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삼국의 멸망과 통일-개요

올드코난 2016. 7. 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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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이 정립된 상황에서 위나라 1대 황제 문황제(조비)가 죽고 명황제(조예)가 황제가 된다. 얼마후 조예가 죽고 8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황제 조방(소제)가 황제가 오르면서부터 조씨 가문과 사마씨 가문사이에 긴장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대장군 조상은 젊었기에 사마의가 마음을 놓았었지만, 갈수록 세력을 확대시켜 나가자 사마의는 사태를 주의깊게 살피는 등 조상과 사마의는 서로에게 경계심을 갖게 되는 데 사마의가 뛰어난 전략가라는 사실을 조상은 잘 몰랐다. 


사마의는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이에 조상은 안도하며 방심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조상과 가족들이 고평릉으로 간 틈을 타 사마의는 낙양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를 고평릉 사변이라고 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사마씨 가문에 대해 대항하지만, 진압당하고 위나라의 모든 권력을 사마씨가문이 장악하고 조방을 폐위하고 14살 조모(曹髦)를 황제로 세우지만 실권은 모두 사마씨 가문이 갖게된다.


한편 촉나라는 제갈량이 죽은 후 승상자리는 장완과 비위, 동윤이 차지하는데 이후, 촉의 정치는 환관들에게 조종당했고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강유가 촉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위나라를 자주 공격해 사마소는 촉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등애를 사령관으로한 위나라는 촉나라 수도 성도를 함라가자 황제 유선은 항복하고 결국 촉나라는 43년 만에 멸망했다. 유선은 낙양에서 위나라에 의해 "안락공"에 봉해졌다.


사마소가 옹립한 4대 위나라 황제 조모가 점차 자신의 친정을 하려들자 사마소는 조모를 살해하고 위의 마지막 황제 조환(曹奐)을 세운다. 이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한 수순이었지만 문제는 이과정에 많은 피를 흘려 민심이 자신을 떠나간 것을 사마소는 알고 있었다. 해서 자신은 황제가 되는 것을 단념한다. 사마소가 죽은후 사마소의 진왕 직은 아들 사마염이 물려받게 되고 사마염은 264년 조환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아 위는 멸망하고 진을 세웠다.


오나라는 손권 뒤를 이어 어린 손량이 252년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때부터 오나라는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뒤를 이은 손휴는 폭군이었다. 진이 생겨난 후 오의 황제였던 손휴가 사망했고, 신하들에 의해 손호가 황제에 자리에 올랐는데 즉위전 손호는 촉망받던 영재였으나,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급격히 포악해져 자신에게 간언을 하는 신하들을 처형하거나 유배보냈다. 


여기에 진을 자극하는 군사행동으로 진이 오나라를 토벌할 명분을 주게되고 279년 겨울, 사마염의 명에 의해 진이 공격을 시작했고, 쓰촨 성 지역의 함대는 강을 따라 형주로 향했으며, 창 강을 따라 건업(현재의 난징 시)에서 강릉까지 다섯군데를 동시에 공격했다. 이런 맹공에 결국 건업은 280년 3월에 함락당하고 손호는 항복하며 오나라는 멸망하고 삼국 시대는 끝나게 된다. 


하지만, 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삼국이 통일되었지만 진나라 시기는 백성들에게는 더 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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