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제가 죽은후 진 이세황제 호해가 황제가 된다. 이는 당시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에 의해 조작된 유서에 의한 결과로 이세황제는 시기는 사실상 진 제국을 몰락시킨 때였다. 이세황제에 대해 정리해 본다.
진나라 멸망의 원인 진이세황제 호해 (秦二世皇帝 胡亥) 시기 설명
1.개요
진 이세황제 영호해(秦二世皇帝 嬴胡亥, 기원전 229년 ~ 기원전 207년)는 진 시황제의 18남으로 진(秦)나로로는 제32대 왕이고 전국통일이후로는 제2대 황제로 기원전 210년에서 기원전 207년까지 재위에 올랐다. 이 기간은 사살상 환관 조고(趙高)가 섭정을 하면서 국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2. 조작된 시황제의 유서
시황제가 전국 순행 도중 병에 걸려 유서를 내렸을 당시 황태자인 부소에게 황위를 이으라 적혀 있었으나 시황제가 붕어하고 승상 이사(李斯)와 중거부령인 환관 조고(趙高)는 이를 영호해와 함께 조작해 시황제의 운구가 수도 함양(咸陽)으로 돌아간 후에 조작한 유서를 증거 삼아 영호해가 제위에 올랐다. 그리고 황태자였던 부소는 유서의 내용에 따라 자결하고, 영호해는 재위한 후 부소를 비롯한 진시황제의 공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3. 권력을 장악한 조고
호해는 이사와 조고에게 모든 정치를 맡기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사이에 조고가 부린 욕심 탓에 이사 승상을 참소하여 고문시킨다. 이사는 호해에게 상소문을 보내었지만 조고가 불태워 버리고 이사는 요참형에 처해지고 조고가 승상이 된다.
4. 호해의 최후
진시황제부터 비롯된 전국의 불만은 이세황제의 폭정에 결국 폭발하고 만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반란이 일어나고 조고는 차츰 자신이 황제가 되려하는 역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207년에 조고는 군사를 이끌고 함양궁으로 쳐들어와 사치와 향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2세황제 호해를 자결하라 다그치지만 호해는 조고에게 살려 달라 애걸하지만, 결국 자결하게 된다. 이때 영호해의 나이는 24살이었다. 호해의 무덤은 시안의 한 공원에 진 이세황제릉(秦二世皇帝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5. 야사
일설에 의거하면, 진시황제는 이사에게 신선에게서 받은 기서(奇書)를 해독하라 일렀는데 거기서 이사는 단 하나의 사자성어만을 해독하였으니 그것이 '망진자호'〔亡秦者胡 → 진을 망하게 하는 자가 호(胡)다.〕였다. 진시황제는 '호'(胡)를 흉노로 착각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그 '호'(胡)는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막내아들 이세황제 영호해의 '호'(胡)자와 한자가 같은 고로 '망진자호'(亡秦者胡)의 '호'(胡)는 흉노가 아닌 영호해였고 한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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