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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사랑'을 사랑하여요., 요술, 고대

올드코난 2010. 7. 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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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韓龍雲)

 

'사랑'을 사랑하여요.

 

  당신의 얼굴은 봄하늘의 고요한 별이어요.

  그러나 찢어진  구름 사이로  돌아오는, 반달같은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여쁜 얼굴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베겟모에 달을 수놓지 않고 별을 수놓아요.

 

  당신의 마음은 티없는 순옥이어요.

  그러나 곱기도 밝기도  굳기도, 보석같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
닙니다.

  만일 아름다운 마음만을 사랑한다면, 옥으로 만들어요.

  당신의 시()   봄비에 새로  눈트는  금결같은 버들이어요.       

  그러나 기름같은 검은 바다에 피어오르는

  백합같은 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좋은 문장만을  사랑한다면, 왜 내가  꽃을 노래하지 않고    

  버들을 찬미하여요.

 

  온 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

 


요술

 

  가을 홍수가 작은 시내의 쌓인 낙엽을 휩쓸어 가듯이,

  당신은 나의 환락의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나에게 남은 마음은 고통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가기 전에는 나의 고통의 마음을 빼앗아 간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환락의 마음과  고통의 마음을 동시에 빼앗아  간다 하면,

  나에게는 아무 마음도 없겠습니다.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  구름의 면사로 낯을  가리고 숨어 있겠습니다.

  나는  바다의  진주가  되었다가,  당신의  구두에  단추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만일 별과 진주를 따서 게다가 마음을 넣어         

  다시 당신의 님을  만든다면, 그때에는 환락의  마음을 넣어 주셔요.

  부득이 고통의 마음을 넣어야 하겠거든,

  당신의 고통을 빼어다가 넣어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빼앗아 가는 요술은 나에게는 가르쳐 주지 마셔요.

  그러면 지금의 이별이 사랑의 최후는 아닙니다.


고대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해가 저물어 산 그림자가 촌집을 덮을 때에,

나는 기약없는 기대를 가지고 마을 숲 밖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를 몰고 오는 아이들의 풀피리는 제소리에 목메입니다.

, 나무로 돌아가는 새들은 저녁 연기에 헤엄칩니다.

숲들은 바람과의 유희를 그치고 잠잠히 섰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동정하는 표상입니다.

  시내를 따라 굽이친 모랫길이 어둠의 품에 안겨서 잠들 때에,

  나는 고요하고 아득한 하늘의 긴 한숨의 사라진

  자취를 남기고, 게으른 걸음으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어둠의 입이 황혼의 엷은 빛을 삼킬 때에,

  나는 시름없이 문 밖에 서서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다시 오는 별들은 고운 눈으로 반가운 표정을 빛내면서

  머리를 조아 다투어 인사합니다.

  풀 사이의 벌레들은 이상한 노래로, 백주(白晝)

  모든 생명의 전쟁을 쉬게 하는 평화의 밤을 공양(供養)합니다.

  네모진 작은 못의 연잎 위에 발자취 소리를 내는 실없는 바람이

나를 조롱할 때에 나는  아득한 생각이 날카로운 원망으로  화합

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일정한 보조로 걸어가는  사정없는 시간이  모든 희망을 채찍질하여 
밤과 함께 돌아갈  때에, 나는 쓸쓸한  잠자리에 누워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가슴 가운데의 저기압은 인생의 해안에 폭풍우를 지어서,

삼천 세계(三千世界)는 유실되었습니다.

벗을 잃고 견디지 못하는 가엾은 잔나비는

()의 삼림에서 저의 숨에 질식되었습니다.

우주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대철학은

눈물의 삼매(三昧)에 입정(入廷)되었습니다.

나의 '기다림'은 나를 찿다가  못 찿고 저의 자신까지  잃어버렸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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