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후한시대 환관의 권력장악 당고의 금 (당고의 화) 설명

올드코난 2016. 7. 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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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의 화(黨錮之禍)는 후한 말기에 일어난 탄압 사건으로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라고도 불린다. 후한 시대를 사실상 멸망에 이르게 한 계기이며 삼국지 시대의 사실상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2차례에 걸쳐서 발생했다. 정리해 본다.


1. 1차 당고의 화(黨錮之禍)

환제는 간신 양기를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이에 공이 큰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한데에 있다. 권력을 장악한 환관들은 국정을 농락하고, 이에 많은 재야 지식인들이 이를 비판한다. 특히 수도 낙양의 태학(太學)의 유생들이 환관타도를 부르짖고 환관들은 위기 의식을 느낀다. 해서 환관들은 166년 환제(桓帝)에게 이응 등이 도당을 모아 조정을 비방하고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상소를 올리게 한다. 분노한 환제는 환관 공격의 선봉에 선 청류당의 이응(李膺) 등 2백 여 명을 붙잡아 투옥한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청류당은 저마다 입을 모아 환관의 죄상을 폭로하자 환관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의 모든 치부가 드러날 것을 염려했던 환관은 외척 두무(竇武) 등이 상주하여 간한 것을 기회로 당인(黨人)의 죄를 용서하되 향리로 돌려보내 종신 금고(일생동안 관리 채용금지) 처분을 내리게 된다. 이를 당고의 화(黨錮之禍) 혹은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라고도 부른다.


2. 2차 당고의 화

1차 당고의 화가 종결되고 당인들이 석방된 그해 12월 환제가 죽는다. 뒤를 이어 장제의 후손인 12세의 유굉이 황제로 즉위하는데 이가 영제(靈帝)다. 영제는 나이가 어리기에 두태후(竇太后)가 섭정을 하게 되고 외척 두무를 대장군으로 진번을 태부로 삼았는데 이들은 백성들에게 명성이 있어서 조정이 안정을 이루는 듯 했지만, 환관들의 전횡은 더욱 심각해 환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 세울수 없다는 공감대를 당시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백성들이 갖고 있었다.

이에 진번과 두무는 환관의 우두머리 조절, 왕보 등을 제거하기 위해 두무는 당인의 금고를 해제하고 그들 청류당에 속한 사람들을 등용하고 이들과 결탁해 환관들을 주살할 계획을 세우지만, 치밀하지 못해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고 만다. 환관들은 군대를 동원해 진번을 살해하고 두무는 체포되어 자살하고, 이응 등의 당인은 또다시 붙잡혔다. 이때 죽음을 당한 자는 1백여 명이 넘고 사죄(死罪), 유죄(流罪), 금고(禁錮)의 처분을 받은 자는 6백~ 7백 명이나 되었다. 이를 2차 당고의 화라 하는데, 이토록 처참하게 처리를 한 이유는 1차 당고의 화 당시 처분을 약하게 했기에 사건이 재발했다 여긴 것이다. 2번에 걸친 당고에 의해서 청류당은 철저하게 탄압을 받아 해체되었고 두태후 마저 남궁으로 쫓겨나면서 환관의 전제가 확립되었다.


3. 결과

2회에 걸친 당고의 화는 조정의 모든 권력을 환관들이 독점하게 만들었고, 이는 후한시대의 후기 100년간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며, 국가는 환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황건의 난(亂)등이 일어나면서 후한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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