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강태공 같은 사람을 첫 남편으로 삼지도 말고 친구도 되지 마라.

올드코난 2013. 3. 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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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전: 인간관계는 상대적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역사 속의 위인들에 대한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다르곤 합니다. 강태공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올드코난의 뜬금없는 역사 이야기: 태공망 강태공 같은 사람을 첫 남편으로 삼지도 말고 친구도 되지 마라.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태공의 일화를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1. 강태공 요약

강태공: 태공망 [T'aikung wang, 太公望] (?~ ?) 중국 주(周)나라의 신하, 1등 공신. 본명은 강상 (姜尙).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은(殷)나라를 멸망하고 주나라를 중국의 새로운 왕조로 만든 인물. 제(齊)나라의 후(侯)로 봉해졌다. 태공망이라는 명칭은 주나라 문왕(文王)이 웨이수이 강[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을 만나 선군(先君)인 태공(太公)이 오랫동안 바라던(望) 어진 인물이라고 여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체로 태공망은 주나라와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온 강씨(姜氏) 부족의 대표로서 주나라의 군대를 지휘한 인물로 추측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병법을 세운 시조로 여겨져 〈태공육도 太公六韜〉 등의 병법관계 서적이 그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태공망에서 유래한다. 출생년과 사망일을 불명확한데 문헌으로는 기원전 1211년(은나라 경정(庚丁) 8년에 출생하여 기원전 1072년(주강왕 6년)에 사망할 때까지 나이(수壽)가 139세에 달했다고 한다. 중국 기록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난다. 또 다른 중국 기록에서 강상은 기원전 1140년 9월 12일(음력 8월 3일(~5) ~ ?)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2. 강태공의 일화

강태공이 남긴 일화에 '복수불반분'(한번 엎지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있습니다. 강태공의 전 부인 마씨가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전까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강태공 곁을 떠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강태공이 주문왕과 주무왕을 도와 주(周)의 창업에 성공하고 제(齊)나라의 제후로 임명이 되었는데, 당시 봉건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周)의 신하국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 나라의 군주가 된 겁니다.

 

이때 강태공의 전 부인인 마씨가 다시 돌아와서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는데, 이는 부인의 자리를 원했다기 보다는 가난한 삶을 도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강태공은 하인더러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그 물을 땅에 엎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씨에게 지금 바닥의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아내로 맞이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떠난 마음은 두 번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3. 부인 마씨를 위한 변명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씨를 비난하지 강태공의 속 좁음을 비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떠났으면 그만이다라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고마움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들입니다.

 

강태공의 부인 마씨가 살던 시기는 은나라 말기로 폭정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산을 이루었다는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이때 강태공은 때를 기다린다고 낚시로 소일을 하고 있고, 부인 마씨 혼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요즘도 여성들이 사회생활의 힘듦을 토로합니다.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3,000년 전에는 오죽했겠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엄청난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부인 마씨는 대략 30년 가량 강태공의 부인으로 살면서 청춘을 다 보내야 했습니다. 참다 못해 결국은 떠나 버렸고요.

 

강태공은 부인 마씨의 30년의 시간에 대한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마움은 기억 없고 자신을 떠났다는 원망만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4.강태공의 사람됨

강태공 같은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아무리 도움을 많이 주어도 결국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매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인간입니다.

실재로 제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내가 도움을 그렇게도 주었던 사람들 중에서 마지막에 딱 한 번 거절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저를 향해 의리 없는 놈이라고 욕하고 다니는 놈이 있습니다.

힘들 때 내가 도와 주었던 일은 언급조차 없습니다.

 

강태공은 자신만의 성공을 거둔 기회주의자 그 이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강태공은 주나라 창업 공신이라고 칭송을 받는 역사 속의 위인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마씨는 남편을 버린 악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보상은 없고, 죽을 때까지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부인에 관한 일화 뿐만 아니라 강태공이 인간성은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선행을 배출었다는 어떤 기록도 없다는 점입니다.

 

역사에 강태공의 업적에 대한 글들은 있지만, 그가 70의 나이에 주문왕을 만나기 전까지 가난하게 살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았던 이웃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에 대한 말은 전혀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역사 속 인물(위인)들은 덕을 칭송하기 위해 때로는 과장된 선행을 적기도 하지만 강태공에 대해서는 좋은 일을 했다는 기록이나 일화도 없습니다.

 

3000년 전이기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은 인물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입을 통해서라도 전해 집니다.

청나라에서 강태공을 천하통일을 이룬 왕으로 인정 무성왕(武成王)이라는 시호를 내릴만큼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덕에 관한 말은 없다는 점은 강태공과 같은 시기의 사람들이 그를 인간적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5. 마무리

나는 강태공을 이렇게 평가를 하고자 합니다.

 

이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인물. 은혜를 모르는 사람

 

강태공은 여자 입장에서는 절대 첫 번째 남편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인물이고, 남자 입장에서도 어려울 때 (가난할 때) 친구가 되어서도 안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좋았던 일을 먼저 기억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쁜 모습만을 먼저 기억하고 남의 흉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100가지 중 99가지 도움을 주어도 마지막 100번째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해도 하지만 강태공 같은 인물과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겪어 봤거든요.

결혼 적령기의 여성 분들은 특히 저의 충고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글 작성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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