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안동김씨 세도정치 주역, 순조의 정비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설명

올드코난 2016. 3. 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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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조선의 비극이었다. 정조의 죽음이후 100년간은 최악의 시기였고, 여기에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있었다. 그리고 안동김씨 세도정치는 순조가 즉위를 하면서 시작이 되는데, 정비의 순원왕후 김씨는 순조, 헌종, 철종까지 영향력을 펼쳐 세도정치 뿌리를 내리게 만든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정리해 본다.

안동김씨 세도정치 주역, 순조의 정비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설명


1.개요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1789년 6월 8일/음력 5월 15일 ~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 조선 23대 왕 순조의 정비(正妃) 문조(효명세자, 文祖)의 어머니이며 헌종의 할머니. 본관 안동(安東) 김씨. 정식시호는 명경문인광성융희정렬선휘영덕자헌현륜홍화신운수목예성홍정순원왕후(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顯倫洪化神運粹穆睿成弘定純元王后), 할아버지는 서흥부사 증 영의정 김이중(瑞興府使 贈 領議政 金履中, 1736~1793) 아버지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 어머니는 청양부부인 심씨(靑陽府夫人 沈氏)


2. 왕비

시파이며 정조의 최측근인 아버지 김조순의 영향으로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 세자빈으로 확정되었는데,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고(1800년) 최종적인 삼간택이 미루어졌고 순조 즉위 2년 뒤에 왕비로 책봉되었다.(10월 2일 (음력 9월 6일))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거두고(1804년 2월 9일 (1803년 음력 12월 28일), 순조의 친정이 시작된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그때까지 정순왕후와 함께 권력을 쥐고 있던 김관주를 비롯한 경주 김씨의 벽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김이익(金履翼)과 김이도(金履度) 등의 안동 김씨 시파를 등용하게되는데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을 이때로 본다.

안동김씨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아 정순왕후 집권 이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는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세도정치의 폐해로 백성들의 삶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순원왕후는 1809년에 맏아들인 효명세자를 낳았는데 효명세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순조의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당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19년, 풍양 조씨인 조만영의 딸을 효명세자의 세자빈(신정왕후)으로 맞는다.


3.대왕대비

1827년, 순조는 효명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였는데 이 대리청정 기간 동안 효명세자는 현재(賢材)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으나 1830년, 대리청정 4년 만에 갑작스럽게 죽고만다. 1834년에는 순조마저 죽고 당시 8세였던 왕세손이 헌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헌종이 즉위하자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고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는데, 헌종의 왕비로 자신의 친척인 김조근의 딸(효현왕후)을 맞이한다.


4. 최후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죽고 순원왕후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장헌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 원범(철종)을 강화도에서 궁으로 데려와 덕완군(德完君)으로 책봉하고 자신과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시킨다. 철종을 즉위시킨 뒤에도 철종의 왕비를 다시금 안동 김씨인 김문근의 딸(철인왕후)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이어나갔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69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인릉(仁陵)으로 남편인 순조와 합장되어 있다.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 1900년 남편 순조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로 추존되자 순원왕후는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존되었고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에는 '대한 순조숙황제 인릉 순원숙황후 부좌(大韓 純祖肅皇帝 仁陵 純元肅皇后 祔左)'라는 묘비가 세워졌다.

33통의 편지로 구성된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封書)가 있는데 가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당대 정치에 대한 관심 등을 표현하였고 글씨도 우아한 궁체(宮體)로 되어 19세기 한글 편지의 특징과 언어, 서체 이해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5.평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지만, 사실 더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 바로 순원왕후 김씨다. 간혹 정순왕후를 안동김씨로 알고 있지만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였다. 순원왕후가 안동김씨였고,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뿌리내리게 만들고 조선 멸망을 앞당긴 인물이었다.

한 인간으로서는 정순왕후가 더 악랄할수도 있지만 순원왕후가 더 많은 피해를 준 것은 순조 사후 헌종과 철종 임금 양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 집안에 모든 권력을 주어버렸기에 조선은 실재로는 안동 김씨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세도정치가 특히 위험한 것은 세도가는 자신이 왕이 아니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고려 무인시대처럼 왕을 내세우고 언제든지 갈아치울수도 있는 이런 세도정치는 백성들을 착취하면서도 왕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들은 어떤 가책도 느끼지 않기에 더 악랄할 수 있는 것이다. 순원왕후는 69세로 죽기까지 안동김씨를 위해 살았고 이는 다시 말해 조선과 백성들의 고통의 시기였던 것이다.

간혹 순원왕후의 처신에 당시 권력 투쟁이라고 동정하는 안동김씨 후손들이 있는데, 옳지 않다. 순원왕후는 백성의 고통을 알고 있었음에도 오로지 자신과 친정인 안동 김씨들의 권력 장악에만 평생을 바쳤다. 외척이 권력을 잡으면 안되는 이유를 순원왕후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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