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왕후에서 노비로 한많은 인생을 살다간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

올드코난 2014. 5. 2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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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코난의 역사이야기: 왕후에서 노비로 한많은 인생을  살다간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에 대해 알아 봅시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년 ~ 1521년 7월 7일(음력 6월 4일))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현 칠보면)출생. 조선 6대 임금 단종(端宗, 1441년 8월 9일 (음력 7월 23일) ~ 1457년 11월 7일 (음력 10월 21일), 재위 1452년~1455년)의 정비. 시호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영돈녕부사로 추증된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의 딸, 본관 여산(礪山). 세종의 왕자 영응대군의 부인 대방군부인 송씨는 그녀의 고모이자 시숙모이다.

 

어린시절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다는 칭찬을 받았고 고모가 영응대군의 부인이라는 점 등의 이유로 세자비에 간택이 되었다.

1452년 문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단종이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1년후 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나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게되고 다음해인 1454년 2월 19일 (음력 1월 22일) 열 다섯의 나이로 한살 연하였던 단종과 정식으로 혼인 왕비로 책봉되었다. (어린 나이여서 정식 결혼을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1455년(세조 1년) 단종은 수양대군의 측근 세력인 한명회·권람 등에게 선위를 강요받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정순왕후 송씨는 왕대비가 되어 의덕(懿德)의 존호를 받았다.

1456년 음력 6월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457년 상왕 단종은 그 사건에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의덕왕대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이때 단종과 부인 정순왕후 송씨는 영영 이별을 하게 된다.

공식적인 기록 조선왕조실록에는 1457년 음력 10월 21일 단종이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17세)

 

정순왕후 송씨는 남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군부인(君夫人)으로 격하되었다가 단종이 죽은 후 관비가 되었다. 조카를 폐위시켜 죽이고 조카의 부인을 노비로 만든 세조의 잔인함 면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신숙주가 그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은둔중이던 학자들에게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내져 여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세조의 증손이자 단종의 종손뻘인 중종(中宗) 18년인 1521년 7월 7일(음력 6월 4일), 82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별세 때에는 대군부인의 격에 따라 치러진 장례로 경기도 양주군(楊州) 군장리(群場里,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에 매장됐다. 단종과 그녀의 복위로 종묘에 배향되면서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했는데 이는 억울하게 살해된 남편을 사모(思慕)한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사후 중종의 재위 초기, 사림파인 조광조 등에 의해 복위가 주장됐으나 중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 뒤 현종 때부터 송시열과 김수항 등은 단종과 그녀의 복위를 거듭 건의했지만 거부되다가 1698년 12월 7일(숙종 24년 음력 11월 6일), 단종과 함께 복위되어 시호를 받고 종묘 영령전에 신위가 모셔졌다.

 

그녀의 묘소 뒤편에 심은 나무들이 단종의 능인 장릉쪽을 향해 고개숙여 자란다는 전설이 한 때 전해졌다. 무속의 신의 한 명으로 숭배됐는데, 무속에서는 그녀를 송씨부인 신이라 부른다.

 

세상을 떠날때까지 정순왕후 송씨는 노비 신분이었다.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왕비가 되었다 노비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 것이다.

82년이라는 짧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그녀의 인생의 유일한 기쁨은 1454 15세의 나이로 단종과의 혼례를 치렀을 때 뿐이었을 것이다. 이후 폐위되고 평생을 노비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 단종과의 사랑 역시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청산 과부로 여생을 보냈다.

 

한때 왕후였던 신분이 노비로 전락했으니, 동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에 아직 17세의 꽃다운 나이였기에 그녀를 노리는 자들이 그녀를 특히 힘들게 했을 것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신숙주가 그녀를 종으로 달라고 한 것도 나이도 어린데다가 왕의 여자였다고 하는 호기심과 음흉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숙주라는 인물이 참으로 사악하다. 신숙주에 대한 평도 곧 정리해 올리겠다.)

 

역사를 통틀어 보면, 여자들의 악행 보다는 남자들의 죄악이 훨씬 많다.

몇몇 악녀들이 등장하지만, 숫자를 세어 보면,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고통을 받거나, 비참한 생을 마감한 여인들의 수가 훨씬 많다.

그중에서도 정순왕후 송씨는 가장 안타까운 삶을 살다간 연인이 아니었나 싶다.

 

정순왕후 송씨를 통해 세조와 그를 도운 자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가가 아닌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권력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조의 재위 기간은 13년이다. (1455년~1468년)

고작 13년 왕 노릇해 보겠다고, 세조는 한 맺힌 인생을 살다간 정순왕후 송씨를 포함해 너무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주었다. 이들의 원한이 세조를 괴롭혔다.

결국 세조는 등창이나 죽었고, 정순왕후 송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세조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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