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유방과 항우의 성격상 차이점

올드코난 2015. 12. 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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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분열되고 사실상 멸망의 길을 가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반란과 군웅 할거가 시작되고, 최후에는 유방과 항우의 대결로 압축된다. 시대가 낳은 난세의 영웅, 초한지의 주인공인 항우와 유방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고, 우선, 항우와 유방의 성격상 차이점부터 알아 본다.

유방과 항우의 등장, 이들의 성격상 차이점.


1.항우 요약

항우(項羽, 샹위,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는 중국 진나라 말기의 군인으로, 우는 자이며 이름은 적(籍)이다. 초나라의 명장 항연(項燕)의 후손으로, 처음에는 숙부 항량을 따르며 진왕 자영을 폐위시켜 주살한 후로 서초 패왕(西楚 覇王)에 즉위함으로써 왕이 되었고 초 의제를 섭정으로 도와 통치했으나 그 뒤에 초 의제(서초 의제)가 급사하자 보위를 찬탈, 황제로 등극하였다. 뒷날 유방의 도전으로 초한의 끝없는 싸움을 싸우다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 문학의 소재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원나라 이후 희극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였으며, 고려시대 이후의 문학에도 등장한다. 또한 무속의 신의 한사람으로도 숭배된다. 장기에서 초나라의 왕은 항우를 상징하는 기물이다.


2.유방 요약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은 한나라(漢)의 초대 황제(재위 :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이다. 자는 계(季)이다. 패현(沛縣)의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진(秦)에 맞서는 봉기에 가담하고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한때는 관중(關中) 땅을 지배 아래 두었다가 항우(項羽)에 의거해 기원전 206년 서부 한중(漢中)에 좌천되어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웠다. 정식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諡號)는 고황제(高皇帝)이며, 일반으로 고조(高祖)로 불린다.



3.항우와 유방의 성격상 차이점

항우는 초나라 출신의 명문 귀족 출신이고, 유방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다. 

여기에 성격도 많이 달랐는데,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수행하던 중 절강성의 회계를 지날 때였다. 진 시황제의 장엄한 행렬을 본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저 자리는 내가 대신하겠다.”

반면 유방은 함양에서 시황제의 행렬을 봤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번쯤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


이들의 말에서 알수 있듯이 항우는 직설적이고 과격한 인물이고, 유방은 야심을 감추고 말을 돌려서 하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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