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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론) 청록파

올드코난 2010. 7. 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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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1. 청록파의 등장

  1939년에 이르러   [자오선]의 일부  동인들이  간행한 [시학]   마지막으로 [문장]

(1939-41)과 최재서 주재의 [인문평론]이 각각 등장, 동인지 시대의 막을 내린다. [문장]

이 창작중심인데 반하여 [인문평론]은 평론 중심의 문예지였다. 이 두 잡지의 공헌은 대

단히 컸다. 특히 [문장]은 추천제도를 마련 많은  신인들을 발굴함으로써 문학의 계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남겼다.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김수돈. 박남수. 김상

. 이호우 등은 모두 이의 시인들이였다.

  이 가운데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등  세칭 청록파의 등장은 전통적인 시정신과 새로

운 자연, 그리고 생명의 리듬을 제시, 시간을  초월한 생명의 고향을 추구하였다. 그들의

출현은 한국시의 주류를 다시 한 번 순수문학으로 산맥을 형성하였다.

 

<<참고>>

  30년대에 들어와 동인지와 문예지 못지 않게 문예의 발표부대가 된 것은 일간지의 

화면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의한 신인발굴의 공헌은 무시할 수 없으

[조광](1935-49). [삼천리](1929-42) 등 월간지의 지위도 간과할 수 없다. 김현승은 동

아일보지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1934)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한 시인이였

. 이상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시사는 특히 동인지를 중심으로 離合集散하면서 작품활동

이 이루어진것을 알 수 있다.

 

 

2. 조지훈(1920-1968)

 1>전기론적 고찰

  본명 동탁. 경북 영양 출신이며 혜화전문학교를 졸업사고 해방 수 경기여고 등의 교사

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1939년에 <고풍의상>,<승무>,<봉황수>가 차례로 [문장]지에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때 오대산에 들어가 월정사 講院에서 강사생활을 한 후 1946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

청록집]을 간행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시세계-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첫째는 회고적 취미이다. 이는 다분히 志士的 그의 기질이 표현된 것으로 망국의 한

을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시는 <봉황수>,<고풍의상> 등이 속한다.

 

        검정 수목 두루마기에

  동정 달아 입고

창에  기대면

박넌출 상기  남은

기울은 울타리 위로 장독대 위로

새하얀  눈이나려 쌓인다

홀로 지니던 값진  보람과

빛나는 자랑을 모조리 불사르고

소슬한 바람 속에

낙엽처럼 無念 썩어가면은

이 허망한 時空      위에

내 외로운 영혼        가까이

꽃다발처럼 꽃다발처럼

하이얀 눈발이

나려 쌓인다.

마음    이리 고요한 날은

아련히 들려      오는

서라벌 천년의 풀피리 소리

 

悲哀 하여 내 혼이 야위기에는

절망이란 오히려

나라는 누처럼 포근하고나.

       -<눈 오는 날에>

 

<<참고>>

가을 바람이 세차게 불어 빠르며 하늘이 드높고 이따금  들려 오는 원숭이의 휘파람소리

가 슬프 니,/물가가 맑으며 모래가 흰  곳에 새가 날아 돌아오는 구나/끊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

히 떨어 져 내리고/다함이 없는 긴 강은 잇고 이어 흘러오는 구나/만리 타향에 가을을 슬퍼하면서 늘 나그네가 되니/평생 많은 병을 지닌 몸으로 홀로 높은  대에 올랐다/새상살이의 어려움에 서리    같이 센 귀밑털이 어지러움을 슬퍼하나니/늙고  몰골이 흉악하매 탁주잔을 새삼 끊고 지내노라

                                                                -두보,<登高>

 

  두 번째는 자연친화사상이다. <민들레꽃>,<완화삼>,<파초우> 등이 이에 속한다.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이 밤을 어디에서 쉬리라던고//성긴 빗방울/파초 잎에 후두기

는 저   녁 어스름/창 열고 푸른 산파/마조 앉아라.//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이기에/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이 밤을 어디에서 쉬리라던고.

                                                                -<파초우>

 

  세 번째는 불교적 세계이다. <승무>,<古寺> 등이 이에 속한다.

木漁 두드리다/졸음에 겨워//고오운 상좌 아이도/잠이 들었다//부처님은 말이 없이/웃으시는    //서역만리 길/누부신 노을 아래//모란이 진다.

                                                                -<古寺 1>

 

 

3. 박목월(1916-1978)

  본명은 영종이며 경북 경주 출신이다. 1939년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되었다. 그의 시들은 민요적인 면에서 소월과 언어의 조탁에 의한 음악성이라는 점에서 영랑과 맥을 이으면서 自然回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인생에 대한 달관, 고전적 우아함, 세련된 묘사 등은 수묵화의 아름다움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보론>> <나그네>에 대한 평가

 

  주로 문학은 순수한 것이라며 눈길을 먼 허공에 두곤 하던 시인들이  그 대상이였다. 그것이 우리의 시를 망치고 그 시를 배우는 아이들에게서 힘찬 정기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있었고  순수하기는 커녕 정말 순수하지 못한 문학이 순수문학이라는 주장도 늘어놓고 했다. 그리고 이 순수문학이 그 간판을 걸고 한 짓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추악한 짓들이라고도  했다. 식민지시대에 그들은 고난받는 민족으로부터 등을 돌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예찬하기에 바빴으며, 그것이 결국 자장가처럼 우리 민족의 울분을 다스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고서는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팽개치고 꽃을, 난초를 노래하고  그것을 마냥 즐거이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인냥 초를 치고 다녔다는 것이다. 물론 주로 거론된 시인들은 서정주아 박목월이었다.

 (중략)

 박목월은 식민시대말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운 한국어로 노래한  청록파 시인주으이 한 사람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가혹한 탄압에 굴하지 않고 그는 한국어의 조탁에 힘을 쏟았다.  비록 직접적인 저항은 아닐지라도 한국의 산천을 시로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 것을 지키고 사랑한다는 우회적인 저항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그네>  같이 노골적으로 현실을 왜곡한 작품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상황은 또 다르다. 새롭게 되찾은 조국에서도 그는  여전히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삶과 무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것은 명확히 시인의 태만이며  직무유기이다. 시절이 변하면 당연히 시 또한 변모되어야 한다. 식민시대에는 재롱으로나마 볼 수 있으나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값싼 재롱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일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시라면 그 시는 일하지 않고 나그네로 삶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땀냄새를 무진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 작품 앞에서도 그 물음은 마찬가지로 제기되어야 한다. 과연 이 시는 무엇을 위한 누구의 시이며, 자연예찬자인지를 그 시로부터 일구원지는  세상은 오직'당신들의 천국'일 따름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당신들.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오직 남의 고통으로만 관조할 줄 아는 당신들, 바로 당신들의 시인것이다. 그 당신들 속에 소중한 존재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일 뿐이다.

                                                -김상욱,[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4. 박두진(1916-  )

 호는 혜산(兮山). 경기도 안성 출생이다. 청록파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역시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되었다. 정지용은 박두진의 추천사에서 "박군의 시적 체취는 무슨 森林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946년 목월, 지훈과 더불어 [청록집]을 발간하여 그의  '식물성'은 자리잡는다. 그러나 그의 자연은 분명 두  사람과는 다르다. 관조의 대상도 도피와 안식을 위한 자연도, 또한 선비의 비분을 달래기 위한 매개체도 아니다. 박두진의 자연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식이 바탕이 되고  있다. 기독교적인 자세로  [구약성경]의 예언자와도 같은 높은 톤을 유지하면서도 섣부른 흥분에 개거품을 머금는 선동적인 태도를 지양한다.

  표현상으로는 과감한 산문율, 감탄어의 사용 등이  두드러지는데 조선시대 사설시조나 가사문학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의 어떤 시인보다도 ''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한국적  전통이랄 수 있는 ''의 세계,  어스름의 세계와 결별하려는 의지가 그의 시 곳곳에 베어있다. 대표작이랄 수 있는 <>를 제외하더라도 다음에 인용하는 작품들 속의 박두진의 햇빛은 찬란하다.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太陽 이 그리우리.

                                                                -<묘지송>

 

        하늘 끝 저 푸르름 속 햇발 속의 여울에

        파묻혀 푸들대는 너와 나의 포옹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연기>

        길어 안은 하늘 속의/ 햇빛덩어리여

                                                                -<항아리>

 

        떨어지는 해를 위해 한 번은 울자

        다시 솟을 해를 위해 한 번은 울자

                                                                -<산맥을 간다>

 

        싱싱한 아침의 태양을 어둠으로부터 토해낼 땐, 바다는 바로 내 그때의 마음-.

                                                                -<바다의 영가>

 

  세상의 빛의 세계와 멀리 있어 어둠이 기승을 떨 때도 그의 태도는 예언자적인 당당함

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술이되고/햇볕이 /눈물이 되고/ 저승과 이승을 위한 /늙은신 주례는/지금 침묵    / (중략) / 늙은 눈먼 청동말 하나/ 먼 노을을 향해/떨면서 울음 운다

                                                                -<고독의 강> 에서

 

갈대가 날리는 노래다/별과 별에 가 닿아라/(중략)/갈대가 부르짖는 갈대의 절규다.    

해와 달 해와 달 뜬 하늘에 가 닿아라.

                                                                -<갈대> 에서

 

  박두진은 초기시에서 민족적  현실에 대한 아픔을  종교적 의지로 극복하려는  노력에 이어 근래의 <사도행전>,<수석열전>의 단계를 넘어 여전히 예언자적인 의지의 시를 노래하고 있다.

 

 

<<보론>>

  1.박두진의 자연은 소박한 자연현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여원에 이르는 그것의

宰者,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의 빛가  참과 선과 미의식 그근원으로서의  자연이였다.

때문에 박두진은 그 자연 안에서 전적인  긍정과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나아가

내일의 끝없는 갈망과 희구로서 내일의 상징인 ''를 발돋움하여 목청을 돋우며  불렀던

것이다. 박두진은 자연 속에서 종교적 신념을 더욱  시로서 승화시켰고 개인적인 정감이

나 감동보다는 다수의 인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감과 감동을  노래하였다. 따라서

그의 시는 호소적인 표현이 많았고 그만큼 개방적인 목소리였다.

  2. 詩史적으로 볼 때 청록파가 직접적으로  반발한 것은  모더니즘이였다. 유치환.서정

.오장환 등이 생명과 심장으로 문명과 감각에 반발하였다면 청록하는 자연으로 퇴색한

도시아 문명에 대립하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절박하고도  유한한 현실과 문명을 거부하

고 자연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고향을 찾으려 한  것이다. 아울러 한국적인 자연을 새롭

게 재발견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청록파의 시사적 의의가 두드러 지는 것이다.

출처:http://kkucc.konkuk.ac.kr/~garaiul/haewo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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