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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5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8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3. 방랑의 길 옥에서는 나왔으나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 늦은 봄 안개가 자욱한 데다가 인천은 연전 서울 구경왔을 때에 한 번 지났을 뿐이라, 길이 생소하여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에 물결소리를 더듬어서 모래사장을 헤매다가 훤히 동이 틀 때에 보니 기껏 달아난다는 것이 감리서 바로 뒤 용동 마루턱이에 와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휘휘 둘러보노라니 수십 보밖에 순검 한 명이 칼 소리를 제그럭제그럭 하고 내가 있는 데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길가 어떤 가겟집 함실 아궁이를 덮은 널빤지 밑에 몸을 숨겼다. 순검의 흔들리는 환도집이 바로 코끝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아궁이에서 나오니 벌써 환하게 밝았는데, 천주교당의 뾰족집이 보였다.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7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그 뒤에도 제 2차, 제 3차로 관계있는 각 아문(관청)에 소장을 드려 보았으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이 모양으로 김주경은 7,8개월 동안이나 나를 위하여 송사를 하는 통에 그 집 재산은 다 탕진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번갈아서 인천에서 서울로 오르락내리락하셨으나 필경 아무 효과도 없이 김주경도 마침내 나를 석방하는 운동을 중지하고 말았다. 김주경은 소송을 단념하고 집에 돌아와서 내게 편지를 하였는데, 보통으로 위문하는 말을 한 끝에 오언절구 한 수를 적었다. '(탈농진호조 발호기상린 구충필어효 청간의려인) 새는 조롱을 벗어나야 좋은 상이며 고기가 통발을 벗어나니 어찌 예사스러우랴. 충신은 반드시 효 있는 집에서 찾고 효자는 평민의 집..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6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밤이 초경이 되어서 밖에서 여러 사람이 떠들석하고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옳지. 이제 때가 왔구나." 하고 올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한방에 있는 죄수들은 제가 죽으러 나가기나 하는 것처럼 모두 낯색이 변하여 덜덜 떨고 있었다. 이 때 문 밖에서, "창수, 어느 방에 있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방이요." 하는 내 대답은 듣는 것 같지도 않고, 방문도 열기 전부터 어떤 소리가, "아이구, 이제는 창수 살았소! 아이구, 감리 영감과 전 서원과 각청 직원이 아침부터 밥 한 술 못 먹고 끌탕만 하고 있었소---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이느냐고. 그랬더니 지금 대군주 폐하께옵서 대청에서 감리 영감을 불러 계시고, 김창수..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5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며칠 전보다는 기운이 회복되었으므로 모여 선 사람들을 향하여 한바탕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 왜놈들이 우리 국모 민 중전마마를 죽였으니 우리 국민에게 이런 수치와 원한이 또 어디 있소? 왜놈의 독이 궐내에만 그칠 줄 아시오? 바로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이 필경은 왜놈의 손에 다 죽을 것이오. 그러니 여러분! 당신들도 나를 본받아서 왜놈을 만나는 대로 다 때려 죽이시오. 왜놈을 죽여야 우리가 사오." 하고 나는 고함을 하였다. 와나다베놈이 내 곁에 와서, "네가 그렇게 충의가 있으면 왜 벼슬을 못하였나?" 하고 직접 내게 말을 붙인다. "나는 벼슬을 못 할 상놈이니까 조그마한 왜놈이나 죽였다마는, 벼슬을 하는 양반들은 너의 황제의 모가지를 베어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하고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4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이 감리사가 나를 심문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나 김창수는 하향 일개 천생이건마는 국모 폐하께옵서 왜적의 손에 돌아가신 국가의 수치를 당하고서는 청천백일 하에 제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왜구 한 놈이라도 죽였거니와, 아직 우리 사람으로서 왜왕을 죽여 국모 폐하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거늘, 이제 보니 당신네가 몽백(국상으로 백립을 쓰고 소복을 입었다는 말)을 하였으니, 춘추대의에 군부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은 잊어버리고 한갖 영귀와 총록을 도적질하려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단 말이요?" 감리사 이재정, 경무관 김윤정, 기타 청상에 있는 관원들이 내 말을 듣는 기색을 살피건대 모두 낯이 붉어지고 고개가 수그러졌..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3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내가 나진포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탄 것이 병진년 7월 25일, 달빛도 없이 캄캄한 밤이었다. 물결조차 아니 보이고 다만 소리뿐이었다. 배가 강화도를 지날 때쯤하여 나를 호송하는 순검들이 여름 더위 길에 몸이 곤하여 마음놓고 잠든 것을 보시고 어머니는 뱃사공에게도 안 들릴 만한 입 안의 말씀으로, "애야, 네가 이제 가면 왜놈의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물에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모자가 같이 다니자." 하시며 내 손을 이끄시고 뱃전으로 가까이 나가셨다. 나는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이번 가서 죽을 줄 아십니까, 결코 안 죽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친 정성으로 한 일이니 하늘이 도우실 것입니다. 분명히 안 죽습니다...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2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나는 때가 왔다 하고 서서히 일어나 '이놈!'소리를 치면서 발길로 그 왜놈의 복장을 차니 그는 한 길이나 거진 되는 계하에 나가 떨어졌다. 나는 나는 듯이 쫓아 내려가 그놈의 모가지를 밟았다. 삼간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며 그리로서 사람들의 모가지가 쑥쑥 내밀어졌다. 나는 몰려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누구나 이 왜놈을 위하여 감히 내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발에 채이고 눌렸던 왜놈이 몸을 빼쳐서 칼을 빼어 번쩍거리며 내게로 덤비었다. 나는 내 면상에 떨어지는 그의 칼날을 피하면서 발길을 들어 그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은즉 칼이 저절로 언 땅에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그 ..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1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 혼사에 훼사를 놓은 김가라는 사람은 함경도 정평에 본적을 둔 김치경이다. 10여 년 전에 아버지께서 술집에서 그를 만나 술을 같이 자시다가 김에게 8, 9세 되는 딸이 있단 말을 들으시고 취담으로, "내 아들과 혼사하자." 하여 서로 언약을 하고 그 후에 아버지는 그 언약을 지키셔서 내 사주도 보내시고 또 그 계집애를 가끔 우리 집에 데려다 두기로 하셨는데, 서당 동무들이 '함지박장수 사위'라고 나를 놀리는 것도 싫었고, 또 한 번은 얼음판에 핑구를 돌리고 있는데 그 계집애가 따라와서 제게도 핑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나를 조르는 것이 싫고 미워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떼를 써서 그 애를 제 집으로 돌려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약혼을 깨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여러 해를..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0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우리는 이튿날 강계를 떠나 되넘이고개를 넘어 수일 만에 신천으로 돌아왔다. 청계동으로 가는 길에 나는 호열자(콜레라)로 하여서 고 선생의 맏아들 원명의 부처가 구몰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나는 집에도 가기 전에 먼저 고 선생 댁을 찾았더니, 선생은 도리어 태연자약하셨다. 나는 어색하여 말문이 막혔다. 내가 부모님 계신 집으로 가려고 하직을 할 때에 고 선생은 뜻모를 말씀을 하셨다. "곧 성례를 하게 하자."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잡고 비로소 내가 없는 동안에 고 선생의 손녀, 즉 원명의 딸과 나와 약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번을 갈아서 약혼이 되던 경로를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하루는 고 선생이 집에 찾아오셔서..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9

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어디나 토지는 비옥하여서 한 사람이 지으면 열 사람이 먹을 만하였다. 오직 귀한 것은 소금이어서 이것은 의주에서 배로 물을 거슬러 올라와 사람의 등으로 져 나르는 것이라 한다. 동포들의 인심은 참으로 순후하여 본국 사람이 오면, '앞대나그네'가 왔다 하여 혈속과 같이 반가워하고, 집집이 다투어서 맛있는 것을 대접하려고 애를 쓰고, 남녀노소가 모여 와서 본국 이야기를 돌려 달라고 졸랐다. 대부분이 청일전쟁 때 피난간 사람들이지만 간혹 본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온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는 민요에 장두가 되었던 호걸도 있고 공금을 포흠한 관속도 있었다. 집안의 광개토왕비는 아직 몰랐던 때라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거니와, 관전(?)의 임경업 장군의 비각을 본 것이 기뻤다. '삼국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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