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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금강산,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만족

올드코난 2010. 7. 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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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금강산

 

  만 이천 봉! 무양(無恙)하냐 금강산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    

철학.명예.재산,    외에도 있으면  있는  대로 태워버리는       

을 너는 모르리라.

 

  너는 꽃이 붉은 것이 너냐

  너는 잎이 푸른 것이 너냐

  너는 단풍에 취한 것이 너냐

  너는 백설(白雪)에 깨인 것이 너냐.

 

  나는 너의 침묵을 잘 안다.

  너는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종작 없는  찬미를  받으면서 시쁜      

웃음을 참고 고요히 있는 줄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너는   천당이나 지옥이나  하나만  가지고 있으려무나,      

  꿈 없는 잠처럼 깨끗하고 단순하란 말이다.

  나도 짧은 갈고리로 강  건너의 꽃을 꺽는다고  큰 말하는 미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침착하고 단순하려고 한다.

  나는 너의 입김에 불려오는 조각 구름에 키스한다.

 

  만 이천 봉! 무양하냐 금강산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메화나무  가지에 구슬같은 꽃망울을 맺혀    

는 쇠잔한 눈 위에 가만히 오는 봄기운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밖에  다른 하늘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모든   

꽃의 죽음을 가지고 다니는 쇠잔한 눈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구름은 가늘고 시냇물은  얕고 가을  산은 비었는데  파리한 바     

위 사이에 실컷 붉은 단풍은 곱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  부르고 울음도  웁니다. 그러한 <자연의   

인생>은 가을  바람의 꿈을  따라  사라지고 기억에만  남아 있는      

지난 여름의 ㅁ르익은 녹음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일경초(一莖草)가 장육금신(丈六金身)   되고 장육급신이  
경초가 됩니다.

  천지는 한 보금자리요 만유(萬有)는 같은 소조(塑造)입니다.

  나는 자연의 거울에 인생을 비춰 보았습니다.

  고통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님을      

떠난, 나는 아아 행복입니다. 

 

 

 만족           

 

  세상에 만족이 있느냐, 인생의 만족이 있느냐,

  있다면 나에게도 있으리라.

 

  세상에 만족이 있기는 있지마는 사람의 앞에만 있다.

  거리는 사람의 팔  길이와 같고  속력은 사람의  걸음과 비례가 된다.

  만족은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다.

  만족을 얻고 보면  얻은 것은 불만족이요,  만족은 의연히 앞에 있다.

  만족은 우자(禹者)  성자(聖者)의 주관적 소유가 아니면
  약
자의 기대뿐이다.

  만족은 언제든지 인생의 수적평행(竪的平行)이다.

  나는 차라리 발꿈치를  돌려서 만족의  묵은 자취를  밟을까 하노라.

 

  아아,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아지랑이 같은 꿈과  ()실 같은  환상이 님  계신 꽃동산에     

  들릴 때에 아아,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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