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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情天恨海(정천한해), 선사의 설법, 잠꼬대

올드코난 2010. 7. 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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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海 (정천한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의 하늘에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 바다가

  병 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으면

  한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하늘이 무너지고 한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千)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하늘이 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하늘에 오르고 한바다를 건너려면

  님에게만 인기리라.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붂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지기는  하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   

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고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습니다.      

잠꼬대

 

  「사랑이라는 것은 다 무엇이냐.  진정한 사람에게는 눈물도    

고 웃음도 없는 것이다.

  사랑의 뒤웅박을  발길로  차서 깨뜨려  버리고  눈물과 웃음을      

티끌 속에 합장(合葬)을 하여라.

  이지(理智)와 감정을 두드려 깨쳐서 가루를 만들어 버려라. 

  그리고 허무의 절정에  올라가서 어지럽게  춤추고 미치게 노래    

하여라.

  그러고 애인과 악마를 똑 같이 술을 먹여라.

  그러고 천치가  되든지  미치광이가 되든지    송장이 되든지      

하여 버려라.

  그래 너는  죽어도 사랑이라는  것은 버릴   수가 없단 말이냐.      

  그렇거든 사랑의 꽁무니에 도롱태를 달아라.

  그래서 네 멋대로  끌고 돌아다니다가  쉬고 싶거든  쉬고 자고   

싶거든 자고 살고 싶거든 살고 죽고 싶거든 죽어라.

  사람의 발바닥에 말목을  쳐놓고 붙들어  서서 엉엉  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 세상에는 이마빡에다  <>이라고 새기고  다니는 사람은 하    

나도 없다.      

연애는  절대  자유(絶對自由),   정조(貞操)는 유동(流動)이요,

결혼식장은 임간(林間)이다.

  나는 잠결에 큰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아아, 혹성(惑星)같이 빛나는  님의 미소는  흑암(黑闇)의 광선    

(光線)에서 채 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잠의 나라에서 몸부림치던  사랑의 눈물은  어느덧 베게를 적셨    

습니다.

  용서하셔요, 님이여,  아무리  잠이 지은  허물이라도  님이 벌      

()을 주신다면, 그 벌을 잠을 주기는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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