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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The Angelus)의 진실, 낭만으로 봤던 슬픈 시대상.

올드코난 2015. 3. 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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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The Angelus)은 1857년에서 1859년에 걸쳐 밀레가 완성한 그림으로 오랜동안 낭만적인 그림으로 여겨져왔다. 1986년 이래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 전시중인 19세기 걸작 만종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1.화가 밀레 요약

장프랑수아 밀레(프랑스어: Jean-François Millet, 1814년 10월 4일 - 1875년 1월 20일)는 프랑스의 화가로, 프랑스의 지방에 위치한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의 창립자들 중 한 사람이다. '이삭 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로 유명하며, 사실주의(Realism)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 화가라 불리고 있다. 그는 데생과 동판화에도 뛰어나 많은 걸작품을 남겼다. 밀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 시절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밀레와 그의 작품은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노르망디를 그린 클로드 모네의 작품들은 밀레의 풍경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또한 밀레의 작품들의 구도나 상징적인 요소 등은 쇠라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밀레는 마크 트웨인의 연극 Is He Dead? (1898년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극에서 그는 명예와 부를 위해 그의 죽음을 가장하는 젊은 화가로 등장한다. 극에서 묘사되는 밀레는 대다수가 허구이다.

밀레의 작품 L'homme a la houe는 에드윈 마컴에게 영감을 주어 유명한 시 "The Man With the Hoe" (1898년)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2. 만종 요약

만종은 부유한 미국인이었던 토머스 G. 애플턴(Thomas G. Appleton)의 청탁으로 그리게 된 작품으로, 1857년 여름에 교회의 뾰족탑을 배경에 더하면서 완성되었다. 밀레는 처음에 이 작품에 "감자의 수확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만종"으로 바꾸었다고한다. 1859년, 작품의 구매자가 이 작품을 가져가지 못하게 되자, 밀레는 1865년부터 이 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게 되며 작품에 나타난 손을 여러번 바꾸게 된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인 공명을 의심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밀레는 손의 모양을 계속 바꿈으로서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렸을 뿐이었다. 십여년 뒤 밀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을 사기 위한 경매 경쟁이 계속되었으며 몇 년 후, 프랑스 측에서 80만 프랑을 제시하면서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이렇듯 그림의 가치는 비싼 가격으로 매겨졌지만 정작 생존해 있는 밀레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이러한 불균형은 'droit de suite'를 고안해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Droit de suite'란, 화가의 작품을 되팔게 될 경우 그 수익의 일부를 화가나 화가의 가족에게 필수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3. 만종에 얽힌 이야기

"만종"은 19세기와 20세기에 자주 화가들에게 각색되어 그려지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는 이 작품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 작품을 분석하여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비극적인 신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달리는 이 작품을 정신적인 평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보지 않고 이 작품이 어떠한 메시지와 억압되어 성적 호전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믿었다. 달리는 또한 작품 속의 두 명의 인물들이 삼종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땅에 묻힌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달리의 끈덕진 주장 덕분에 이 작품은 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엑스 레이 분석을 거쳐야 했다. 엑스 레이 분석으로 알아본 결과 놀랍게도 이 작품은 최종 덧칠 전에 관과 비슷한 형태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형태는 굉장히 불확실하여 정말로 관의 모양인지, 그리고 밀레가 마음을 바꾸어 만종을 그리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4. 마무리

현재로서는 밀레의 만종이 원래의 그림에서 변경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 19세기 후반은 당시 유럽 사회가 일반 농민과 노동자들에게는 그리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다.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대로, 의료 시설조차 제대로 없던 시기, 어린 아이를 살릴 수 없었던 부모의 애틋한 마음과 기도 외에는 할 수 없었던 그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오랜동안 만종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낭만과 풍요로움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비참한 농부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만종은 오늘날 빈부격차로 대변되는 이시대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Video] 방송동영상 출처/소유권 유튜브 EBSCulture·플러그인 *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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