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정지용 作 - 저녁 햇살, 뻣나무 열매, 절정

올드코난 2010. 7. 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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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저녁 햇살


불 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 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 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 눈은 고만스런 흑단초.

네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 빨어도 배고프리.

 

술집 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 탄다. 아아 배고파라.

뻣나무 열매

 

웃 입술에 그 뻣나무 열매가 다 나섰니?

그래 그 뻣나무 열매가 지운 듯 스러졌니?

그끄제 밤에 늬가 참버리처럼 닝닝거리고 간 뒤로-

불빛은 송화ㅅ가루 삐운 듯 무리를 둘러 쓰고

문풍지에 아름푸시 얼음 풀린 먼 여울이 떠는구나

바람세는 연사흘 두고 유달리도 미끄러워

한창 때 삭신이 덧나기도 쉬웁단다.

외로운 서 강화도로 떠날 임시 해서-

웃 입술에 그 뻣나무 열매가 안나서서 쓰겠니?

그래 그 뻣나무 열매를 그대로 달고 가랴니?

 

 

절정

 

석벽에는

주사가 찍혀 있오.

이슬 같은 물이 흐르오.

나래 붉은 새가

위태한데 앉어 따먹으오.

산포도순이 지나갔오.

향그런 꽃뱀이

고원꿈에 옴치고 있오.

거대한 죽엄 같은 장엄한 이마,

기휴조가 첫 번 돌아오는 곳,

상현달이 사러지는 곳,

쌍무지개 다리 드디는 곳,

아래서 볼 때 오리온 성좌와 키가 나란하오.

나는 이제 상상봉에 섰오.

별만한 흰꽃이 하늘대오.

민들레 같은 두다리 간조롱해지오.

해솟아 오르는 동해-

바람에 향하는 먼 기폭처럼

뺨에 나부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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