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진나라 마지막 황제 진삼세황제 영자영(秦三世皇帝 嬴子嬰) 진왕 자영 설명

올드코난 2015. 12. 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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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삼세황제 영자영(秦三世皇帝 嬴子嬰, 子婴, 기원전 240년? ~ 기원전 206년) 혹은 진왕 영자영(秦王 嬴子嬰)은 중국 진나라의 제33대 국왕이며 진제국의 제3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이다. 사후에 후세 사람들이 상제(殤帝)라는 사시(私諡)를 올렸다진 마지막 황제 자영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진나라 마지막 황제 진삼세황제 영자영(秦三世皇帝 嬴子嬰) *진왕 자영 설명


1.출신설

영자영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출신 설이 있는데, 진 시황제(秦始皇帝)의 손자이며, 시황제의 적장남이자 황태자였던 부소(扶蘇)의 장남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외에도 진 장양왕(秦莊襄王) 영자초(嬴子楚)의 아들로 시황제의 아우라는 설, 진 시황제의 아들이자 진 이세황제(秦二世皇帝) 호해(胡亥)의 형이라는 설, 진 시황제의 동생 장안군(長安君) 영성교(嬴成蟜)의 아들이라는 설 등이 있다.


2. 즉위

시황제 사후, 이세황제인 호해가 즉위했으나, 실권은 환관 조고의 손에 있었다. 조고는 이사와 몽염 등 많은 신료들을 죽기오 심지어는 황위까지 탐내는데, 기원전 207년 10월에 조고는 호해가 술과 여색에 빠져 제국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명분으로 호해를 자결시키고, 뒤를 이을 황제의 적임자로, 시황제의 황태자 부소의 장남 영자영을 지목한다. 하짐나, 영자영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고를 죽일 계획을 세웠고, 즉위식 전에 은밀히 자객들을 보내 조고와 그 가문을 몰살시켰다. 그리고 나서 영자영은 곧 보위에 오른다. (진삼세황제) 하지만 이미 전국은 분열되어 6국이 모두 부활한 상황에서 황제라고 칭할 수가 없어 진왕(秦王)이라 칭했다. 그래서 자영은 마지막 황제가 아니라 진의 마지막 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3. 양위

즉위 당시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의 난 등의 농민반란 등에 이어 유방과 항우 등 여러 호걸들이 들고 일어선 시기였다. 그리고 진의 국운은 이미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진의 대신들은 영자영에게 제위에서 물러나라고 간청하고 영자영은 이 의견을 수렴해 수도 함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유방에게 가 항복을 청하고 옥새를 반치다. 왕위에 오른지 불과 36일 만이었다.


4.최후

문제는 유방의 경쟁자였던 항우가 영자영이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고 유방에게 항복한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항우가 함양에 들어오자 영자영에게 트집과 억지를 부르고, 결국 항우는 나라를 잘못 다스린 죄가 크다며 영자영의 목을 베고 만다. 이 때, 영자영의 죽음을 본 많은 백성들이 항우에게 항의하자 항우는 그들 역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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