 부재와 사회·경제적 혼란, 그리고 군 내부 인사들의 응축되어 있던 불만이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2공화국 장면 총리의 무능의 탓으로 돌리지만, 냉정하게 살펴 보면, 장면 총리가 무능했다기 보다는 이승만 독재이후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이 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통제하지 않았다. 통제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의 자유를 존중해 준 것이다. 이는 장면 총리의 소신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승만 시기에 언론 통제에 익숙했던 대다수 국민들에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장면 정부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은 아직까지도 장면 총리는 정말 무능했다는 비판을 받게 만들었고, 이를 박정희와 반란세력들은 아직까지도 써먹고 있는 것이다.


당시 2공화국과 장면 내각은 무능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부족했다. 2공화국은 1960년 6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고작 11개월짜리 정부였다. 11개월만에 일제 36년, 신탁통치 3년, 이승만 독재 12년 등 한반도 내에 누적되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를 재건했다고 떠드는 박정희의 3공화국의 경제가 살아난 것은 권력을 장악하고도 수년이 지나서였다. 1년이 채 안되는 이 기간 동안 2공화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2공화국이 무엇을 못했는가만 찾지 말고, 무엇을 해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한 것도, 박정희의 쿠데타 명분이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지, 국민을 위한 혁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때문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5.16군사정변의 배경은 2공화국의 무능이었다는 이런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박정희를 비롯한 반란군들의 권력욕과, 당시 시대상황등을 분석해 봐야 한다. 2공화국과 장면은 무능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없었을뿐이라는 말로 5.16 군사반란의 배경은 여기서 줄인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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