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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꽃싸움,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은

올드코난 2010. 7. 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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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문학, ,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꽃싸움

 

  당신은 두견화를 심을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다.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는 흰 꽃수염을 가지,

  꽃 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을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도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

십니다.



의심하지 마셔요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조금도 의심을   

두지 마셔요.

  의심을 둔대야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으나 부질없이 당신에    

게 고통의 숫자만 더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첫사랑의 팔에  안길 때에  온갖 거짓의  옷을 다      

벗고 세상에   나온 그대로의   발가벗은 몸을   당신앞에 놓았습        

니다. 지금까지도 당신의  앞에는 그  대에 놓아  둔 몸을 그대로     

받들고 있습니다.

 

  만일 인위(人爲)가 있다면  <어찌 하여야 처음  마음을 변치 않    

고 끝끝내 거짓  없는 몸을  님에게 바칠꼬>하는  마음 뿐입니다.     

                                                 

  당신의 명령이라면 생명의 옷까지도 벗겠습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슬픔>입니다.

  당신이 가실 때에  나의 입술에  수없이 입맞추고「부디 나에게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잘 있으라」고  한 당신의  간절한 부탁에     

위반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용서하여 주셔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슬픔은 곧 나의 생명인 까닭입니다.

  만일 용서하지  아니하면 후일에  그에 대한  ()을 풍우(  

)의 봄 새벽의 낙화(落花)의 수()만치라도 받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동아줄에 휘감기는   체형(體型)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혹법(酷法)  아래에 일반  가지로 복종하는 자유형(自由刑)도 받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의심을 두시면  당신의  의심의 허물과      

나의 슬픔의 죄를 맞비기고 말겠습니다.

  당신에게 떨어져  있는 나에게  의심을 두지  마셔요.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를 더하지 마셔요.


당신은

 

  당신은 나를 보면  왜 늘  웃기만 하셔요.  당신의 찡그리는 얼   

굴을 좀 보고 싶은데.

  나는 당신을  보고 찡그리기는  싫어요. 당신은  찡그리는 얼굴   

을 싫어하실 줄을 압니다.

  그러나 떨어진 도화가 날아서 당신의 입술에 스칠 때에 나는    

이마가 찡그러지는 줄도 모르고 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금실로 수놓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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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1879 - 1944. 충남 홍성 출생. 호는 만해. 3.1운동 당시 불교계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 타고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작 전편을 통해 불교적인 사상이 개진되고 있다.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개혁자로서 또한, 위대한 민족 운동가로서 실천한 민족시인이었다.

시집으로 <님의 침묵>과 소설 <흑풍>및 저서 <불교유신론> <불교대전>

<신협담 주해> <한용운 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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