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조조의 등장과 관도대전 승리

올드코난 2016. 7. 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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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년 반동탁 연합군 사이에서 동탁의 허수아비 황제 헌제를 폐하고 황실의 친척이었던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자신들의 기득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반동탁연합군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나라(후한)의 재건보다는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더 관심이 갖게 되는데 이는 동탁을 타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욕심을 내보인 것이다. 이로인해 반동탁 연합군은 와해된다. 이 시기 가장 독보적인 힘과 횡보를 보인 것은 원소였고 원소는 자신이 황제가 될 욕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동탁이 죽은 후 장안은 권력다툼으로 치열한 살육전이 벌어지고 이를 피해 헌제는 196년에 낙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낙양은 폐허가 된 상태로 먹을 것 조차 없어 초근 목피로 생명을 유지할 지경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조조가 등장한다.


조조는 헌제를 정중히 허창으로 모셔간다. 황제를 옆에 둔다는 것은 자신에게 대의명분이 있기에, 황제의 명을 대신해 자신이 권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탁월한 계략이었고, 훗날 조조의 위를 삼국시대의 정통 국가로 여기는 것도 이때문인 것이다.


조조는 황건적의 난 당시인 189년 군사를 일으킨 후 큰 성과를 얻으면서 장막과 진궁 등을 포함 유능한 장수와 군사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흡수하는 유능한 면을 보인다. 그리고 196년 허창으로 수도를 삼고 근처에 둔전제를 시행했다. 농산물의 반 정도 되는 높은 세금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농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중요한 것은 조조는 세금을 받았지만, 백성의 것을 뺏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재능도 있었지만, 민심을 얻는 법도 알고 있었다.


이런 조조에게 헌제가 있다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으로 이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이가 바로 원소였다. 천하의 패권을 놓고 조조와 원소는 반드시 충돌할 운명이었고 그 전투가 바로 관도대전이었다. 당시 중국의 대부분의 인구와 물자는 북쪽에 있었고, 이 지역을 차지한 원소는 군사와 물자 등 모든 면에서 조조를 앞도했다. 


이런 원소와 조조의 대결은 많은 이들이 원소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원소의 가장 큰 단점은 오만함에 있었는데, 능력은 있는 인물이지만 자신이 뛰어나다는 자만심이 지나쳐 유능한 인재들의 말을 무시한데다가, 가족들간의 불화 등 내부적으로 단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만일 원소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이고 충고를 들었다면 관도대전은 원소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치열했던 관도대전은 조조의 승리로 끝나고 원소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중원은 조조의 차지인 듯했다. 


하지만, 조조가 미처 몰랐던 영웅들이 남아 있었다. 바로 유비와 손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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